‘평생 걸어본 적 없는’ 작가, 내 안의 장애를 직시하다[책과 삶]
10년여 글쓰기 매달려 SF 문학상
극장·도서전 찾으며 세상 속으로
“본의 아니게 사회운동가·투사 돼”
어쩌면 가장 보통의 인간
최의택 지음 |교양인|288|1만6800원
태어난 지 30년 만에 장애명을 확실히 외웠다. 수상 인터뷰에선 모두 똑같이 “장애명이 뭔가요?” 물었다. 쏟아져 나오는 기사들은 ‘컨트롤 C와 V’를 누른 듯 장애명이 반복적으로 쓰여 있었다. ‘선천성 근이영양증.’ 잊고 있던, 어쩌면 외면하고 싶었던 ‘비정상적’ 특성은 ‘정상’ 사회로 한발을 내딛자마자 부각됐다.
<슈뢰딩거의 아이들>로 2021년 제1회 문윤성SF문학상 대상을 받은 SF 작가 최의택이 에세이 <어쩌면 가장 보통의 인간>을 출간했다. 태어나 한 번도 걸어본 적이 없는 그는 평생 휠체어에 앉아 세상을 바라봤고 더 이상 앉아 있는 게 힘들 때 고등학교에서 자퇴했다. 그의 사회적 나이는 자퇴한 열일곱 살에 머물러 있었다. 세상과 단절됐지만 10년 넘게 글쓰기를 이어갔고 SF문학상 대상을 받으며 세상으로 다시 나왔다. “글쓰기가 물리적으로 가장 만만하기 때문”에 글을 쓰게 됐다는 최의택. 그가 이번엔 시선을 외부에서 내부로 돌렸다. 그는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나의’ 장애로부터 시선을 돌리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 “장애를 똑바로 응시함으로써 알게 되는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버리는 건 아닐까”라고 진솔하게 내뱉으며 시작한다. 그의 이야기들은 장애인을 길거리에서, 일상생활에서 ‘흔하게’ 마주하기 힘든 한국 사회에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휠체어를 타고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때, 주변 친구들은 그를 카트라이더 레이싱 게임 캐릭터 정도로 ‘장난스럽게’ 받아들였다. 2학년 때 최의택은 선거를 통해 반장으로 뽑혔다. 수업이 끝나고 데리러 온 엄마에게 담임은 ‘없는 일로 하자’고 한다. “세상에서 받았다가 빼앗기는 것만큼 서운한 게 또 있을까. 나는 싫다고, 반장 하겠다고 울며 떼썼지만, 휠체어에 앉은 채로는 한계가 있었다.” 3학년 때도 최의택은 반장이 된다. 엄마는 먼저 담임에게 반장하지 않아도 된다고 철벽을 친다. 담임은 “아이들이 뽑은 거예요. 제 맘대로 못해요”라고 말해 최의택은 드디어 진짜 반장이 된다. 그는 “그 시절 나와 연관된 사람 모두가 처음이었던 것이 아닐까. 나만 장애인이 처음인 건 아니었던 것”이라며 아량을 보여준다.
최의택은 자신의 장애를 직면하면서 ‘장애성’을 외면하고 ‘철벽치기’ 해왔던 과거를 되짚는다. 그는 영화 <헝거게임 : 더 파이널>을 보러 극장을 찾은 적이 있다. 방구석 1열이 아니라 극장의 1열 휠체어 좌석에서 딱 한 번 영화를 보고 다시는 가지 않았다. 영화관 1열 맨 오른쪽 끝자리에서 사다리꼴 스크린에 쾅쾅 울려대는 2시간을 견디기 힘들었을 테다. 몇년 뒤 배우를 ‘덕질’하기 위해 연극 무대를 가고 싶어한 그는 휠체어가 연극 극장에 입장할 수 있을지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며 ‘반성 아닌 반성’을 한다. 장애를 받아들이게 하려고 극장에 자주 찾아갔어야 했나. 조금 더 매달려야 할 일인지 고민했다는 것. “장애 수용의 결과 우리는 본의 아니게 사회운동가 내지 투사가 되어 버린다.”
2023 서울국제도서전에 초대받고도 주저한 경험도 털어놓는다. 코엑스 건물이 휠체어가 다닐 수 있는 곳인지 인터넷을 여러 번 찾아봤다고 한다. 그때 정보라 작가는 “작가님이 휠체어를 타고 오셔서 무엇을 할 수 없는지 기록으로 남기는 데 의의가 있다”고 전해준다. 용기를 얻고 코엑스에 당도한 그는 입구가 ‘ㄹ’로 되어 있는 줄 서기용 가이드라인에서부터 막막해졌다. 휠체어를 타고 ‘ㄹ’ 가이드라인을 돌아 돌아 입장하기는 무리다. 도움을 받아 따로 입장한 그는 도서전 이후 말한다.
“화장실이 가까운 곳에 없다는 것은 거의 공포에 가까웠다. 한편, 그동안 이보다 훨씬 못한 곳들을 겪어 온 나로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건 아닐까? … 그 정도면 된 것 아닐까?” 그는 장애인들과 더 이야기를 나눠가며 깨닫는다. “비슷한 고민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 더는 그것이 나의 책임, 우리의 책임만이 아니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책은 장애 당사자만이 보여줄 수 있는 고민의 깊이를 드러낸다. 지난해 화제를 모은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두고도 그렇다. ‘우영우’에 비춰진 장애인이 너무 ‘판타지 아니냐’ ‘인물이 너무 납작하다’ 등 세평에 다른 의견을 낸다. 그는 “납작하면 어떤가. 없는 것보다는 백만 배 낫다”고 했다. 최근 본 드라마 이야기도 꺼낸다.
“주인공이 일하는 사무실에 배경처럼 있는 사람들 중 휠체어를 타고 있는 사람이 있길래 나는 생각했다. 저 사람 뭔가 하겠군. 하지만 아니었다. 그는 사무실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저 배경에 불과했다. 휠체어를 탄 사람도 그저 ‘직원 2’ 같은 역할을 하는 시대가 왔구나 싶어서 나는 내심 신기했다. 앞으로 더 많은 장애인 배경을 보고 싶다. 더는 그런 인물을 보고 쓸데없는 판타지를 품지 않을 수 있도록.”
책은 소설을 쓰는 법을 배워가는 과정을 한 편의 ‘시트콤’처럼 유쾌하게 서술해간다. 작가는 습작한 소설을 온라인에 연재하고서 ‘등장인물이 왜 이렇게 말이 없냐’는 피드백을 받는다. 자퇴 이후 ‘집콕’ 생활을 10년 해오다보니 입을 열어 말을 꺼내 본 적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말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랩을 따라 불렀다는 대목에서는 웃음이 쿡 터져나온다. 하필 그때는 ‘쇼미더머니’ 열풍이 불 때였다고 하니 상상해보면 그의 소설을 향한 열정이 종이를 통해서도 오롯이 느껴진다. 고등교육을 안 받았다는 생각에 EBS 고등 수학 오리엔테이션 인터넷 강의를 듣고자 눌렀다가 곧장 중학 수학으로 도망쳤다는 이야기도 담겨 있다. 그는 ‘나의 탈출을 우리의 순간들로 미분하면’이라는 단편을 낸 바 있다.
책은 자신이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인지한 이의 ‘장애 체험기’다. 저자는 ‘disabled person과 person with difficulty’ 사이에서 여전히 갈등하고 있다고 했다. ‘disabled person’은 쉽게 말하면 ‘장애인’처럼 장애로만 규정되는 존재이고, ‘person with difficulty’는 ‘사람인데 장애가 있다’ 정도의 의미다. 그는 “어린이와 어른 사이 갈등하는 청소년처럼 이 또한 미숙한 것일지 모른다. 그 과도기적인 상태인 게 꼭 나뿐만은 아닐 것”이라고 말한다. 장애를 받아들이는 1991년생 작가의 문장은 경쾌하고 발랄하다.
근육에 힘이 없는 저자는 오른손과 전신의 힘을 이용해 마우스 커서를 화상 키보드 위에 올리고 왼손으로 체중을 실어 키패드 스위치를 누른다고 한다. 말 그대로 ‘한 번에 한 자음, 한 모음’을 꾹꾹 눌러쓴 에세이는 울림이 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지하철·버스 시위를 고발하겠다고 으르렁대는 일부가 읽어봤으면 하는 책이기도 하다.
임지선 기자 visi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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