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간에 아기 참수? 이스라엘·영미 언론발 미확인 주장 넘친다
이스라엘 총리측 "아기 참수" 주장…확인 안돼 언론 반박
바이든도 '하마스 강간' 언급, LA타임즈 "근거 없어"
이스라엘·미 정치권, 언론이 검증 안된 정보 확산
[미디어오늘 김예리 기자]
7일 하마스의 기습 공격과 이스라엘의 전면 봉쇄·공습 이래 민간인 사망자가 연일 급증하는 가운데 팔레스타인에 대한 허위정보가 SNS와 언론에 확산하고 있다. 특히 이스라엘 당국과 서방 주류 언론, 미 정치권까지 '아기 참수' 등 확인되지 않은 주장을 되풀이하며 사태를 악화시킨다는 우려가 높다.
탈 하인리히 이스라엘 총리 대변인은 11일 이스라엘 점령 가자지구와 맞대고 있는 크파르 아자에서 '아기들의 머리가 참수된 채로 발견됐다'고 주장했다. 미국 탐사보도 매체 인터셉트에 따르면 이 주장은 이스라엘 방송사 i24뉴스가 10일 '몇몇 군인'을 인용해 보도하면서 처음 퍼졌다.
i24와 같은 취재 현장에 있던 언론인들도 해당 주장에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10일 이스라엘군 당국의 연결로 크파르 아자에서 이스라엘 군인을 취재한 오렌 지브 기자는 “어제 내가 대화했던 군인들은 '참수당한 아기들'은 언급하지 않았다”며 “군 대변인은 '현 시점에서 확인할 수 없다. 하마스가 할 수 있는 악랄한 행동들에 대해 우리는 알고 있다'고 밝혔다”고 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11일 “테러리스트들이 영유아를 참수하는 사진을 보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고 말했다가 백악관이 미 정부가 실제로 이 같은 보고나 사진을 확인한 바는 없다고 번복했다. 가디언은 “이스라엘 정부와 군이 하마스의 유아 참수에 대한 보고를 반복해왔지만, 가디언에 의해 독립적으로 확인되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이 주장은 주류 언론 보도에서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영국 타임지는 10일 1면에서 “아기들의 목이 잘렸다”는 헤드라인을 내보냈다. 더 선과 데일리메일, 데일리텔레그래프 등도 1면에 같은 주장을 내보냈다. 미국 폭스뉴스와 CNN 등도 보도하며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 언론도 미 외신을 인용해 이를 기정사실화한 보도를 쏟아냈다.
가디언의 예루살렘 특파원인 베산 맥커넌은 “오늘 영국 신문 1면들을 방금 봤는데 '40명의 아기가 하마스에 의해 참수됐다'는 헤드라인 주장을 보면서 끔찍했다”며 “맞다. 많은 어린이가 살해됐다. 공격 중에 몇몇 참수도 있었다. 그러나 아기가 참수당했다는 주장은 입증되지 않았고 완전히 무책임하다”고 했다.
하마스 무장 세력이 이스라엘 여성 여러 명을 강간했다는 주장도 미국 정치권에 오르내렸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0일 “여성들이 강간 당하고, 폭행 당하고, 행진에서 전리품처럼 전시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근거 없는 주장으로 드러나 일부 언론이 관련 보도를 철회했다. LA타임즈는 하마스 세력이 여성들을 강간했다는 주장을 담은 칼럼을 보도했다가 공식 철회했다. LA타임즈는 “이 칼럼은 앞서 버전에서 공격 중 강간이 있다고 언급했지만, 이 같은 보도는 뒷받침되지 않았다”며 삭제 이유를 밝혔다.
팔레스타인 언론인이자 시인, 작가인 모하메드 엘 커드는 미국 비영리 언론 '데모크라시나우'와 인터뷰에서 이 같은 주장을 두고 '이슬람혐오 정서이자 이스라엘 정권의 PR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하마스가 임신한 이스라엘 여성의 사체를 해부했다거나 아기들을 감옥에 가뒀다는 주장도 SNS를 통해 퍼졌으나 사실이 아니었다.
인도 TV9의 한 기자는 트위터(X)에서 '하마스가 이스라엘 남부의 한 임신부를 발견해 그의 몸을 해부했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이 트윗에 4만여 명이 '좋아요'를 누르거나 인용했는데 근거 없는 주장이었다.
이 과정에서 도리어 과거 이스라엘군의 지휘 아래 레바논의 우익 민병대가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벌인 유사한 사건이 환기되기도 했다. 아에프페와 프랑스24, 아랍뉴스 등은 이스라엘 지원을 받은 우익 레바논 민병대가 1982년 베이루트 인근에서 벌인 '사브라·샤틸라 학살'에서 이 같은 사건이 일어났다고 지난해 보도한 바 있다.
미디어 비평가들과 팔레스타인 언론인들은 거짓 정보가 검증 없이 퍼지는 상황에 우려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스라엘 당국은 물론 미 정치권과 주류 언론이 근거 없는 정보를 밝히면서 사태 해결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허위 정보의 절대 다수는 이스라엘의 점령과 공습을 정당화하는 데 쓰이고 있다는 우려다.
미디어 비평가인 사나 사이드는 11일 탐사보도 매체 인터셉트와 인터뷰에서 “잘못된 정보, 심지어 허위 정보(disinformation)의 수준은 거의 전례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사이드는 “이스라엘과 미국이 확인되지 않은 정보로 한 인구집단 전체를 전멸시키려는 행동을 정당화하는 데 활용하는 것을 목도했다”며 “특히 이는 저널리즘적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이를 되풀이한 언론인 탓에 들불처럼 번졌다”고 했다.
UN 인도주의 업무조정국(OCHA)에 따르면 2008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과 점령 이래 올해 9월 중순까지 이스라엘군에 의한 팔레스타인인 사망자는 6407명이다. 점령과 관련한 이스라엘인 사망자는 308명이다. 지난 7일 이후 이스라엘 공격으로 인한 팔레스타인 사망자는 1400명, 하마스 공격으로 이스라엘 사망자 1300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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