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과 1명 남는데 암·거점 병원이 웬 말…"백년대계 정책 달라" 의료계 반발
"원래 12명이던 전공의가 현재 4명이고 내년 지원이 없으면 단 1명만 남게 됩니다. 응급실을 확대하고 암 병원, 지방거점병원을 만들어도 전혀 운영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12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장에 참고인 자격으로 나선 김유훈 소아청소년과 전공의의 발언에는 답답함과 씁쓸함이 묻어났다. 김 전공의는 "여러 정책이 발표되긴 했지만, 전공의 지원이 급감한 원인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전혀 없다"며 "후배들에게 소아청소년과 지원을 흔쾌히 권유할 수가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전폭적인 예산 지원이다. 당장 하반기부터 응급의료 관리료를 신설해 소아응급실에 대한 진료 보상을 강화한다. 중증 응급·응급 진료 구역 관찰로는 1세 미만 100%, 1~8세는 50% 가산한다. 내년 1월부터는 입원료도 1세 미만 50%, 1~8세는 30%로 연령대별 가산을 적용한다.
밤늦게 병원을 찾아 헤매는 일이 없도록 심야 시간(밤 8시~다음 날 아침 7시) 6세 미만 소아의 병·의원에 진찰료와 약국에 대한 보상도 각각 2배로 확대할 계획이다. 밤늦게까지 환자를 받는 달빛어린이병원을 확충하기 위해 1곳당 평균 2억원의 운영비를 지원하고 주당 운영시간에 따라 기존 야간진료관리료 비용의 최대 2배 수준으로 보상 범위를 확대한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부족을 타개하기 위해 전공의(인턴, 레지던트), 전임의(펠로)에 매월 100만원의 수련 보조 수당도 지급하기로 했다.
사실 예산 지원보다 시급히 해결할 사안은 '인력 부족'이라는 게 현장 의료진의 공통된 견해다. 현장에 의사가 없는 채 예산만 투입하는 건 '유인책'이 아니라 '초과 근무 강요'와 마찬가지라는 지적이다. 한정된 인력이 정부 지원을 따라 자리를 옮기며 또 다른 '의료 공백'을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마 과장은 "2차, 3차 병원조차 허덕이는 지방에서 볼 땐 보기에만 좋고 실효성은 없는 '빛 좋은 개살구'와 같은 정책"이라면서 "3년간 월 100만원을 받는 대가로 평생을 소아청소년과 의사로 사려는 전공의가 얼마나 많을지도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소아청소년과 수련 과정이 3년제로 바뀌면서 2025년 초에는 3년 차와 4년 차가 같이 대학병원을 떠나는 만큼 인력난이 더 심해질 것으로 우려된다. 김유훈 전공의는 "다음 세대가 없다는 것도 문제지만 당장 응급실, 중환자실 같은 중환자 진료부터 차질이 불가피하다"며 "파격적인 정책이나 재정 지원이 없다면 현재 상황을 되돌리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한탄했다.
의료계에서는 물고기를 주는 것이 아니라 낚시하는 법을 알려주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단기적인 지원과 더불어 예비 의사들이 '몸담고 싶은' 진료 환경을 장기적으로 조성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낮 진찰료의 전폭적인 확대가 꼽힌다. 소아청소년과는 진료를 보는 행위(진찰료)가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비급여 진료가 거의 없다. 출산율이 높았던 과거에는 대량 진료로 버텼지만, 출산율이 전 세계적으로 바닥을 찍는 새 소아청소년과 의료진의 미래도 어두워져 가고 있다. 중증·응급 환자가 아니라도 안정적인 수입이 담보돼야 결국 전공의 지원도 늘어날 것이란 의견이다.
영유아는 물론 소아·청소년도 국가 주도의 만성질환 관리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힘이 실린다. 코로나19(COVID-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감염병을 비롯해 비만, 알레르기, 성장 부진 등 학령기 아동의 만성질환 비율이 늘었지만 7~20세는 영유아와 다르게 국가검진이 이뤄지지 않고 있어 사실상 방치된 상태다. 학교 검진에서 성인병을 스크리닝하고, 지역사회 1차 의료기관을 연계해 치료하는 '아동 주치의 제도'의 도입이 시급한 배경이다. 성인병을 예방하는 동시에 소아청소년과 의료진은 안정적인 수익을 담보할 수 있어 '윈윈'이란 평가다.
소아·청소년 건강검진은 국민의힘 대통령 선거 공약사항에 포함됐고, 지난 2020년에는 법안도 발의됐지만 예산 부족 등을 이유로 제대로 논의되지 않고 있다. 마 과장은 "소아청소년과의 몰락은 국가의 미래를 좌우하는 문제"라며 "1·2·3차 의료기관 대표, 의료정책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만들어 정기적으로 후속대책을 점검·개선하는 한편 다른 진료 분야처럼 5년 단위 장기계획도 시급히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정렬 기자 parkj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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