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과 1명 남는데 암·거점 병원이 웬 말…"백년대계 정책 달라" 의료계 반발

박정렬 기자 2023. 10. 13.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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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김명섭 기자 =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소아의료체계 보완대책 발표를 하고 있다. 2023.9.22/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원래 12명이던 전공의가 현재 4명이고 내년 지원이 없으면 단 1명만 남게 됩니다. 응급실을 확대하고 암 병원, 지방거점병원을 만들어도 전혀 운영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12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장에 참고인 자격으로 나선 김유훈 소아청소년과 전공의의 발언에는 답답함과 씁쓸함이 묻어났다. 김 전공의는 "여러 정책이 발표되긴 했지만, 전공의 지원이 급감한 원인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전혀 없다"며 "후배들에게 소아청소년과 지원을 흔쾌히 권유할 수가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지난달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소아 의료체계 개선대책 후속대책을 두고 의료계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 등 의학단체는 환영 의사를 밝혔지만, 정작 현장 의료진은 "근시안적인 정책"이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의료 인력 확보가 핵심인데 정작 떠나가는 소아·청소년 전공의, 의사의 마음을 돌리기엔 이번 대책이 '역부족'이라는 이유에서다. 교육만큼 소아 의료도 장기적인 '백년대계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중증, 응급 소아 진료 예산 지원 강화
13일 의료계에 따르면 복지부는 지난달 22일 △중증·응급 진료 강화 △병원 간 협력 활성화 △지역 의료 공백 완화 △소아 의료 전문 인력 확보 등을 골자로 한 '소아 의료체계 개선 후속대책'을 발표했다. 지난 2월 내놓은 '소아 의료체계 개선대책'을 토대로 사는 곳이 어디든 안심하고 진료받을 수 있는 '지역 완결형' 의료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제시했다.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전폭적인 예산 지원이다. 당장 하반기부터 응급의료 관리료를 신설해 소아응급실에 대한 진료 보상을 강화한다. 중증 응급·응급 진료 구역 관찰로는 1세 미만 100%, 1~8세는 50% 가산한다. 내년 1월부터는 입원료도 1세 미만 50%, 1~8세는 30%로 연령대별 가산을 적용한다.

(서울=뉴스1) 김지영 디자이너 = 보건복지부는 22일 '소아의료 보완대책'을 발표했다. 낮은 진료 수익으로 인해 동네 소아청소년과가 문을 닫거나 운영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는 의사단체 등의 호소에 복지부가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에 대한 별도의 '인센티브'(정책가산)를 신설해 지원을 약속했다.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밤늦게 병원을 찾아 헤매는 일이 없도록 심야 시간(밤 8시~다음 날 아침 7시) 6세 미만 소아의 병·의원에 진찰료와 약국에 대한 보상도 각각 2배로 확대할 계획이다. 밤늦게까지 환자를 받는 달빛어린이병원을 확충하기 위해 1곳당 평균 2억원의 운영비를 지원하고 주당 운영시간에 따라 기존 야간진료관리료 비용의 최대 2배 수준으로 보상 범위를 확대한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부족을 타개하기 위해 전공의(인턴, 레지던트), 전임의(펠로)에 매월 100만원의 수련 보조 수당도 지급하기로 했다.

의협은 대책이 발표된 후 의견문을 내고 "현재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긴 충분치 않지만,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며 지속적인 정부의 지원과 사회적인 관심을 당부했다. 소아청소년과학회 역시 예산 지원을 강조하며 "진료 안정화와 진료 인력 유입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월 100만원에 평생 바칠까" 우려 팽배
하지만, 의료 현장 일각에서는 의협 등의 환영 입장을 두고도 "복지부의 X 노릇을 한다"(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며 원색적인 비난을 서슴지 않을 만큼 이번 대책에 반발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복지부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의료 인력 확보 방안은 뒤로 미루고 돈만 쓰면서 마치 '주식 단타'하듯 정책을 짰다"고 날을 세웠다. 마상혁 창원파티마병원 소아청소년과장(경상남도의사회 공공의료대책위원장)도 "정부가 '소아청소년과 오픈런', '응급실 뺑뺑이'처럼 당장 사회적 이슈가 되는 사안만 해결하려 했을 뿐 '미래'를 보여주지 못했다"며 "국민을 기만하는 정책"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실 예산 지원보다 시급히 해결할 사안은 '인력 부족'이라는 게 현장 의료진의 공통된 견해다. 현장에 의사가 없는 채 예산만 투입하는 건 '유인책'이 아니라 '초과 근무 강요'와 마찬가지라는 지적이다. 한정된 인력이 정부 지원을 따라 자리를 옮기며 또 다른 '의료 공백'을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마 과장은 "2차, 3차 병원조차 허덕이는 지방에서 볼 땐 보기에만 좋고 실효성은 없는 '빛 좋은 개살구'와 같은 정책"이라면서 "3년간 월 100만원을 받는 대가로 평생을 소아청소년과 의사로 사려는 전공의가 얼마나 많을지도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인천공항=뉴스1) 김민지 기자 =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레지던트) 미달 사태로 병원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국내 65개 병원에서 선발하는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정원은 199명이지만, 실제 지원자는 정원의 16.6%인 33명에 그쳤다. 이중 54개 병원은 지원자가 0명이었다. 2022.12.13/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소아청소년과 수련 과정이 3년제로 바뀌면서 2025년 초에는 3년 차와 4년 차가 같이 대학병원을 떠나는 만큼 인력난이 더 심해질 것으로 우려된다. 김유훈 전공의는 "다음 세대가 없다는 것도 문제지만 당장 응급실, 중환자실 같은 중환자 진료부터 차질이 불가피하다"며 "파격적인 정책이나 재정 지원이 없다면 현재 상황을 되돌리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한탄했다.

의료계에서는 물고기를 주는 것이 아니라 낚시하는 법을 알려주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단기적인 지원과 더불어 예비 의사들이 '몸담고 싶은' 진료 환경을 장기적으로 조성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낮 진찰료의 전폭적인 확대가 꼽힌다. 소아청소년과는 진료를 보는 행위(진찰료)가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비급여 진료가 거의 없다. 출산율이 높았던 과거에는 대량 진료로 버텼지만, 출산율이 전 세계적으로 바닥을 찍는 새 소아청소년과 의료진의 미래도 어두워져 가고 있다. 중증·응급 환자가 아니라도 안정적인 수입이 담보돼야 결국 전공의 지원도 늘어날 것이란 의견이다.

= 18일 오후 독감 예방접종을 위해 보호자와 함께 경북 경산의 한 소아과병원을 방문한 어린이가 진료를 받고 있다. 대구보건환경연구원은 최근 대구지역 병원을 찾은 호흡기 환자 가운데 6명에게서 올해 첫 인플루엔자(독감) 바이러스가 검출됐다고 18일 밝혔다. 2017.12.18/뉴스1


영유아는 물론 소아·청소년도 국가 주도의 만성질환 관리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힘이 실린다. 코로나19(COVID-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감염병을 비롯해 비만, 알레르기, 성장 부진 등 학령기 아동의 만성질환 비율이 늘었지만 7~20세는 영유아와 다르게 국가검진이 이뤄지지 않고 있어 사실상 방치된 상태다. 학교 검진에서 성인병을 스크리닝하고, 지역사회 1차 의료기관을 연계해 치료하는 '아동 주치의 제도'의 도입이 시급한 배경이다. 성인병을 예방하는 동시에 소아청소년과 의료진은 안정적인 수익을 담보할 수 있어 '윈윈'이란 평가다.

소아·청소년 건강검진은 국민의힘 대통령 선거 공약사항에 포함됐고, 지난 2020년에는 법안도 발의됐지만 예산 부족 등을 이유로 제대로 논의되지 않고 있다. 마 과장은 "소아청소년과의 몰락은 국가의 미래를 좌우하는 문제"라며 "1·2·3차 의료기관 대표, 의료정책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만들어 정기적으로 후속대책을 점검·개선하는 한편 다른 진료 분야처럼 5년 단위 장기계획도 시급히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정렬 기자 parkj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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