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전기요금, 대체 왜 이렇게 한 번에 많이 오르는 거야?
'한 번에 너무 많이 올랐네. 거의 두 배는 오른 거 같은데...'
여름이 지나고 받은 전기요금 고지서를 보고 든 생각입니다. 전기요금 오른다 해서 에어컨도 나름 아껴서 사용했는데 말입니다. 많은 분들이 비슷한 생각을 하셨을 거 같습니다. 요금이 오르는 건 당연히 반갑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반감까지 들지는 않을 거 같습니다. 찬찬히 보면 다 올릴만한 이유가 있으니까요.
위의 표만 봐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석탄 가격이 많이 올랐습니다. 국내 전기 생산에서 석탄이 차지하는 비율은 여전히 가장 높습니다. 국제원유도 코로나와 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영향으로 많이 올랐습니다. 원료가격이 오르니 당연히 전기를 만드는데 돈이 더 듭니다. 그럼 전기요금도 올릴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우리나라 전기요금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입니다. 한전이 전기를 만들어 팔수록 더 손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습니다. 한전의 적자는 갈수록 커져만 가고 있었습니다. 전기요금 인상에 대한 압박은 더 컸습니다. 그러다 보니 상당수는 전기요금 인상에 공감했을 거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한 번에 너무 많이 오르다 보니 불필요한 감정이 생긴다는데 있습니다. 감정이 개입되는 순간 이성은 뒤로 밀려납니다. 그럼 불만만 커지게 됩니다.
왜 이렇게 갑자기 올랐을까요? 단순히 원료가격이 많이 올라서일까요?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우리나라 전기요금 결정과정에서 생각해 볼 부분도 있습니다. 감사원이 내놓은 공공기관 재무건전성 및 경영관리 실태 감사보고서에 관련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원가연동형 요금제 도입…요금변동 정보 제공으로 '예측' 가능 목표
먼저, 전기요금제도에 대한 설명부터 시작해야 할 거 같습니다. 한국전력의 원가회수율은 지난해 기준 66.2%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니까 전기를 만드는 원가는 100원인데, 전기 요금 등으로 회수한 금액은 66원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그럼 남은 34원은 그대로 적자입니다. 한국전력의 적자 규모는 30조 원이 넘어서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난 2021년 1월, 전기요금 체계를 개선하며 '원가연계형 요금제'를 도입했습니다. 전기를 만드는데 필요한 석탄과 같은 원료의 변동분을 요금에 반영하는 게 핵심입니다. 소비자들에게 요금변동에 대한 정보를 사전에 제공해 '예측'가능하게 하는데 목적이 있는 요금제입니다.
원가연동형 요금제를 시행하고 있기 때문에, 원가가 오르는 만큼 전기요금이 조정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최근처럼 원가가 너무 갑자기 많이 오르면, 전기요금이 한 번에 많이 오를 수 있기 때문에 조정할 수 있는 범위(조정단가 상·하한(±5원/kWh) 조정폭(5원/kWh, 1원/kWh 미만 시 직전 조정주기 단가 적용)을 적용했습니다. 또, 유보조항도 있습니다. 국민생활 안정을 위해 산업부장관이 필요하다고 인정할 경우 연료비조정단가의 전체 또는 일부 적용을 일시 유보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가격 조정폭이 크지 않게 범위를 정해놓고, 반영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건 예외조항일 뿐입니다. 기본적인 핵심은 원가가 오르면 그만큼 전기 요금에 반영이 돼야 하는 것입니다.
원가연동형 요금제 도입 이후 제대로 시행됐나?
원가연동형 요금제가 도입된 2021년, 원료가격이 많이 올랐습니다. 요금제에 따라 전기요금인상은 불가피했습니다. 하지만, 전기요금은 오르지 않았습니다. 2022년 전기요금을 결정할 때도 산업부는 1분기부터 올려야 한다고 초안을 만들었는데, 기재부의 의견은 달랐습니다. 1분기에는 요금을 동결하고, 이후부터 나누어서 올리는 안을 제시했습니다. 산업부가 대안을 제시했지만, 결국 2022년 요금은 기재부의 안대로 연료비 조정요금은 1,2분기에는 올리지 않고, 기후환경 요금도 2분기부터 올리는 안으로 최종 결정됐습니다. 산업부 초안으로는 한전의 적자는 2022년에 7.7조 원이 늘 걸로 예상됐지만, 기재부가 제시해 최종 결정된 안으로 한전의 적자는 11.8조 원으로 늘어났습니다.
혹시나 여기까지 읽으시고 기재부에 대한 반감이 생긴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산업부는 한전의 적자를 줄이고 바뀐 원가연동형 요금제에 맞춰 노력을 했는데, 왠지 기재부가 방해를 한 듯한 느낌을 받으셨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는 않습니다. 기재부가 나쁜 게 아닙니다. 산업부는 한전의 경영상태와 전기요금 중심으로 안을 짭니다. 반면, 기재부는 한전뿐 아니라 전체 나라 살림을 걱정해야 합니다. 당시에는 물가가 급격히 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전기요금까지 많이 올리면, 물가가 더 많이 올라서 국가 경제 전반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현행법도 산업부와 기재부가 '협의'해서 전기요금을 정하도록 돼 있습니다. 충분히 협의 과정에서는 있을 수 있는 논의들입니다. 법적 테두리 안에서 의견을 낸 것이고,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 요금안은 결정이 됐습니다. 그럼 뭐가 문제냐고요?
비슷한 시기, 그럼 다른 나라는?
같은 시기, 다른 나라는 어떻게 했는지 한번 보겠습니다. 감사원은 2021년 이후 국제 연료가격이 오르자, 미국과 영국, 프랑스, 일본 등 해외 주요국들은 2022년 6월까지 전기요금이 최대 68% 올랐다고 밝혔습니다. 동시에 취약계층의 부담완화를 위한 지원정책을 추진하고,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절약하는 등의 방식으로 원료가격 인상에 대응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와 차이가 보입니다. 앞서도 설명했듯이 우리나라는 2021년에는 요금 인상을 보류하다가 2022년 4월과 10월, 2023년 1월과 5월에 전기요금을 인상했습니다. 우리나라가 요금 정책에서 다소 소극적이었단 인상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감사원은 이 결과, 2022년 말부터 2023년 초순 사이 공공요금이 일시에 올라, 전기요금 폭탄 논란이 발생했고, 연료비가 떨어진다 하더라도 그만큼 인하하기 어려울 정도로 요금 인상요인이 과다하게 누적되어 경제적 충격이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감사원 "물가나 국민 부담 이외에 다양한 요인들도 균형있게 검토해야"
개선할 부분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산업부와 기재부가 각자 입장에 맞게 의견을 개진하고 의견을 모으는 과정에서 우리나라는 지금까지는 물가나 국민 부담 이런 측면에 대한 고려가 상대적으로 공기업의 재무 건전성이나 가격 신호 기능 등에 대한 고려보다 항상 우선시된 건 아닌지 한번 돌아봐야겠습니다. 균형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리고 만약 정말 물가 인상 부담이 커서 인상폭을 조정해야 한다면, 어떻게 이를 보완해야 할지에 대한 검토도 필요하다는 게 감사원의 판단이었습니다.
물가안정법 제6조에는 '요금 원가주의 원칙'이 명기돼 있습니다. 요금은 원가를 반영한다는 걸 원칙으로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원칙이 자꾸만 지켜지지 않으면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논쟁이 생기기 쉽습니다.
상대적으로 비중이 높았던 물가 인상 부분만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물가가 너무 오를 수 있으니 정부는 원가를 반영한다는 원칙보다는 물가 인상 우려를 강조했습니다. 정부가 인위적으로 물가를 통제하겠다는 의도인 거죠. 관련해서 최근에 보던 책에 참고할 만한 부분이 있어 잠시 언급하려 합니다. 벤 버냉키라는 이름 익숙하실 겁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이었습니다. 2022년에는 노벨 경제학상도 받았습니다. 벤 버냉키가 얼마 전에 쓴 '21세기 통화정책'이라는 책에 이 관련해서 한번 생각해 볼만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바로 물가를 대하는 닉슨 전 미국대통령 정부의 이야기입니다. 1970년 미국으로 가보겠습니다.
당시 미국은 경기 침체와 인플레이션이라는 두 악재가 겹쳐 있었습니다. 경기도 안 좋아 실업자가 증가하고 장사는 안되는데, 물가마저도 크게 오르고 있었던 시기였다는 겁니다. 그러니 당시 미국의 여론은 현 정부에 매우 부정적이었습니다. 그러자, 재선을 위한 대선을 2년 앞둔 시점에서 당시 닉슨 대통령은 물가를 직접 통제하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1971년 8월 15일에는 90일간 가격을 동결하도록 강제했습니다. 1973년 1월까지는 거의 모든 상품이 가격을 인상할 때는 물가통제 위원회 승인을 거치도록 했습니다. 그래도 인플레이션이 잡히지 않자 1973년 6월에는 60일 동안 동결 기간을 선포했습니다. 처음에는 이 조치가 대중의 지지를 얻었습니다. 정부가 강력하게 나서니 당장은 인기가 있었나 봅니다. 그리고 실제로 가격도 안 오르니 좋았을 거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벤 버냉키는 이 조치에 대해 "값비산 대가를 치른 채 실패했다"고 기술했습니다. 닉슨의 통제 정책이 시행된 후 소비재 상품과 원자재 생산이 줄었습니다. 벤 버냉키는 이런 예를 제시했습니다. 쉽게 이해됐습니다. "농부들의 경우, 가축 사육 비용은 국제 시장이 정하는 대로 오르는데 비해, 쇠고기와 닭고기의 시장 판매 가격은 제한되는 이중고에 시달렸다. 따라서 가축을 기를수록 적자만 안게 된 그들은 결국 도살하기에 이르렀다. 그 여파로 슈퍼마켓 선반은 텅텅 비게 되었다."(벤 버냉키의 21세기 통화정책, p47) 실제로 물가를 잡는 효과도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통제가 해제되자마자 다시 물가는 치솟았습니다. 벤 버냉키의 결론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이런 통제 정책은 마치 엔진 과열에 대응한답시고 온도계를 고장 내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닉슨은 재선에 성공했습니다. 선거를 앞둔 시행 해서 선거가 끝난, 1974년 4월에 물가 통제 조치를 모두 최종 해제했습니다.
물론 이 이야기는 통화정책이 인플레이션 관리를 위한 주된 수단으로 가는 과정을 설명하는 맥락이었습니다. 정부의 일방적인 시장 개입이 오히려 부작용이 클 수 있어서, 지금처럼 연준이 통화정책으로 인플레이션을 관리하는 시스템을 설명하는 과정이었습니다. 따라서 물가 인상 요인을 억제하기 위해 전기요금 인상을 억제한 것과 다소 결이 다를 수는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정부의 과도한 시장 개입은 효과를 거둘 수도 있지만, 그만큼 부작용도 있을 수 있다는 겁니다. 결국, 어떤 선택도 거기에 대한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는 메시지만은 분명합니다. 전기요금을 올릴 만큼 올리지 않아 물가를 잡는 것만이 완벽한 정책이라는 건 아니라는 겁니다.
그리고, 판단에는 정치적 고려가 담겨 있을 수도 있다고 암시하고 있습니다. 원칙이 아닌 다른 요인의 고려가 클수록 이런 정치적인 오해를 받기가 쉽습니다. 우리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반이고, 그렇다 보니 행정부에 미치는 영향력이 막강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번에도 그렇습니다. 전기요금은 경제현안조율회의에서 최종 결정됩니다. 2022년 전기요금을 결정하는 경제현안조율회의는 2021년 12월 17일에 열렸습니다. 이 자리에는 당시 기재부장관, 산업부장관, 국무조정실장,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 및 정책실장이 참여했습니다. 감사원 감사결과, 당시 산업부는 기본안 미반영시, 불필요한 논란(주주 재산권 침해, 경영진 배임, 정부 관계자 직권남용, 미래세대 비용 전가 등)이 우려된다는 의견을 제시한 걸로 나타났습니다. 결과는 앞서 설명드렸듯이 전기요금을 1분기에 올리지 않고, 덜 올리는 방안으로 나왔습니다. 참 공교롭게도 2023년 3월에는 대통령 선거가 있었습니다. 그러니, 혹시 전 정부가 선거를 의식해서 일부러 요금을 올리지 않은 거 아닌지, 의혹을 제기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감사는 전 정부의 어떤 외압이나 압박이 있었는지에 방점이 찍혀 있지 않습니다. 감사의 대상도 아니었습니다. 전혀 확인된 건 없습니다. 하지만,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는 여지는 어느 정도 있습니다. 특히 원칙을 지킨다는 인식이 확고해지지 않으면, 이런 오해는 끊임없이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래서 감사원은 몇 가지 제안을 내놓습니다. 핵심은 현재 원가연동형 요금제의 허술한 부분을 좀 더 개선하라는 데 방점이 있습니다. 전기 요금 조정을 유보하는 판단 기준이 구체적이지 못하니 구체화시킬 것을 주문했습니다. 기후 환경 요금의 조정 시기에 대한 규정이 없는데 만드는 방안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어떤 이유로 요금을 원칙에 따라 인상하지 못했을 경우 정산금은 어떻게 할지 구체화할 필요성도 제시했습니다. 그러니 부담 없이 인상폭을 줄이자는 제안을 할 수도 있는 겁니다. 예를 들면, 이번에 100원 올려야 하는데 물가 부담, 국민 부담 등으로 50원만 올렸다고 하면, 나머지 50원은 어떻게 보충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까지 논의하라는 겁니다. 현재는 이런 방안은 전혀 논의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니 당장 눈앞에 있는 불만 끄는데 급급하고 미래를 내다보기 어려운 것이죠. 사실 지금 올리지 않은 50원은 언젠가는 내야 할 돈입니다. 그 시점이 몇 개월 후일 수도 있고, 몇 년 후일 수도 있고, 심지어 몇십 년 후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우리가, 혹은 우리의 아이들이 언젠가는 꼭 부담해야 할 몫입니다.
최재영 기자 stillyou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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