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제국 상징 지붕 위 3개 바늘탑… 근대 수탈 상흔 간직 [스페이스도슨트 방승환의 건축진담]
日, 대한제국 재정난에도 군산세관 건립
벨기에산 건축 자재 공수… 공들여 지어
신고전주의 양식 따라 ‘정면 대칭’ 강조
단층건물임에도 지붕 경사 높게 과장해
옛 세관 창고는 인문학공간으로 탈바꿈
예술인·소상공인·청년 모인 북카페로
우리나라 최초의 세관은 부산 동래부에 설립된 두모진 해관이다(1878년 9월29일). 하지만 조선정부와 일본 상인들 간의 무관세 문제로 두모진 해관은 3개월 만에 폐관됐다. 이 사건과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을 계기로 조선 정부는 관세를 관장하는 기관의 필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청나라의 도움을 받아 인천해관을 창설했다(1883년 6월16일).
1905년에는 대한제국의 자금으로 제1차 군산항 축항이 시작됐다. 이듬해 인천해관은 군산지사 청사 건립 계획을 수립했는데, 당시 대한제국의 재무를 총괄하던 탁지부의 건축소 산하 임시세관공사부가 담당했다. 이 시기에 재정 고문으로 온 메카다 다네타로(目賀田種太郞)가 총세무사를 겸임하면서 청나라 명칭이었던 ‘해관’이 일본에서 사용하는 ‘세관’으로 바뀌었다. 인천세관장에도 일본인이 취임했다. 이러한 변화와 함께 군산세관 본관(現 호남관세박물관)이 준공됐다(1908년 6월20일).
건물의 인상을 좌우하는 지붕은 우진각 지붕과 박공지붕이 합쳐진 형태다. 단층 건물이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지붕의 경사는 심하고 높이도 과장돼 있다. 건물의 상징성을 중요하게 생각했음을 짐작하게 하는 부분이다. 지붕 아래에 있는 창은 사무실에 자연광을 드리운다. 작은 건물에 5개의 출입구가 있었다는 것도 특이한 점인데 아마도 세관 업무의 특수성 때문인 듯하다. 현재는 서쪽과 남서쪽에 있었던 출입문이 벽돌로 메워져 있다.
군산세관이 인천해관의 관할하에 있었으니 라포트가 군산세관의 상황을 잘 알고 있었을 수는 있다. 하지만 라포트가 군산세관에 얼마나 관여했는지는 알 수 없다. 라포트의 거주지도 인천 송학동2가 4번지였다. 그는 그곳에 주택을 지어 1905년 5월까지 살았다. 라포트 이후에는 맥코넬이 해관장 직무대리를 맡았고 일본인 세관장이 부임한 이후에는 부세관장으로 일했다. 그래서 군산세관 본관 건립에 더 깊이 관여했던 인물은 라포트가 아닌 맥코넬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라포트가 군산세관 본관 건립에 얼마나 관여했는지는 먹방이 캐릭터를 만드는 스토리라인에 그렇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캐릭터를 만들 때 철저한 역사적 고증이 필요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건물을 두고 ‘식민지 수탈’을 이야기하는 건 역사적 사실이기에 당연하다. 그래서 시대적 아픔과 함께 그 건물에서만 들을 수 있는 이야기를 찾을 필요가 있다. 군산세관 본관은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세관 건물 중 남아있는 유일한 흔적이다. 그리고 라포트를 비롯한 우리나라 세관의 역사와 관련된 인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줄 단 하나의 장소이기도 하다.
방승환 도시건축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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