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변화한다’…보테가 베네타, 컬렉션으로 완성한 여행
미 뉴욕타임스 “마티유 블라지, ‘밀라노의 마법사’”
사실 이 기사는 외신에서 따온 두 문장만 읽어도 된다.
하나는 미국 뉴욕타임스가 최근 이탈리아 럭셔리 패션 브랜드 보테가 베네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티유 블라지를 인터뷰하면서 ‘밀라노의 마법사(The Magician of Milan)’라고 표현한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미국 패션전문 온라인매체 패셔니스타가 지난 9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보테가 베네타의 24여름 컬렉션에 대해 “YOU COULD PROBABLY LOOK AT THE BOTTEGA VENETA SUMMER 2024 FOR HOURS AND HOURS AND HOURS. Matthieu Blazy, you will always be famous, etc.(당신은 보테가 베네타 2024 여름 컬렉션을 두고 두고(몇 시간이고 몇 시간이고) 볼 수 있을 겁니다. 마티유 블라지, 당신은 언제나 유명하겠네요)”라고 쓴 대목이다.
근원적인 아름다움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전 세계 어디든 비슷한 것 같다. 패션쇼 영상을 보는 동안에도, 보고 나서도, 사진으로 다시 봐도, 마티유 블라지의 표현력에 절로 ‘다시 보기’를 하고 있다. 마티유 블라지의 쇼노트(패션쇼의 주제나 자신의 철학 등에 대해 설명한 것) 같은 것을 보지 않더라도, 오랜 수작업을 통해 완성되고 고도화된 정교함으로 마무리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편평한 가죽은 마치 선율을 입힌 듯 몸의 움직임을 따라 유연하게 출렁이고, 폭포처럼 흐르는 풍선 느낌(balloon)의 스커트는 풍성하면서도 형태를 흐트러뜨리지 않는다. 여유로우면서도 늘어지지 않고, 긴장감이 흐르면서도 경직되지 않는다.
데뷔 시즌인 2022 겨울 컬렉션부터 2023 겨울 컬렉션에 이르기까지 3부작에 걸쳐 ‘이탈리아’에 대한 헌사를 담아낸 그가 이번에 끌어낸 단어는 ‘여정(journey)’. 그는 쇼노트를 통해 마크 트웨인의 소설 ‘톰 소여의 모험’ 중 일부를 언급했다. “사람들의 마음에 흥이 솟았고, 마음이 젊은 사람들의 입에서는 노래까지 흘러나왔다. 모두가 밝은 표정으로 경쾌하게 걸어 다녔다.”
이탈리아에 대한 그림을 완성한 그는 이제 시선을 밖으로 돌려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의 디자인 철학이자 신념인 ‘크래프트 인 모션 (Craft in Motion)’을 자연과, 자연을 갈구하는 인간, 우리가 서로 어우러지는 인류애로 확대해 나간다. 마티유 블라지는 말한다. “오디세이(Odyssey·경험이 가득한 긴 여행)는 자유롭고도 희망찬 여행이자 자신이 과거에 어땠는지와 앞으로 누가 되고 싶은지,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이어주는 연결고리예요. 오디세이는 외적이면서 내적이고, 실재하는 동시에 상상할 수 있는 변화와 탈출의 여정이라고 볼 수 있어요.”
여기서 잠시. 마티유 블라지가 처음부터 ‘움직임’(movement)’을 파고들며 디자인을 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여행’은 패션 하우스 어디에서나 한번쯤은 다루는 단어다. 아니, 대부분의 패션 하우스가 ‘여행’에서 출발한다. 즉 굉장히 뻔하거나 지루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밀라노의 마법사’라고 지칭한 뉴욕타임스의 평가답게 마티유 블라지는 여기서 또 한 번의 마법을 부린다. 남들과 평범하게 생각하면 더 이상 마티유 블라지가 아니다.
그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여행을 포착해낸다. 실체적 여행이 아닌 심정적 여행이다. 도시 속 출퇴근 길에 구조적인 숄더 디테일의 테일러드 슈트를 입은 사람들은, 일탈을 꿈꾸며 바닷가에 있는 듯하게 자연적으로 거칠고 딱딱한 모직물 느낌의 옷을 착용하는 것으로 변하여 표현된다. 만원 지하철에 갇혀 있어도 영혼은 이탈리아 카프리섬이나 프랑스 생트로페 같은 휴양지에 머물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지금 이 시점에서 ‘여행을 계획’하거나 ‘여행을 꿈꾼다’는게 새롭지 않게 느껴질 수도 있다. 엔데믹으로 다시 여행이 자유로워졌다고들 한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을 보자. 러시아와 우크라니아 전쟁으로 꿈조차 편하게 꾸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얼마 전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 하마스 간의 무력 충돌까지 발생했다.
마티유 블라지는 우리가 실제 자리를 떠나지 않아도 그가 꿈꾸는 세계로 데려가고 있었다. 세상에 대한 이해와 확장이다. 컬렉션 자체가 하나의 여행을 완성하고 있었다. 쇼장 바닥 타일은 프랑스 일러스트레이터 클레르 티탈랑(Claire Detallante)이 물고기와 새를 모티브로 한 추상적인 세계 지도를 그려냈다. 마티유 블라지는 쇼가 끝난 뒤 현장에 있는 기자들에게 “이 아이디어는 1990년대 콘플레이크 포장지 뒷면에서 착안한 것이다. 집에서도 콘플레이크를 먹으며 여행할 수 있는 지도가 그려져 있었다”라고 말했다.
‘24여름 컬렉션’이지만 쇼엔 4계절이 모두 드러난다. 첫 실루엣으로 선보인 니트 재질의 심플한 수영복은 마치 다른 시대에서 온 듯한 모습으로 다시 한번 ‘변화한다’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마티유 블라지는 외신을 통해 “첫 번째 룩은 일종의 추상적인 수영복이었는데, 이는 정반대로 자신이 있는 세상에 노출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특히 모델은 그의 보테가 베네타 첫 번째 컬렉션인 2022년 가을/겨울 컬렉션의 첫 번째 룩인 화이트 가죽 베스트와 데님 일루전 가죽 팬츠를 가방에 넣고 등장해 이전 컬렉션과의 연속성을 더한다. 이전 시즌에서 선보였던 옷을 벗어 오버사이즈의 바스켓-우븐 인트레치아토(Intrecciato) 백이나 거대한 더플 백 속에 넣고 비즈니스 스타일로 변하는 모습은 전복적인 묘미를 선사하는 것이다. 바나나 잎을 떠올리게 하는 대형 토트백과 신발은 가죽으로 완성돼 자연과 현실의 경계를 잠시 잊게 하고, 풀라드(Foulard) 백으로 변형된 각 나라의 레더 소재 신문은 전 세계를 담고 있다.
킬트 스타일로 감싸거나 사롱처럼 매듭을 묶은 가죽 스커트는 남녀 구분 없이 착용할 수 있다. 부족의 깃털을 두른 듯 재단한 가죽 드레스는 ‘민속 의상’이라는 개념을 ‘범세계적 의상’으로 바꾸어 놓는다. 광택이 나는 가죽 넥타이, 손으로 작업한 프린지(숄이나 스카프 같은 것 가장자리에 붙이는 술장식), 드레스의 거대한 폼폼(pompom·방울) 장식, 마치 인트레치아토 기법을 실로 바꿔놓은 듯한 우븐 스웨터 등은 기성복이라기엔 쿠튀르(최고급 수제 맞춤복)에 가까웠다.
최근 유행하는 ‘올드머니 룩’이나 ‘조용한 럭셔리’가 고상하긴 하지만 지루해보일 수 있다는 단점을 극복한 거의 몇 안되는 컬렉션이었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의 언급은 더 직설적이다. “많은 이탈리아 패션이 하우스의 아카이브를 거의 다시 가져와 디자인하고 DNA를 강화하는 등 과거와 내부로 눈을 돌리고 있을 때, 밀라노 패션위크의 마지막 밤에 더 넓은 세상과 소통하려는 마티유 블라지의 움직임은 신선한 시각의 변화를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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