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1년, 윤 대통령의 ‘무한책임’ 다짐은...[김민아의 훅hook]

김민아 기자 2023. 10. 13.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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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로 숨진 고 최유진씨의 아버지 최정주씨가 지난 11일 경향신문사에서 참사 이후 1년간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작가 황정은은 지난 여름 반려묘와 이별했다. <채널예스>에 그는 썼다.

“15년 동안 대답해온 존재가 이름을 불러도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 이것이 이 정도로 고통스러울 줄은 몰랐습니다. 고통스럽다 못해 부당하게 느껴집니다. (중략) 아프니까 아프다고 쓰고, 슬프니까 슬프다고 쓰는 것을 꺼리는 마음이 내게 작게 있습니다. 몇 해 전에 그렇게 쓴 글을 ‘TMI’라고 부르는 말을 들은 적 있기 때문입니다. ‘Too Much Information’이란 무슨 말일까요? (중략) 알아봤자 내 삶이 나아지지도 않고 기분만 잡치고 가라앉게 만드는 이야기도 이 말의 영역에 들어가 버린 듯합니다. 타인의 고통, 슬픔 같은 것도 말입니다.”

황정은의 글을 읽으며 1년 전(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들이 겪는 고통과 슬픔마저 ‘TMI’로 치부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황정은이 썼듯 “슬픔과 아픔은 정보가 아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최유진씨(사망 당시 22세)의 아버지 최정주씨(54)를 처음 인터뷰한 것은 지난해 12월 14일이었다. 참사 발생 후 40여일 지났을 무렵이다. 당시 그는 여러 차례 눈물을 보이면서도 희망을 이야기했다. “유족들은 지금 우리 정부와 사회가 보이는 모습이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아직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어요. 바로잡아야 하고, 바로잡을 겁니다.”

지난 11일, 열 달 만에 다시 그를 만났다. 담담해서, 슬펐다. 최정주씨는 “1년 동안 아무 것도 바뀐 게 없다. 참담하고 절망스럽다”고 했다.

- 1년 동안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사람들이 그러잖아요. 시간이 지나면 좀 나아질 거다…. 그런데 자식을 잃고 나니 외려 희미했던 기억들이 더 선명해져요. 유진이가 했던 말, 보여준 몸짓 하나하나가 더 생생해집니다. TV를 보거나, 길을 가다가,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도 유진이 또래 아이를 보면, 바로 생각나고요. 좋았던 기억에 웃기도 하다가, 마음이 아프기도 하다가…. 일상 곳곳에서 유진이의 부재를 확인하죠. 그게 가장 힘들어요.”-

- 전에, 따님의 휴대전화로 매일 문자메시지를 보낸다고 하셨는데요.

“계속 보내기는 하는데 이전만큼 자주는 아니고요. 유진이가 없다는 걸 너무 잘 아니까요…. 유진이가 많이 보고 싶을 때는 유진이 엄마한테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모든 부모가 그렇겠지만, 이태원 참사 이후에 저와 유진이 엄마의 삶에서 유진이가 차지하는 비중이 더 커졌어요.”

최정주씨가 지난 11일 경향신문사에서 인터뷰하던 중 손수건을 손에 쥔 채 마음을 추슬르고 있다. 이준헌 기자

- 유가족과 생존자들에게 가혹한 한 해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 누구도 제대로 사과하지 않고, 그 누구도 제대로 처벌받지 않고, 진상규명도 되지 않았어요. 이후에도 수많은 재난과 참사가 일어났고요. 이대로 1주기를 맞을 수밖에 없나 하는 의문과 분노가 가슴 속에 있습니다.”

- 가장 안타까웠던 건 뭔가요.

“그동안 이런 이야기를 했잖아요. 시스템은 갖췄는데,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다…. 그런데 작동하지 않은 시스템은 갖춰진 시스템이 아닙니다. 정권이 바뀌든 사람이 달라지든, 누가 움직이더라도 시스템은 작동해야 하는 거죠. 그런 면에서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만드는 일이야말로, 제대로 된 새 시스템을 만드는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 특별법은 국회 법사위·본회의 처리가 남아있습니다. 본회의를 통과해도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고요.

“특별법은 저희를 위한 법이 아닙니다. 법이 제정된다고 아이들이 살아 돌아오나요? 하지만 독립된 조사기구를 설치해 진상을 규명하고 원인을 찾아 재발방지 노력을 하고, 생존자·목격자·구조자를 포함해 광범위한 피해자들의 권리를 보호해야만, 저희 같은 유가족이 다시 생기지 않을 수 있어요. 다음 세대를 위해 입법이 필요합니다. 이번 국회 임기 내에 통과되기를, 그리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 그리고 또 다른 재난 피해자들과도 만나오셨지요.

“많은 분들을 만나뵈면서, 여전히 되풀이되는 아픔들을 이젠 끝내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유가족들이 이야기합니다. ‘안전을 원하거든, 참사를 기억하라.’ 이태원 참사가 이 정권 초반에 일어난 일이잖아요. 그래서 정부가 저희(유가족과 생존자)를 대하는 모습이 비정상적이었고, 곧 어떤 형태로든 제대로 바뀔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있었어요. 모든 일처리가 상식적으로 바뀔 거라고요. 그런데 이태원 참사를 대하는 이 정부의 모습이, 잠깐 무엇인가 잘못 작동한 게 아니라, 그 자체, 본질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이 사람들은 우리와 다른 사람들인가, 라는 의문이 듭니다. 제대로 된 사과, 책임자 처벌, 진상규명 같은 이야기를 꾸준히 하면 언젠가는 이 사람들에게도 닿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런 기대가 갈수록 옅어집니다. 대통령은 참사 직후 ‘공직자로서의 무한책임’을 언급했습니다. (지난해 10월30일 “우리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안전에 무한책임을 지는 공직자”) 그 이후 어떻게 됐냐면, 윗선은 다 빠지고 현장에 있던 실무자와 소방·경찰 하위직 공무원, 용산구 책임으로 한정됐어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탄핵을 면했잖아요. 모든 공무원들에게 신호가 됐을 겁니다. 복지부동해도 잘못되지 않는다….”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 종교인들이 지난 8월 서울광장에 마련된 시민 분향소 앞에서 참사 300일을 맞아 기자회견을 열고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 서울광장 분향소에 있다보면, 시민들 이야기를 듣게 될 텐데요.

“힘을 내라는 분들이 많지만, 험한 말씀을 하고 가는 분도 많아요. 요즘 1주기 가까워지면서 많은 매체가 분향소에서 촬영이나 인터뷰를 하는데, 지나가던 분들이 기자들한테 ‘왜 찍냐, 뭐하러 찍냐’고 해요. 경찰이 와서 말리면 ‘왜 할 말 못 하게 하냐’고 큰소리를 칩니다. 이런 말도 들었어요. ‘누구냐’ 물어서 ‘유가족’이라 했더니 ‘진짜 유가족 맞냐, 누구 부모냐’고 따지는 겁니다. 저희가 유가족이 아니었다면 몰랐을 이 사회의 민낯을 1년간 서울광장에서 목도하고 있습니다.”

- 유가족들간의 공감, 연대, 유대로 버티실 것 같습니다.

“1년 사이 정말 가까워졌습니다. 서로의 아이들에 대해 잘 알게 되었고요. 그날 이태원에 간 게 잘못은 아니잖아요. 놀다가 죽었다는 식으로 매도되는 데서 가장 많이 아팠습니다. 저희가 아이들의 명예회복을 이야기하는 이유예요. 모든 아이들이 자기 삶을 소중히 여기고, 꿈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크고작은 성취도 있었어요. 나라 지키다 죽었냐는 험한 말도 들었는데요…. 이 아이들이 여느 집의 여느 아이들과 다르지 않은, 똑같이 소중했던 아이들이라는 걸 알리는 게 작은 명예회복의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159명의 아이들은 159개 가정의 빛나는 별이었습니다.”

최정주씨는 드라마 음악감독이다. 딸 최유진씨도 아빠를 따라 음악을 했다. 제주도에서 중·고교 과정을 마친 뒤 미국 뉴욕대 티시(Tisch)예술대학 ‘퍼포먼스 스터디스’ 과정에 들어갔다. 입학 직후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해 서울에서 온라인 수업을 들었다. 작곡을 공부하며 음원도 냈다. 참사가 발생한 이태원역 인근에 작업실이 있었다.

- 159명은 ‘이태원 참사 희생자’라는 분류로만 묶을 수 없는, 한 명 한 명이 존엄한 개인이었습니다. 유진씨가 어떤 개인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나요.

“유진이는 음악을 사랑하고, 자기주장이 강하고, 친구들을 좋아하고,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아이였어요. 유진이가 제 딸이어서 너무 고맙고 감사해요.”

지난 2월 뉴욕대 티시예술대학에서 열린 고 최유진씨 추모행사. 행사장에 놓인 고인의 사진과 에세이는 향후 이 건물 614호에 마련된 추모공간에 영구히 전시된다. 최정주씨 제공

최씨는 지난 2월 미국 뉴욕에 다녀왔다. 뉴욕대 측에서 단과대 차원의 추모 행사를 열어주고, 교내에 추모공간도 조성했다. 추모공간에는 유진씨 사진과 온라인 수업 과제로 제출한 에세이가 놓인다. 유진씨 어머니는 딸이 직접 다니지 못한 캠퍼스 곳곳을 재학생들 안내로 둘러봤다.

유진씨가 중·고교 과정을 마친 ‘NLCS 제주’에서도 지난 6월 전교생을 대상으로 추모행사를 마련했다. 음악연습실 한 곳을 ‘최유진의 방’으로 명명하고, 해마다 열리는 아트페스티벌 중 하루를 ‘최유진의 날’로 정해 기념할 예정이다. 최씨도 딸의 이름으로 장학금을 전달하려 한다.

- 뉴욕대와 제주 학교의 추모하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유진이를 기억하는 방식이 한국에서 경험한 것과 많이 달랐습니다. 진심이 와 닿았습니다. 사실 우리나라도 충분히 그럴 수 있었을 텐데, 참사 직후 ‘관제 애도’의 영향으로 추모다운 추모가 이뤄지지 못하고 결국 사람들이 침묵하게 된 것 아닌가 싶습니다.”

- 1주기인 29일, 유가족협의회가 이태원역~옛 녹사평역 분향소~서울광장 분향소까지 행진할 계획이라고 들었습니다. 정부와 시민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까.

“이태원 참사는 ‘사회적 재난으로 인한 희생을 그 누구도 돌봐주지 않는다’는, 이른바 각자도생의 시작이었던 같아요. 그동안 우리가 알던 세상이 깨지기 시작한 겁니다. 우리가 알아왔던 세상에선, 대국민 사과하고, 책임을 밝히고, 새로운 사람이 사태를 수습하고, 법을 만들고, 모자란 부분을 채우는 과정을 보며 시민들이 위안을 얻었잖아요. 그런 과정이 없는 상황이 참담하고 절망스러울 뿐입니다. 시민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바뀐 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지난 1년을 허송했기 때문에 또 다른 재난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저희가 아니라 그 누구라도 유가족이 될 수 있었습니다. 어떤 부모가, 자식이 죽은 첫 기일을 길 위에서 보내고 싶겠어요. 마음이 너무 아프지만, 그날만큼은 꼭 이야기하고 싶어요. 참사를 기억해야만 안전해지고, 안전을 원하거든 참사를 기억해야 합니다.”

김민아 칼럼니스트 ma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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