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기 장군, 독립군·광복군 활동한 뒤 초대 국방장관… 국군 창설의 상징”[현안 인터뷰]
국군·육사 뿌리, 복잡할 것 없어
독립군의 정신적 가치 기반해
조선경비대 유형골격 가져온것
홍범도 장군·이회영 선생 흉상
독립기념관·전쟁기념관에 적합
육사서 옮겨 독립정신 기려야
국방부, 이전행사 성대히 치러
애국심·희생·헌신 추앙했으면
박남수(66) 철기이범석장군기념사업회장은 “문재인 정부 때인 2018년 육군사관학교(육사) 홍범도 장군 등 5인의 독립영웅 흉상 졸속 설치 및 이후 이전 논란의 핵심은 ‘적합한 인물을 적합한 장소에 세우지 않은 것’에 있다”고 분석했다. 박 회장은 “육사는 국방부 산하 정예장교를 양성하기 위한 군사교육기관으로 그 목적·성격과 수준에 맞는 인물이 선정돼야 할 텐데, 육사 관점에서 홍 장군과 신흥무관학교 설립자인 이회영 선생 두 분은 누가 봐도 독립기념관이나 전쟁기념관에 적합하지 육사에는 적합하지 않은 분들로 인식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2013년 육사 교장을 끝으로 전역 후 대한민국 초대 국방부 장관인 광복군 출신 철기이범석장군기념사업회를 8년째 이끌어온 박 회장은 “‘역사·이념전쟁’으로 비화한 이번 사태의 최대 피해자는 첫 번째 홍범도 장군, 두 번째는 육사이며 국민도 피해자가 됐다”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독립군 항일무장투쟁사에 정통한 박 회장은 2017년 12월 육사 충무관 세미나실에서 열린 ‘육사 기원에 대한 세미나’에서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등에 깊이 관여한 일부 정치인의 “이제 우리 국군도 김원봉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발언을 듣고 귀를 의심했다고 한다. 당시 박 회장은 “이 문제는 ‘판도라의 상자’와 같아서 열리는 순간 아주 복잡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큰 우려를 표시했고, 그의 예상은 그대로 적중했다. 인터뷰는 추석 연휴 전인 지난달 21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진행했으며 이후 전화 통화를 통해 내용을 보충했다.
―논란이 확산된 근본 원인은.
“논란의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 육사가 육사의 기원이라는 주제를 넘어 합의되지 않은 국군의 근원이라는 국방부 소관 업무를 직접 시행한 것이다. 육사의 기원론도 아주 논란이 많은 주제인데, 국군의 기원론은 한층 더 국내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어갈 수밖에 없는 주제다. 그런데 왜 육사 스스로가 ‘월권’을 하면서까지 이 논란 많은 일을 행한 것인지 의문이다. 육사는 정예장교를 육성하는 군사교육 현장기관이다. 육사의 모든 정책, 그중에서도 정신교육 분야는 정예장교로서 자질을 함양하는 데 집중돼야 하는데 어느 순간 육사가 독립기념관이나 전쟁기념관이 된 것이다. 육사가 스스로 논란 많은 국내 정치적 게임에 뛰어들어간 모양새인데, 정치적 배경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무능, 무책임, 무지의 소산인지 해명이 필요하다.”
―육사 흉상 설치 및 이전 논란이 벌어진 배경은.
“이번 논란의 본질은 ‘적합한 인물을 적합한 장소에 세운다(right person, right place)’는 원칙을 적용하지 않은 데에 있다. 육사의 모든 정책, 그중에서도 정신교육 분야는 정예장교로서 자질을 함양하는 데 집중돼야 한다. 최초 5인의 독립운동 영웅들의 흉상이 세워졌을 때 이를 본 대다수의 육사 출신 장교 및 생도들은 이회영 흉상은 좀 생소하고, 홍범도 흉상은 ‘이분 흉상이 왜 여기에?’ 하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 두 분의 애국과 독립정신, 희생·헌신은 대단히 훌륭하고 국민 모두 본받고 추앙해야 한다는 사실은 분명히 인정하지만 두 분을 육사 교정에 세운다는 것이 과연 적합한 인물을 적합한 장소에 세운 것으로 인식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육사는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역사 정신을 가르치거나 기념하는 곳이 아니다. 육사 흉상 설치는 냉정하게 점수를 매긴다면 60∼70점을 넘기기 어려운 결정이었다.”
―국방부와 육사는 홍 장군 흉상 육사 밖 이전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바람직한가.
“정예장교 양성 군사교육기관인 육사의 설립 목적과 성격, 수준에 맞는 인물이 선정돼야 할 텐데, 육사 관점에서 이 두 분은 누가 봐도 독립기념관이나, 좀 더 양보해서 전쟁기념관에 적합한 분들로 인식할 수밖에 없다. 육사의 홍범도 흉상 이전 움직임은 육사 제자리 찾기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역사 전쟁으로 누가 가장 큰 피해를 보았나.
“현 단계에서 이 사태가 초래한 최대 피해자는 결과적으로 첫째는 홍 장군이요, 두 번째는 육사, 나아가 국민이다. 첫째, 홍 장군은 당시 정권의 과도한 띄우기와 적합하지 않은 위치에 충분한 공감대 없이 흉상을 건립하면서 이를 반대하는 언론 및 국민 여론에 의해 그의 가족의 희생과 평생의 독립운동 헌신은 사라지고 공산주의자라는 딱지만 부각되는, 정치적 희생양이 돼버렸다. 둘째, 육사가 다시금 정치판의 한가운데에 놓이는 지극히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그리고 우리 국민은 다시 얻기 어려운 독립전쟁 영웅 한 사람을 잃어버리는, 국민적 자존심에 상처만 남는 비극에 빠지고 말았다.”
―육사나 국군의 뿌리 논쟁도 덩달아 부각되고 있다.
“이 문제는 그리 복잡할 것도 없다. 독립군·광복군 태동론이나 광복 후 미군정하 태동론 모두 정확하지 않다. 이미 이 문제는 그동안의 노력으로 어느 정도 군에서도 합의한 상태인데 또다시 정치적 문제로 돌출됐다. 국군이나 육사는 독립군·광복군의 정신적 가치라는 무형적 기반 위에, 미군정이 만든 조선경비대·조선경비대사관학교라는 유형적 골격을 가져와 형성하였다는 이분법적 접근법이 정확하다. 이는 실용과 자주를 겸비하는 것이요, 헌법에서 말하는 임시정부의 법통 계승에도 부합하고, 초대 국방부 장관 철기 이범석이 이미 국군훈령 제1호로 천명한 것이다. 당시 이승만 초대 대통령을 비롯해 국민적 열망으로 독립군·광복군 출신인 철기 장군을 초대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해 국권 회복 후 국가를 수호할 국군을 건설하게 한 그 자체가 이를 상징한다.”
―일각에서 제기한 신흥무관학교 육사 연원설은 어떻게 평가하는가.
“이회영 선생이 세운 신흥무관학교의 육사 연원설이 이번 흉상 설립·이전 문제로 돌출하게 됐다. 이회영 선생의 헌신과 희생은 분명히 높이 평가받아야 함에는 틀림없는 사실로 국민 모두, 육사 생도들도 잘 알고 있으나, 육사의 근원을 특정 단체 하나로 보기에는 객관적으로 무리가 따른다. 2017년 육사 충무관의 ‘육사 연원에 대한 육사 주관 학술 세미나’에서, 당시에도 육사 2학년 한 여생도가 질문하기를, ‘발표자가 이화여대의 예를 들어 이화여대는 정동의 한옥 교사에서 시작된 것을 근원으로 한다고 하였는데, 이는 사설 학교기관으로서는 매우 감동적인 이야기지만, 육사는 국가의 군사교육기관인데 당시 상하이임시정부가 정식으로 인정한 것도 아닌 특정 사설 군사양성 단체를 육사의 근원과 연결한다는 것은 이해가 안 된다’는 질문을 했다. 당시 세미나에 참석했던 대부분의 육사 생도나 교수진의 인식을 대표하는 것이었다. 또 그 자리에서 당시 집권당 소속의 모 정치인은 기조연설에서 ‘이제 우리 국군이 김원봉을 받아들일 때가 됐다’고 하는 경천동지할 폭탄성 발언을 했다.”
―신흥무관학교의 조선의용대, 인민군 주력부대 연관설은 어떻게 보는가.
“당시 중국 본토 화북 지역에 산재해 있던 조선인 항일무장 세력의 상당 부분이 조선의용대에 가담하고, 조선의용대는 후에 연안의 팔로군과 만주의 항일연군에 가담한 후, 광복 이후에 북한으로 들어가 6·25 남침 시 인민군의 주력부대(21개 연대 중 10개 연대)가 됐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신흥무관학교 출신의 대표 격인 김원봉의 예에서 보듯, 신흥무관학교 출신 상당수가 좌익으로 기울어 조선의용대에 가담하고, 이들이 나중에 북한으로 들어가 인민군 주력부대의 지휘관이 됐다고 추정되고 있다. 이러한 추정이 존재하는 한, 신흥무관학교의 육사 연원설은 좀 더 신중히 연구된 후 접근해야 할 파괴력이 매우 큰 중대한 사항이다.”
―이번 사태의 해법은.
“진영 간의 극한 대결 속에서 우리는 솔로몬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 이 사태가 길어질수록 홍범도와 육사의 내상은 깊어질 것이고 국민의 자괴감은 커질 것이다. 양측이 한 발짝씩 물러나, 이미 홍 장군의 흉상은 이전하기로 국방부가 결정했으니 그 범위 내에서 독립운동 단체가 주장하듯 홍 장군은 그 업적에 맞게 전쟁기념관이나 독립기념관에 제대로 모시는 행사를 하고, 육사에 대해서는 육사의 제자리 찾기를 지원하면서 정예장교의 한 치의 빈틈없는 정신 무장을 위한 군사적 요구를 충족시켜줘야 한다.”
―독립기념관 이전은 홀대라는 주장도 나온다.
“독립기념관에 모시면 홀대라고 주장한다면 이는 지나치다. 국가 기관은 법과 규정에 입각해 각자의 성격과 기능이 있다. 독립기념관은 국민을 대상으로 국가적 수준에서 폭넓게 독립영웅들을 모시고 숭모하는 기관이고, 육사는 범위를 좁혀 생도들에게 국가 방위와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정예장교로서의 굳건한 군인 정신 함양이라는 가치관 형성에 적합한 위인이나 영웅들의 정신과 업적을 강조하는 곳이다. 육사에 세우면 숭모고 독립기념관에 모시면 훼손이라는 주장은 자기모순에 불과하다.”
―졸속 흉상 설치 이전을 방지하기 위해 육사 차원의 제도적 보완이 필요해 보인다.
“앞으로 육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러한 논란이 발생하지 않도록 육사라는 기관의 성격과 수준에 맞는 의사 결정을 하는 시스템을 잘 마련해야 한다.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한 위원회를 공개적으로 구성하고 관련 학자나 전문가, 육사 총동창회 대표, 역대 육사 교장단 대표 등 내외로 균형 잡힌 인사로 위원회를 구성, 육사의 목표와 성격에 맞는 조견표를 만들어 투명하고 균형된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 육사는 육사에 맞는 정책을 시행해야지 정치적 변화에 따라 그 영향력에 휘둘린다면 이는 군사문화 후진국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수준밖에 안 될 것이다. 국방부는 국방부대로 6·25전쟁 연구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독립전쟁에 관해서도 군사편찬연구소를 통한 연구와 함께 전쟁기념관의 성격과 정책을 재조정해 국방부 수준에서의 관련 사업이 시행되도록 해야 한다. 국방부는 5인의 독립영웅들의 흉상을 전쟁기념관 또는 독립기념관으로 이전하는 성대한 행사를 준비해 이분들을 기리는 일에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야반도주하는 트럭에 짐짝처럼 실어 몰래 육사 밖으로 내보낸다는 것은 그분들과 나아가 국민에게 수치심을 주고 자부심에 상처를 내는 일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면 국방부와 육사는 두 번 죽게 된다. 이제 홍범도의 공산주의자 여부만 부각하는 협소한 접근에서 벗어나고, 육사는 육사가 추구하는 생도 가치관 형성에 주력하도록 유리한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육사 성폭행 사건때 책임지고 전역… 이범석 리더십·항일무장투쟁사 연구
■ 박 회장은…
박남수 철기이범석장군기념사업회장은 육사 교장 시절, 대한민국 최고의 호국간성을 육성해내는 육군 장교 양성의 요람에서 충격적인 ‘성폭행’ 사건이 벌어지자 “리더는 깨끗이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며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옷을 벗었다.
박 회장은 당시 육사가 실추된 명예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은 떳떳이 책임지는 길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합참 작전기획부장과 육군 수도방위사령관을 거치며 육군참모총장 후보로도 거론되던 박 회장은 미련 없이 40년 군 생활을 마감했다.
당시 군인다운 군인, 참군인의 표상이란 평가가 나왔다. 전역 후 ‘군인 이범석을 말한다’를 집필하는 등 철기의 리더십과 항일무장투쟁사를 연구해 왔다. 그는 광복군 출신 대한민국 초대 국방부 장관인 철기 이범석에 대해 “독립전쟁의 영웅이면서 대한 국군 건설의 아버지”라며 “독립 투쟁의 역사와 정신을 대한 국군에 연결한 상징적 인물”이라고 했다.
△국방개혁실 국장 △제26기계화보병사단장 △합참 전비태세검열실장·작전기획부장 △수도방위사령관 △육군 사관학교장 △철기이범석장군기념사업회장 △국가전략연구원 국방전략센터장
정충신 선임기자 csjung@munhwa.com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함정 단속?”… 도로에 설치 과속단속함 85% 카메라 없는 ‘빈껍데기’
- “300만 원씩 토해내라고?” 코로나 손실보상금 받은 사장님들 ‘비상’
- 유발 하라리 “하마스 공격은 포퓰리즘 대가”
- 서정희 “서세원 내연녀, 내가 교회로 전도했는데…”
- 유튜버 김용호 부산 호텔서 숨진 채 발견…극단적 선택 추정
- 與 한기호 “9·19 잘못된 결정할 때 장군들 뭐했나…별 달았으면 부끄럽지 않게 살라”
- 학교서 女교사 화장실 몰카 찍다 발각된 고교생들…휴대폰 영상 봤더니
- 임현주 아나운서 “신생아 이동중”…누리꾼 ‘갑론을박’
- 이스라엘군, 하마스 사용 북한제 F-7로켓 압수…이란 통해 유입된 듯
- ‘치매 진단’ 브루스 윌리스, 근황 공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