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요리의 세계화… 그 이면엔 전쟁과 식민주의가 있다[북리뷰]

2023. 10. 13.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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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요리의 세계사
이와마 가즈히로 지음│최연희·정이찬 옮김│따비
日, 청일전쟁 때 만주 침략한 뒤
도쿄에서 교자 등 中요리 유행
英, 홍콩 점령 후 中식당 넘쳐나
韓, 淸 군대 들어온 임오군란 후
인천·부산 등서 中요리집 번성
격변의 근현대사 겪은 중국음식
답사·고증 통해 ‘발전과정’추적

음식은 최상의 소프트파워다. 인간은 먹지 않고 살 수 없기에, 맛있는 음식은 민족과 지역을 뛰어넘어 사람들 마음을 직접 파고들고, 몸에 깊은 흔적을 남기며, 그 뿌리를 향한 동경을 일으킨다. 한 나라의 영향력은 그 나라 음식이 세상에 얼마나 널리 퍼졌는지로 가늠할 수 있다. 각국 정부가 국민 요리를 육성하고, 이를 퍼뜨리기 위해 애쓰는 이유다.

근대 이후 세계는 패권을 둘러싼 여러 제국의 각축장이면서 국민 요리의 쟁투사라고 할 수도 있다. 요리는 곧 정치 공세였다. 1814년 빈 회의에서 프랑스 외교관 탈레랑은 천재 셰프 카렘의 요리를 내세워 회담을 주도하려 했고, 중국은 국빈만찬을 능수능란하게 활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요리를 이해할 수 없는 사람과는 정치와 외교를 함께 논할 수 없다.

‘중국요리의 세계사’에서 이와마 가즈히로 일본 게이오기주쿠(慶應義塾)대 교수는 중국요리의 세계화 과정을 추적한다. 베이징(北京)과 상하이(上海)에서 서울과 교토(京都), 방콕과 자카르타를 거쳐 샌프란시스코와 런던에 이르는 현장 답사와 방대한 문헌 자료를 통한 엄밀한 고증으로 저자는 중국요리의 역사를 실증적으로 파헤친다.

본래 중국요리라는 건 없다. 중국처럼 민족 많고 영토 넓은 국가엔 광둥(廣東)요리, 베이징요리, 쓰촨(四川)요리, 상하이요리처럼 지역과 민족에 따라 식문화가 달리 발전하는 까닭이다. 중국요리는 근대 국민국가의 산물이다. 뿌리는 청나라 요리에 있고,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후에 비로소 그 실체를 얻었다.

청나라 궁정 요리는 만주족이 즐겨 먹던 중국 동북 지방 요리를 근본으로 삼고, 베이징 지역의 산둥(山東)요리와 강남 요리가 혼합된 요리다. 오늘날 중국 정부는 이를 바탕 삼아 중국요리를 발명했다. 가령, 제비집, 샥스핀 등은 청나라 때 한족 관료의 고급 접대 요리였고, 탄자차이는 광둥의 한 미식가가 개발한 요리였으나, 국가 연회에 널리 쓰이면서 대표 중국요리가 됐다.

오늘날 중국요리는 전 세계 어디에나 있다. 근대 이후, 세계 최대의 노동력 공급국이었던 중국은 값싼 노동자들과 함께 식문화도 수출했다. 화인(華人), 즉 중국 이주민이 있는 곳이면 어디나 중국요리도 존재했다. 쑨원은 말했다. “미국 도시 가운데 중국요리점이 없는 도시는 없다.”

처음에 중국요리는 현지 재료로 고향의 맛과 전통을 최대한 가깝게 재현하려 애썼다. 주변에서 흔히 보이는 광둥요리, 산둥요리 등은 그 결과다. 그러나 중국요리는 점차 그 나라 식문화와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현지화하거나 새로운 요리로 발전했다. 그중에는 한국의 짜장면과 짬뽕, 미국의 촙수이, 일본의 라멘과 교자, 태국의 팟타이, 베트남의 퍼, 인도네시아의 나시고랭, 페루의 로모 살타도 등처럼 그 나라 일상에 스며든 국민 음식도 흔했다.

중국요리의 세계화에 크게 이바지한 건 아이러니하게도 아시아를 침략했던 제국들이었다. 청일전쟁 이후 도쿄(東京)에는 엄청난 수의 중국요리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일본 군대가 타이완과 만주를 점령하자, 교자나 칭기즈칸 같은 만주 요리나 타이완 요리가 일본에서 크게 유행했다.

홍콩을 식민지 삼은 영국, 인도네시아를 점령한 네덜란드, 베트남을 강점한 프랑스 등도 마찬가지였다. 런던, 파리, 암스테르담 등엔 중국요리점이 넘쳐났다. 오리엔탈리즘에 사로잡힌 유럽인들은 아시아 요리와 중국요리를 구별하지 않았고, 인도네시아인, 베트남인 등은 인기 높은 중국요리를 자국 요리와 함께 내놓는 퓨전 식당 또는 중국요리점을 운영하곤 했다.

반대로, 한국에서 중국요리의 확산은 청나라 제국주의의 결과였다. 1882년 임오군란 이후, 인천, 부산, 원산에 설치된 중국 조계는 중국요리가 자리 잡고 퍼져나가는 중심지가 됐다. 일제강점기 때 서울에서 번성했던 대형 중국요리점은 항일 활동가의 주요 거점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중국요리의 세계화엔 제국주의와 식민주의가 깊은 영향을 끼쳤다. 중국인 이주자들은 미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한국 등에서 때로는 환영받고, 때로는 차별과 박해, 탄압과 학살을 견디면서 뿌리내렸다. 중국요리도 마찬가지였다. 800쪽이 넘는 이 책은 중국요리에 대한 학술적 성과를 집약한 종합 안내서이자 어떻게 새로운 문화가 탄생하는지를 보여 주는 길잡이다. 816쪽, 4만8000원.

장은수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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