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상태로는 회복 힘들다" 최고령 감독의 냉정한 한 마디, 韓배구는 현실 직시부터 시작했다
아시아 무대에서도 경쟁력을 잃은 한국 남자·여자배구를 두고 모두의 의견이 일치했다. 한 마음이 된 배구계가 어떻게 위기를 극복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호철(68) IBK 기업은행 감독은 12일 서울특별시 강남구 청담동 리베라호텔 베르사이유홀에서 열린 2023~2024 V리그 여자부 미디어데이에서 "현 상태로는 회복하기 힘들다"고 냉정하게 평가하면서 "시스템 문제를 바꾸지 않는 한 (이러한 악순환이) 계속될 것이다. 구체적으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든 감독이 본인 팀을 위해서가 아니라 한국 배구 전체를 위해서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한다"고 강하게 말했다.
2023년은 한국 배구계에 있어 최악의 한 해였다. 남녀부 모두 국제 대회에서 최악의 성적을 거두면서 김연경(35)의 존재와 V리그 흥행에 가려져 있던 약해진 국제 경쟁력을 재확인했다. 무엇보다 미국, 유럽이 아닌 아시아 무대에서도 경쟁력을 잃은 것이 치명적이었다.
임도헌 감독이 이끈 한국 남자배구 대표팀은 7월 아시아배구연맹(AVC) 챌린지컵 3위에 그치면서 우승팀에 주어지는 2024 국제배구연맹(FIVB)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 참가 자격을 얻디 못했다. 9월 AVC 아시아선수권대회는 5위로 마무리해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졌고, 세계랭킹 73위(9월 기준) 인도, 51위 파키스탄에 패하면서 1962년 자카르타 대회(5위) 이후 61년 만의 아시안게임 노메달로 대회를 마쳤다.
세자르 에르난데스 감독이 이끈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은 2년 연속 VNL 12연패로 최악의 스타트를 끊었다. 지난달 열린 아시아배구연맹(AVC) 아시아선수권 대회를 역대 최악의 성적인 6위, 2024 파리올림픽 예선까지 7전 전패로 마치며 불안감을 키웠다. 특히 아시아 무대에서마저 경쟁력을 잃은 아시아선수권 대회 과정이 충격적으로 다가왔는데 그 시작이 첫 경기였던 베트남전 2-3 패였다. 뒤이어 태국과 카자흐스탄에 연달아 0-3 셧아웃 패배를 기록하면서 1975년 이후 첫 노메달의 수모를 겪었다. 본 게임이라 여겼던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도 이변은 없었다. 베트남에 세트 스코어 2:0으로 앞서다 2:3으로 역전패를 당하더니 중국에 셧아웃 패를 당해 4강 진출이 좌절됐고 최종 7위에 그쳐 2006 도하 대회 5위 이후 17년 만에 아시안 게임 4강 진출이 무산됐다.
결국 지난 8일 배구협회는 "최근 국제대회에서 성적 부진에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하며, 응원해 주신 국민 여러분과 배구 팬들께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는 사과문과 함께 이번 대회를 끝으로 임기가 끝난 임도헌 감독과 재계약을 포기했음을 알렸다. 남·여 경기력향상위원장 역시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다.
국제 경쟁력 향상을 위한 발걸음은 현실을 직시하는 데서 시작했다. 남자배구 대표팀의 맏형이자 프로 17년 차를 맞이한 한선수(38·대한항공)는 11일 미디어데이를 앞두고 가진 인터뷰에서 "안타깝다. 선수로서 도움을 주고 싶어 갔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선수들에게 너무 미안하다"며 "모두가 확실하게 느꼈을 것이다. 이번 실패가 모두의 머리 속에 각인이 됐을 것이다. 선수들이건 배구 협회건 모든 분들이 다 바뀌어야 된다. 그걸 깨달은 것만으로도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힘줘 말했다.
이어 "모든 것을 바꿔야 한다. 어느 하나가 팀에 이득이 된다면 그것을 실천해야 한다. 그런 실천도 없이 '뭔가를 해야 한다' 판단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일단 '뭔가를 해보고 이게 맞다, 아니다'를 판단해야 하는데 어떤 시도와 변화 없이 선수들한테만 맡기는 시스템으로 무언가를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여자배구 대표팀 에이스로 활약한 강소휘는 국제대회서 느낀 바를 V리그에 어떻게 적용하겠느냐는 질문에 "미국, 유럽 선수들의 블로킹 높이가 우리와 차이가 상당했다. V리그에서도 타점 높은 공격을 시도하면 좋을 것 같다"고 전했다.
미디어데이에서 만난 선수들은 대표팀에 나섰든 아니든 모두가 그 책임을 통감했고 반성하고 더 나아지려 애썼다. 하지만 선수 최고참과 최연장자 감독이 입 모아 이야기했듯 선수들의 책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유소년 배구부터 전술, 육성 시스템까지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바뀌려는 노력을 해야 희망이 있다. 지난 시즌 도중 흥국생명을 맡아 한국배구를 경험한 아본단자 감독은 현재 한국 배구의 문제점과 나아가야 할 방향을 묻는 질문에 "다 말하자면 길다. 짧게 이야기하면 외국인 선수 수를 늘리는 것도 국내 선수 성장의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배구협회는 '뼈를 깎는 쇄신'을 하겠다며 중장기 발전 계획 수립을 예고했다. 오는 11월 외부인사를 주축으로 하는 공청회를 개최, 방향성 설정 과정을 가지기로 했다. 또한 새 지도자 영입에 심혈을 기울이고, 대표팀 선수들을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한국배구연맹 역시 배구협회와 뜻을 모을 것으로 알려져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된다.
김동윤 기자 dongy291@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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