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서 드러난 한국 복싱 처참한 현실…원로가 말하다 “외교 무시-국제 기준 안 따르면 쇠퇴의 길 지속” [SS포커스]

김용일 2023. 10. 13.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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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인천 남동체육관에서 열린 제2회대한체육회장배 전국생활복싱대회 경기 모습. 인천 | 김용일기자


[스포츠서울 | 김용일기자] 한국 복싱은 최근 막을 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통해 아시아에서도 변방으로 밀려난 수준을 여실히 보였다. 5년 전 열린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대회에서는 여자 간판 오연지(울산광역시청)가 여자 60gk급에서 금메달을 따냈지만 이번엔 ‘노골드’에 그쳤다. 특히 오연지는 대회 16강에서 북한의 원은경에게 심판 전원일치 판정패했다. 여러 판정 시비로 오연지가 국제 대회에서 피해를 본 적이 있지만 이번엔 코치진의 전략 부재와 더불어 경기력에서 밀렸다.

한국 복싱은 이번 대회에서 남자 92kg급에 나선 1988년생 노장 정재민(남원시청)이 동메달을 목에 건 게 유일한 소득이었다.

지난 1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 체육관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복싱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정재민(남원시청)이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항저우 | 연합뉴스


한국 복싱은 올림픽에서만 금메달 3개,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60개를 따내는 등 국제 무대에서 효자 종목으로 불렸다. 그러나 대한복싱협회가 장기간 관리위원회 체제로 돌아선 것처럼 최근 10년 사이 각종 내홍과 파벌 다툼에 시달렸고, 외교력 실종으로 재능 있는 선수들이 국제 대회에서 여러 판정 피해를 떠안아야 했다.

유재준 전 대한복싱협회 회장. 스포츠서울DB


대표적인 복싱 원로인 유재준(75) 전 복싱협회 회장은 최근 본지와 만난 자리에서 복싱인이 하나가 돼 처절한 개혁 의지를 두지 않으면 쇠퇴의 길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을 시작으로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등에서 복싱 국제 심판으로 활약한 그는 2009년 복싱협회 회장직을 맡아 2년 가까이 수장 노릇을 했다. 이밖에 국제복싱협회(IBA) 집행위원, 아시아복싱연맹 부회장 등을 경험했다. 이번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앞두고는 사비 1000만원을 협회에 기부, 대표팀을 지원했다.

그러나 또다시 한국 복싱이 국제 무대에서 재기의 발판을 놓지 못하자 한탄했다. 유 전 회장은 “일단 협회가 관리위원회 체제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복싱에 대한 진정성을 둔 회장을 잘 선임했으면 한다. 그저 특정 기업의 오너, 돈이 많은 회장 등 예스러운 방식으로 선임할 게 아니라 복싱의 현실을 느끼고 모두를 아우를 존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물론 복싱처럼 어려운 여건의 종목을 경제적 능력을 지닌 회장이 이끌어주면 좋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게 경기인을 돕고 선수를 정말 사랑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국내 복싱계의 화두로 꼽히는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행정 체계를 여러 번 언급했다. 현재 전국체육대회 등 국내 대회와 올림픽·아시안게임 등 국제 대회의 체급이 다르다. 특히 여자부는 올림픽이 6체급인데 전국체전은 단 3체급으로 운영된다. 남자는 18세 이하, 대학, 일반부로 나뉘어 경쟁하는 것과 다르게 여자는 일반부만 존재한다.

복싱 한 관계자는 “‘제2 오연지’를 배출하기 위해서는 저변이 넓어져야 한다. 여자부도 최소 18세 이하(고등부) 편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큰 데, 대한체육회에서는 선수 수급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실상은 비용 문제다. 고등부가 생기면 창단 의사가 있는 학교가 많다”고 목소리를 냈다.

유 전 회장도 거들었다. “기초를 다지려면 중학교, 고등학교 선수가 소년체전 등에 뛰어야 한다.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과 체급 수는 맞춰서 선수를 키우는 게 모든 종목의 기본”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국제 대회와 체급이 다른 건 대표급 선수가 성장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여자 복싱의 미래로 불리는 57kg급 임애지(화순군청)만 하더라도 전국체전에 자기 체급이 없어 ‘일인자’ 오연지의 60kg급으로 올려 출전한다. 매번 오연지에게 우승을 내주면서 빛을 보지 못한다. 주요 아마 종목 선수는 전국체전에 출전하는 소속팀의 명예를 드높이면서 계약 연장을 통해 안정적인 생활을 꾸리는 데, 여자 복싱인은 설 자리가 부족해 위기의식을 느끼고 국제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유 전 회장은 협회 내 국제 인력 수급도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우리는 100m 달리기처럼 기록경기가 아니다. 복싱은 외교를 무시 못 한다. 국제 인력을 통해 꾸준히 외교도 해야 한다.” 끝으로 그는 “체급 문제나 외교 등 우리 복싱이 국제 기준을 존중하지 않고, 호흡하지 않으면 회복 불가능 상태가 올 것”이라며 “누군가 우리 메달을 훔쳐 갈 수도 있다. 모두 인식을 바꿨으면 한다”고 소망했다. kyi048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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