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 등뼈 드러난 고양이가…'새끼'를 물고 왔다
[편집자주] 이제는 소중한 가족이 된, 유기동물 이야기를 하나씩 들려 드립니다. 읽다 보면 관심이 생기고, 관심이 가면 좋아지고, 그리 버려진 녀석들에게 좋은 가족이 생기길 바라며.
눈이 동그란 회색 고양이도, 힘겹게 그해 겨울을 견디고 있었다. 먹을 걸 찾느라 길을 헤매었으나 부질없는 날이 더 많았다. 찬 바닥을 딛는 발걸음은 뗄수록 더 묵직해졌다.
그리 정처 없이 다닐 때였다. 서하씨 아버지가 배회하던 회색 고양이를 보았다. 그의 사무실 앞이었다. "어, 고양이네"하고 말 수도 있었으나 그러지 않았다. 문을 열었다. 바깥을 내다보았다.
회색 고양이는 삐쩍 말라 있었다. 제대로 먹지 못한 듯 했다. 등뼈가 드러나고 갈비뼈가 만져질 정도였다. 몹시 위태로워 보였다.
그걸 본 서하씨 아버지가 이리 말했다. 아마도 고양이가 좀처럼 길에서 들어보기 힘들었을, 다정한 말이었다.
"우리 집에 고양이 사료가 있단다. 그걸 가져와서 줄게. 그러니 내일 꼭 오렴."
회색 고양이와 말로 나눈 귀한 약속. 밥을 주겠단 약속. 언어가 달라도, 고양이가 알아들었을진 몰라도, 약속은 약속이었다. 하물며 이 추운 겨울에, 생사(生死)를 가를 약속이라면 더 그랬다. 잊어버릴 수도 있었으나 그러지 않았다.
다음날, 회색 고양이는 전날과 같은 시간에 사무실 앞으로 찾아왔다. 기막힌 생의 의지였다. 서하씨 아버지는 그릇에 사료를 부어주었다. 앙상한 고양이는 허겁지겁 밥을 배불리 먹었다. 모처럼의 좋은 식사였다.
매일 거의 비슷한 시간에, 회색 고양이가 찾아왔다. '여기에 오면 밥을 먹을 수 있구나', 그리 생각하는듯했다. 칼바람이 불어도 꽁꽁 얼어붙은 세상이어도, 뜨뜻한 난로 같은 곳 하나쯤은 있었다. 그 불을 지핀 건 오롯이, 외면할 줄 모르는 인간의 마음이었다.
회색 고양이는 사무실 안에도 들어오고, 책상을 한 자리 차지하고 앉기도 했다. 하루 한 번, 밥을 먹으러 만났으나 정이 쌓이고 맘을 나누는 시간이기도 했다.
한 달 반쯤 지났을까. 회색 고양이가 임신을 한 채 나타났다. 홑몸이어도 힘든 겨울에 새끼까지 생긴 거였다. 걱정이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회색 고양이가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이를 본 서하씨 아버지가 회색 고양이에게 말했다. 처음 만났던 그날처럼 따뜻했다.
"새끼들 돌봐줄 테니 전부 데리고 오렴. 잘 키워줄 테니."
다음날이 됐다. 기특하면서도 소름 돋는 일이 벌어졌다. 회색 고양이가 새끼들을 하나씩 입에 물고 온 거였다. 하양, 갈색, 얼룩이, 회색이. 그리 다해 모두 네 마리였다.
그때부터 회색 고양이에겐 '써스컷'이란 이름이 생겼다. 서하씨 아버지가 판매하시는 공구 이름이었는데, 마침 신상품이 나와서 그걸로 지었단다.
그러던 어느 날, 써스컷을 잃어버린 일이 생겼다. 아픈 것 같아 병원에 데려가던 중에, 사거리 12차선을 넘어 쏜살같이 도망갔다. 서하씨는 SNS로 사람들에게 찾아달라고 알렸다. 하늘이 노래졌다.
"써스컷! 써스컷!"하고 새벽에 찾아다닐 때였다. 서하씨 아버지가 테니스코트 쪽에 가서 "써스컷!"하고 부르자, 쪼르르 나와서 그에게 폭 안겼다. 기적 같은 일이었다.
"정이지요. 정이 너무 무서워요. 이름을 지어준 순간부터 원래 우리 가족이었던 것 같아요. 안 보이면 걱정되고, 너무 마음이 쓰여서, 바로 집에 데리고 왔어요."
첫째 고양이와는 한 달 정도 분리해서 키우다가 합사했다. 둘째 고양이가 된 거였다. 다행히 잘 지냈다.
그리 가족이 된 지 벌써 8년째. 함께 살며 써스컷에 대해 더 깊이 알게 됐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애교가 정말 많단 것. 눈치도 빠르고 말귀도 잘 알아듣는단 것. 셋째 막내 고양이가 들어왔을 때 먼저 다가가 어미처럼 핥아준 것. 그 좋아하는 간식도 다 양보했단 것. 원래는 어느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였는데, 잃어버린 뒤 길에서 지내왔었단 것도.
집에서 지내며 살도 오르고 건강히 지내던 써스컷. 그런데 최근 유선종양을 판정받았다. 폐에도 전이가 됐단다. 서하씨는 "매번 써스컷을 볼 때마다 기특하고 짠했는데, 믿기지 않아 눈물도 안 났다"고 했다. 서하씨의, 누구보다 좋은 동생이 된 써스컷. 그에게 언니가 할 말이 있다고 했다.
"더 빨리 친해져서 집에 데려왔으면 좋았을걸. 그럼 안 아팠을 텐데, 그리 자책할 때가 있어. 남은 삶은 고통 없이 행복했으면 좋겠어. 사랑으로만 채워졌으면 싶어. 너무 착하고 순해서 더 미안한 우리집 공주님, 써스컷아. 언니가 정말 많이 사랑한단다. 우리 행복하자."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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