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도 떨리고, 이제 한계다"…151㎞ 던진 미친 투지, 위기의 두산 살렸다

김민경 기자 2023. 10. 13.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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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하 ⓒ 연합뉴스

[스포티비뉴스=잠실, 김민경 기자] "이제 한계다 했는데."

두산 베어스 우완 이영하(26)가 온 힘을 쥐어짜서 위기에 놓인 팀을 구했다. 이영하는 12일 잠실 NC 다이노스전 2-1로 앞선 3회초 2사 1루 상황에 구원 등판해 3이닝 49구 2피안타 무4사구 3탈삼진 무실점 완벽투를 펼쳤다. 덕분에 5위 두산은 11-1 대승을 거둘 수 있었고, NC를 3위에서 4위로 끌어내리면서 0.5경기차까지 거리를 좁혔다. 3위 SSG 랜더스와도 1경기차가 됐다. 올 시즌 남은 5경기에서 3위 쟁탈전을 이어 갈 희망을 키웠다.

구위 자체가 좋았다. 직구 최고 구속은 153㎞까지 나왔고, 평균 구속이 150㎞에 이르렀다. 직구(31개) 위주로 윽박지르면서 슬라이더(10개)와 커브(5개), 스플리터(3개) 등 변화구를 섞어 NC 타선을 잠재웠다.

이승엽 두산 감독은 경기 전부터 이영하를 중용할 계획을 세워뒀다. 선발투수 장원준이 흔들리면 언제든 2번째 투수로 이영하를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시즌 끝까지 3위 쟁탈전을 이어 가려면 NC는 반드시 잡아야 하는 팀이었다. 필승을 다짐한 상황에서 이영하가 무너지면, 마운드 전체가 흔들릴 수 있었기에 이날만큼은 2번째 투수 이영하의 투구 내용이 가장 중요했다.

이영하는 이 감독의 기대에 200% 부응했다. 3회초 2사 1루에서 초구에 박건우를 중견수 뜬공으로 처리하면서 기분 좋게 투구를 시작했다. 그러자 3회말 두산 타선이 대거 4점을 뽑으면서 6-1 넉넉한 리드를 안기면서 이영하의 부담을 덜어줬다. 4회초에는 마틴과 박한결, 오영수까지 3타자를 모두 삼진으로 처리하면서 삼자범퇴 이닝을 기록했다. 구위 좋은 직구로 스트라이크를 계속 잡으니 슬라이더와 스플리터 등 변화구도 효과를 봤다.

9-1로 더 거리를 벌린 뒤 맞이한 5회초에는 2사 후 박주찬을 2루수 땅볼 실책으로 내보내면서 투구 수를 허비해야 했다. 2루수 강승호가 평범한 땅볼을 포구하지 못한 탓이었다. 다음 타자 손아섭에게 우전 안타를 맞아 2사 1, 3루 위기에 놓였지만, 박민우를 좌익수 파울플라이로 처리하면서 이날 가장 큰 고비를 넘겼다.

이영하는 6회초에도 등판해 마운드를 지켰다. 중심 타자인 박건우와 마틴을 연달아 내야 땅볼로 처리하면서 3이닝을 채웠다. 그러다 2사 후에 박한결에게 좌전 안타를 맞았다. 안타를 허용한 49번째 마지막 공의 구속이 151㎞까지 나왔다. 49구는 올 시즌 이영하의 한 경기 최다 투구 수였고, 벤치는 더는 무리시키지 않고 좌완 이병헌으로 마운드를 교체했다.

▲ 이영하 ⓒ 두산 베어스

이영하는 6회 등판 상황과 관련해 "5회 끝나고 많이 힘들었다. 코치님께서 길게 쉬게 해줄 테니까 조금 더 던지자고 했다. 6회 때는 사실 많이 힘들었다. 못 던지겠더라. 다리도 떨리고, 이제 한계다 했다. 마지막에 내가 욕심을 부려서 안타를 맞고 그래서 아쉬웠다. 더 던지면 좋았을 텐데. 팔이 지치진 않았는데, 체력이 힘들더라"라고 이야기했다.

한계에 다다랐을 때도 시속 151㎞짜리 빠른 공을 던질 정도로 투지가 대단했다. 이영하는 "어떻게든 이겨야 하는 경기였고, 계속 경기에 들어가기 전부터 오늘(12일)은 이긴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런 마인드와 멘탈이 마운드에서 도움이 많이 됐던 것 같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올 시즌 가장 마음에 드는 투구이기도 했다. 이영하는 "오늘은 조금 마음에 들었다. 던질 때 생각이 많았는데, 다른 생각 안 하고 그냥 (양)의지 형 미트만 뚫어져라 보면서 던진 게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다"고 했다.

안방마님 양의지는 이영하의 공을 받아본 뒤 조금 더 공격적으로 던져줄 것을 주문했다. 양의지는 "(이)영하가 오늘 정말 공이 좋았다. 첫 이닝 끝나고 나서 영하한테 2스트라이크를 잡고 바로 승부 들어가라고 이야기했는데, 그래서 더 좋은 공을 던진 것 같다"고 뒷이야기를 들려줬다.

이어 "영하는 좋은 150㎞짜리 직구로 붙어서 이겨야 하는데, 어렵게 가다가 들어가야 하는 타이밍에 공을 스트라이크를 던지니까 안타를 맞을 확률이 높은 경우가 많았다. 우선 잡고 들어가면 공이 좋으니까 범타가 될 확률이 높은데, 그 점이 아쉬웠다. 시작하면 1볼, 2볼로 시작하니까 그러면 타자는 풀스윙을 할 확률이 높아지지 않나. 예전에는 그랬다"고 덧붙이며 이영하가 이날만큼은 달랐다고 칭찬했다.

이영하는 지난 6월 초에야 본격적으로 선수 등록을 하고 마운드에 오를 수 있었다. 학교폭력 가해 혐의로 법정에 서느라 8개월 정도 마운드를 떠나 있었다. 이영하는 지난 5월 31일 서울서부지법 형사4단독 정금영 판사로부터 특수 폭행, 강요, 공갈 등의 혐의 없음으로 무죄 선고를 받은 뒤에야 1군에 합류할 수 있었다. 재판 기간 개인적으로 철저히 훈련을 한다고 했지만, 팀과 함께 정식 훈련을 하면서 시즌을 준비할 때와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올해는 일단 불펜에서 힘을 보태면서 경기 감각과 체력을 회복하는 데 집중했던 이유다.

▲ 이영하 ⓒ 두산 베어스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기에 스스로 올 시즌 좋은 성적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래도 이 정도면 기대 이상이라고 자평한다.

이영하는 "내가 생각한 목표가 이뤄진 게 많아 좋게 생각한다. 나머지 안 좋은 것들은 내가 준비를 못했다. 내년에 더 준비를 같이 해서 더 잘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다. 공의 움직임과 구속을 많이 신경 썼는데, 그런 점들이 잘됐다. 구위나 눈에 보이는 스피드는 내가 원하는 대로 잘 올라오는 것 같다"고 흡족해 했다.

이영하가 이날처럼 결정적일 때 믿고 맡길 수 있는 투수로 자리를 잡아준다면, 과부하가 걸린 불펜에 숨통이 트인다. 두산은 정규시즌 마지막 날까지 8연전을 치러야 하는 지옥일정을 견디면서 순위 싸움까지 하느라 피로도가 높은 상황이다. 정철원, 김명신, 김강률 등 필승조가 이미 이상 신호를 보내고 있기에 이영하, 박치국, 홍건희 등 나머지 불펜 투수들이 더 힘을 보태줘야 한다.

이영하는 "다른 팀도 순위 경쟁을 많이 했지만, 우리 팀 멤버들은 수도 없이 순위 싸움을 많이 해봤다. 그런 경험이 마지막에 좋게 작용할 것이다. 큰 경기에 만약 나가게 되면 더 집중하겠다. 내가 가진 공이 남보다 더 좋은 공이니까. 그걸 자신감 있게 무기로 써서 잘하면 팀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잘 준비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 두산 베어스 이영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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