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 선거' 이후 가장 안 좋은 길…국민의힘 외면·민주당 안주
처음부터 정권심판론 구도로 짜인 강서구청장 선거
선거 결과는 예상됐지만 표 차이가 너무 컸다. 국민의힘은 좌절했고 민주당은 환호했다. 민주당 진교훈 후보 득표율은 56.52%, 국민의힘 김태우 후보 39.37%로 17.15%포인트 차이로 크게 벌어졌다.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가 여러 차례 언급했던 18% 차이에 아주 근접한 수치다.
서울 강서구 '풍경'은 불과 1년여 만에 달라졌다. 지난해 3월 대선에선 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불과 2.17%포인트 앞섰고, 지난해 6·1 지방선거에서 김태우 후보가 2.61% 차이로 승리했던 곳이 바로 강서구다. 17%포인트 이상의 큰 격차는 처음부터 정권 심판론이 자리 잡으면서 치러진 결과다. 국민의힘에선 거야(巨野) 심판론으로 맞섰지만 힘을 받지 못했다.
유권자 50만 명 정도에 불과한 강서구가 전국 단위 선거처럼 여겨지게 한 건 결국 집권 여당이다. 지난 5월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확정판결을 받아 구청장직에서 물러난 김태우 후보를 석 달도 안 돼 특별사면한 건 윤석열 대통령이다. 국민의힘은 이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과거에 민주당도 그러지 않았느냐며 자신들의 당규를 무시하고 김태우 후보로 확정했다. 과거 오만했던 민주당이 그랬다는 건 국민 대부분이 아는 데 이걸 투표 행위에 투영시킬지 말지는 결국 민심 판단의 몫이다.
게다가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선거 일주일 정도를 앞두고 김태우 후보에 대해 '대통령과 핫라인이 있는 후보'라며 지지를 호소하기도 했다. 참고로 김태우 후보가 이번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얻은 득표율은 여러 여론조사에서 나온 윤 대통령 지지율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조금 높은 수치다. 처음부터 전국 단위 선거 구도로 짜인 이번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의 결과다.
동원 가능한 전력 자원을 모두 쏟아 부었던 국민의힘은 당혹스러웠다. 여의도에선 선거 전부터 이른바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 전략으로 갈 것이란 얘기까지 흘러나왔지만 국민의힘 지도부는 물론 대선주자급인 안철수 의원·나경원 전 의원, 지역 충남 향우회 지지를 얻기 위한 정진석 명예공동선대위원장까지, 정말 모든 전력을 활용했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보다 더 참혹했다.
국민의힘의 강서구청장 선거 지휘를 맡았던 김기현 대표는 대책 회의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각오로 더욱 낮은 자세로 민심에 귀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윤재옥 원내대표도 "결과를 견강부회하지 않고 민심의 회초리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패배를 딛고 다시 전진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두 사령탑 모두 선거 패인을 냉철하게 분석하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런데 대통령실과 국민의힘 안에선 이른바 '관계자 멘트'를 인용해 이번 선거가 지역 선거일뿐 전국 선거 의미를 갖지는 않는다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어쨌든 중요한 건 선거 이후의 실질적 변화 여부다. 이번 선거 자체는 윤 대통령과 깊은 관련이 있었다. 처음부터 대통령 지지율과 맞물려 돌아갈 수 밖에 없었던 구조였다. 정권 심판론은 이번 선거의 핵심 구도로 자리잡았고 민심은 이에 응했다. 당 중심의 선거 전략과 공천 혁신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내년 총선도 장담할 수 없다는 의미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에 대한 반사 이익에 기대하지 않고 집권 여당 답게 큰 정책으로 승부할 수 있느냐, 부산의 하태경 의원이 먼저 띄운 험지 출마론을 당에서 얼마나 건설적으로 소화할 수 있느냐가 관건으로 보인다.
"민주당의 승리가 아닌 국민의 승리, 민생파탄에 대한 국민의 심판으로 규정해야 한다" 이재명 대표가 투표 마감 이후 당 지도부 단체 채팅방에 올렸다는 글이다. 정권 심판론이 통했다는 점, 그리고 민주당이 아닌 민심의 승리라는 것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한마디로 민주당이 잘 해서 이번 선거에서 크게 이긴 게 아니라는 말로 들린다. 맞는 말이다. 그러니 이번 강서구청장 선거 승리에 도취돼 안주하거나 자만하지 말라는 뜻이다.
윤 대통령 지지율이 30% 중반에서 오르락내리락 하자 민주당 안에선 내년 총선에서 특히 수도권 선거는 해볼만 하다는 분위기가 감지된 지 오래다. 21대 총선에서 압도적 과반 의석을 차지한 만큼 '경선이 곧 본선'이란 희망 섞인 이야기도 흘러 나온다. 이른바 친명계는 비명계부터 걷어내려 할 것이고 친명계 안에서도 후보가 우후죽순 난립할 가능성이 크다. 경쟁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너무 과열되면 그걸 지켜봐야 하는 국민은 피곤할 뿐이다. 국민의힘이 싫어 어쩔 수 없이 민주당을 찍는다는 민심으론 민주당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다. 대안 세력으로서 여당 못지 않은 정책과 비전 제시가 가능해야 하고, 하태경 의원이 선수 친 험지 출마론의 의미를 민주당 안에서 어떻게 활용할지도 중요해 보인다.
제목에서 밝혔던 '외면과 안주'라는 가장 안 좋은 길이란 표현은 어디까지나 국민의힘이나 민주당 입장에서 말한 것이다. 국민 입장에서 가장 안 좋은 길은 각 당이 이번 민심의 결과를 잘못 해석해 또 다시 오판하는 경우다. 내년 총선 민심은 이 부분을 또 다시 심판할 게 분명하다.
YTN 이대건 (dglee@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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