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부동산 성수기 어디갔어? [특파원 리포트]

김효신 2023. 10. 13.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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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아이들의 새학기가 시작되는 2~3월과 가을에 부동산 수요가 가장 많습니다. 중국에서는 이런 부동산 성수가 9월과 10월인데요. '금같은 9월, 은같은 10월'이라해서 금구은십(金九银十)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과거부터 추수의 계절인 9월과 10월이면, 넉넉해진 주머니 사정 덕에 집을 사는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현재도 우리 추석 개념인 중추절과 국경절 연휴가 포함된 9월 말~10월 초를 활용해 집장만에 나서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디갔어?...'금같은 9월, 은같은 10월'

10월인 요즘은 그야말로 부동산 성수기라고 할만 한데요. 올해는 코로나19의 영향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경제 회복을 기대하던 참이어서 국경절 연휴인 지난 주, 부동산 거래가 얼마나 이뤄질 지가 큰 관심사였습니다.

10월 5일 베이징 펑타이구의 한 아파트 분양사무실. 비교적 한산한 모습이다. ( KBS 촬영)


중국 부동산 업계도 국경절 연휴 특수를 기대하며 총력전을 펼쳤는데요. 주차비 할인 혜택부터 부동산 중개료 전액 면제 등을 들고 나왔습니다. 중국 난닝 지역의 한 건설사는 아파트계약금 100%를 보조해주기도 했습니다.

이에 더해 중국 우한의 한 부동산 업체는 아파트 분양 대금을 대폭 깎아줬다가 곤욕을 치르기도 했습니다. 기존 1평방미터(㎥) 당 만 8천 위안(약 330만 원) 수준이던 것을 만 3천 위안(약 283만 원)으로 15% 정도 할인했는데, 종전에 분양받은 사람들이 항의하면서 결국 계약금을 돌려주고 사과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렇게 총력전을 벌인 결과 중국이 받아든 황금연휴 부동산 거래 성적표는 어땠을까요? 결과를 말하자면 좋지 않습니다.

중국 부동산 조사기관인 중즈(中指)연구원은 올해 국경절 연휴인 9월 29일부터 10월 6일까지 중국 주요 도시 35곳의 하루 평균 주택 거래 면적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7% 줄었다고 밝혔습니다. 코로나19 발생 전인 2019년과 비교하면 24%나 감소한건데요.


9월 전체로 보자면, 중국 내 중점도시 20곳의 신축 주택 거래는 7만여 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 넘게 줄었습니다.

중국 부동산 전문 분석기관 이주연구원(易居研究院) 옌위에진 총감독은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분석했습니다.

다양한 부동산 정책이 시행되면서 시장을 자극하고 있지만, 일부 주택 가격은 인하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습니다. 매매 가격 하락으로 주택 구매자들이 급하지 않은 이상 관망하는 상황입니다."

-중국 이주연구원(易居研究院) 옌위에진 총감독

중국 부동산 전문가들의 입에서는 전통적인 성수기인 '금구은십(金九银十)' 사라졌다는 한탄이 절 나옵니다.

■중국 1위 민간 부동산 개발 업체도 '흔들'

관련 기업들의 수익도 악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당장 중국 1위 민간 부동산개발업체 '비구이위안(碧桂园)'에도 충격이 미쳤습니다. 비구이위안은 지난달 약 300억 원 규모의 달러 채권을 겨우 갚아서 위기를 넘겼었는데요.

10일 공시를 통해 현재까지 만기가 도래한 4억 7천만 홍콩달러, 우리 돈 807억 원 규모의 채무를 갚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게다가 "외국에서 보유한 부채를 갚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채무불이행, 디폴트' 가능성을 스스로 인정했는데요.

공시가 발표된 날 비구이위안 회사의 베이징 사무실을 제가 직접 찾아가 봤습니다. 근무시간인데도 오가는 직원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분위기가 가라앉아있었습니다.

10일. 비구이위안 베이징 사무실 (촬영: KBS)


당일 비구이이위안의 주가가 10% 넘게 빠지며 시장의 실망감을 그대로 반영했습니다.

회사는 자산 매각 등으로 해외 채권을 갚겠다는 입장이지만, 시장의 반응은 긍정적이지만은 않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비구이위안은 상반기 8조 9천억 원대 순손실을 기록했고, 성수기라는 지난달 주택 판매는 80%가량 급락했습니다. 빚을 갚을 여력도 거의 없는 상태입니다.

비구이위안은 합리적인 가격에 아파트를 공급해 '국민 부동산 개발업체'라고 불리며 중국인들의 사랑을 받아왔는데요. 지난 2017년 중국 기업 가운데서는 처음으로 포춘 500대 기업, 467위에 이름을 올리며 중국인들의 자존심을 세워줬습니다.

그런 기업이 채무불이행, 디폴트 가능성을 선언한 상황. 중국 부동산 업계가 처한 현실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앞서 중국 부동산 위기를 촉발한 '헝다그룹'의 사정은 더 심각한데요. 최근 쉬자인 회장이 '범죄혐의'로 구금되는데 이어 경영에 깊숙이 관여했던 둘째 아들 쉬텅허도 당국에 연행됐습니다.

헝다그룹 쉬지인 회장. 최근 당국의 조사를 받고 구금된 것으로 알려졌다( 출처: 바이두)


지난 9일에는 헝다 그룹의 주요 채권단이 성명을 내고 "재앙적 영향을 불러오겠지만, 헝다 그룹의 기업 청산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는데요.

약 443조 원의 부채를 안고, 세계에서 가장 부채가 많은 부동산 개발업체라는 오명을 쓴 헝다 그룹의 앞날도 밝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이에 더해 중국 부동산정보공사(CRIC)는 지난달 중국 상위 100대 부동산 기업의 매출이 4천42억 위안(약 74조 원)으로 5년 만에 가장 낮았다고 분석했습니다.

"중국의 부동산 부문은 막대한 부채, 수요 약세, 가격 하락으로 타격을 입었습니다.
헝다는 파산을 선언했고 비구이위안은 '채무 불이행' 직전에 있습니다."
-로버트 로렌스 쿤/국제 기업전략가

■중국 정부 이렇게까지 했는데... 왜?

중국 정부는 2020년까지도 '집은 투기 대상이 아니다'며 부동산 시장에 대해 대대적인 규제에 나섰었습니다.

올해 7월 시진핑 주석이 공산당중앙정치국 회의를 소집해 부동산을 중심으로 한 경제 대책을 주문한 뒤 정책 방향을 급선회하고 있는데요.

당시 시 주석은 "현재 경제 운영에서 직면한 두드러진 모순과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거시 정책 통제를 강화하고 수요를 적극적으로 확대해야 한다"며 적극적인 대책을 촉구했습니다.

중국에서 처음 내 집을 마련하는 사람들은 주택 가격의 최대 80%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지만, 2주택자부터는 대출 비율도 절반으로 줄고 이자도 비쌌었습니다. 이런 규제가 거의 13년 만에 풀린겁니다.

중국 중앙 정부의 기조에 맞춰 지방 정부들도 각양 각색의 부동산 대책을 쏟아냈는데요. 중원부동산연구소(中原地产研究院)의 통계를 보면 9월 1~ 10일 기간 동안 중국 지방정부의 부동산 관련 정책 발표는 56회에 달했습니다.

이 규제가 풀린 9월 4일. 당일에만 베이징에서 신규 분양 계약이 1,800건 넘게 성사되며 훈풍이 부는 듯 했습니다.

그런데 9월 말에 접어들면서 부동산 시장의 온기가 빠르게 식어가는 분위기입니다. 베이징상바오( 北京商报)신문은 현지 부동산 관계자들의 말을 빌려 9월 초 대비 신규 주택 구매 수요가 50% 정도 줄었다고 보도했습니다.

"고점 대비 50% 정도 하락한 수준입니다. 최소한 국경절 연휴 이후까지 온기가 지속 될 것으로
예상했는데, 이렇게 효과가 빨리 사라질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자오이/국영기업 마케팅 책임자(베이징상바오 인터뷰)

중국 주택 가격도 쉽사리 회복되지 않고 있습니다. 올해 5월까지 중국 신축, 중고 주택 거래 가격은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부동산 정책 시행 후 가격 통계는 내년 초에나 발표될 것으로 보입니다.


부동산 부문은 중국 경제 구조의 25%의 차지할 정도로 막대합니다. 시장에서는 단기든, 장기든 중국 정부의 추가 대책을 기다리는 분위기입니다.

*그래픽:권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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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신 기자 (shiny33@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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