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산 텃밭 속 태극기…두산에너빌리티, 장비산업의 꽃 '가스터빈' 국산화

최유빈 기자 2023. 10. 13. 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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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S리포트 - 한국 경제발전의 디딤돌 '소·부·장' 앞장서는 기업들] ③ 원천기술 확보로 산업 저변 넓힌다

[편집자주]대한민국 경제는 언제나 시련과 마주했지만 절대 쓰러지지 않았다. 일제강점기를 극복하고 한국전쟁 폐허를 견디는 동안 선대 기업 경영인들이 일군 탄탄한 경제 성장의 초석은 대한민국 발전의 밑거름이 됐고 이를 이어 받은 후대 경영인들은 한 발 더 나아가 글로벌 무대를 경제 영토로 확장시켰다. 전 세계의 도움 속에 도약의 땀을 흘렸던 과거를 딛고 이제 지구촌의 리더로 우뚝 서 '오뚝이 대한민국'의 DNA를 만방에 뽐내고 있다. 21세기 더 높은 비상을 꿈꾸는 대한민국은 오늘도 미래를 향해 성큼 전진한다.

두산에너빌리티가 자체 개발한 가스터빈. /사진=두산에너빌리티
▶기사 게재 순서
ⓛ공급망 위기 넘는다… 반도체 소부장 국산화 가속페달
②"중국 의존도 벗어라"… 전구체 사업 뛰어드는 기업들
③외산 텃밭에 태극기… 두산에너빌리티, 장비산업의 꽃 '가스터빈' 국산화
두산에너빌리티가 '기계공학의 꽃'이라 불리는 가스터빈 국산화에 성공하며 한국 기술력을 세계에 떨쳤다. 2013년 개발에 뛰어든 두산에너빌리티는 지난 10년 동안 341개 중소 협력사, 20여곳의 대학·연구소와 함께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가스터빈을 개발·상용화했다.


순수 국내 기술의 한국형 표준 가스복합 모델


가스터빈은 2차 세계대전 말 프로펠러를 사용하던 전투기 성능을 향상 시키기 위해 만든 제트엔진 기술이 발전한 데서 시작됐다. 제트엔진으로 활용되던 가스터빈은 이후 전기를 생산·발전하는 용도로 진화했다. 두산에너빌리티가 국산화에 성공하기 전까지 미국과 독일, 이탈리아, 일본 등 4개국만이 가스터빈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한국은 외산 가스터빈을 수입해 발전에 활용해야 했다. 계약 조항에 따라 한국 엔지니어들은 고장 시에도 가스터빈에 손을 댈 수 없었고, 해외 기술자들은 부품 교체 후 남은 파편 하나까지도 자국으로 수거해 갔다고 한다.

가스터빈은 고도 기술이 요구된다. 핵심 기술은 1500도 이상의 고온에서도 온전한 성능을 유지하는 것이다. 철의 녹는점이 1500도에 달하는 것을 감안하면 용광로처럼 뜨거운 곳에서 끊임없이 회전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때 머리카락 한 개 수준의 진동이 발생해서도 안 된다. 가스터빈 제작에 동원되는 부품은 4만여개, 구성품은 1800여종에 달하며 총 무게는 230톤에 이른다.

한국은 부단한 노력을 통해 가스터빈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발돋움했다. 증기가 터빈의 날개인 블레이드로 전달되도록 증기의 방향을 바꿔주는 부품을 다이아프램이라고 부르는데 터빈 하나에 들어가는 다이아프램은 30~40단에 달한다. 그동안 다이아프램은 전량 수입에 의존했으나 두산에너빌리티가 국산화에 성공하면서 한국은 다이아프램 수출국 반열에 올랐다.

두산에너빌리티는 2013년 정부가 추진한 한국형 표준 가스터빈 모델 개발 국책과제에 참여하며 국산화에 시동을 걸었다. 국책과제에는 두산에너빌리티를 비롯해 국내 대학 21곳, 정부 출연 연구소 4곳, 중소·중견기업과 발전사 13곳이 참여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2019년 국내 최초로 대형 가스터빈(270MW) 국산화에 성공했으며 김포열병합발전소에 설치돼 지난 7월부터 상업운전을 시작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국내 협력사들과 가스터빈 공급망을 구축해 중소, 중견 기업의 고부가가치 산업 성장에 기여하고 있다. 설계 국산화율은 100%에 달하고 제작 국산화율도 90%에 이른다. 국내 협력업체 현황을 살펴보면 ▲부품제조 186곳 ▲시스템품목 53곳 ▲전기계장 46곳 ▲소재 36곳 ▲특수공 20곳 등 341개 기업이 가스터빈에 협력하고 있다.

기술 자립에 성공한 두산에너빌리티는 항공용 가스터빈 엔진 부품 제작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지난 8월엔 국방과학연구소와 '터빈 베인/블레이드 주조품 제작 및 후가공' 과제를 계약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항공용 가스터빈의 핵심 부품인 블레이드와 베인을 제작해 2027년 국방과학연구소에 공급할 계획이다. 항공용 가스터빈은 발전용과 같은 기술에 기반해 작동 원리와 구조가 비슷하다. 항공용 가스터빈은 발전용보다 소형화돼 있으며 경량화와 작동 유연성을 확보하는 게 관건이다.

두산에너빌리티 관계자는 "과거에는 문제가 발생하면 주문자상표부착(OEM)사의 대답을 기다리는 수동적인 자세로 업무에 임했다면 지금은 바로 조치해 수정에 나설 수 있게 됐다"며 "우리가 누군가에게 끌려가는 게 아니라 직접 엔지니어링을 하고 결과까지 창출해 낼 수 있게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밝히는 '가스터빈' 원천기술


두산에너빌리티 창원공장. /사진=두산에너빌리티
가스터빈을 활용하는 액화천연가스(LNG) 발전 비중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면서 수요도 지속 확대될 전망이다.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기존 노후 화력발전소 28기(14.1GW)를 LNG 발전소로 전환하고 5기(4.3GW)의 신규 LNG 발전소를 건설한다. 설비용량 기준 LNG 발전 규모는 2023년 43.5GW에서 2036년까지 62.9GW로 증가할 예정이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지난 6월 한국중부발전과 2800억원 규모의 보령신복합발전 주기기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과거 국내 가스복합발전소는 가스터빈을 전량 해외에서 들여왔으나 두산에너빌리티의 국산화 덕분에 순수 국내 기술로 개발한 한국형 표준 가스복합발전소가 들어설 예정이다.

보령신복합발전소는 2026년 6월 준공을 목표로 충남 보령시에 지어진다. 두산에너빌리티는 569메가와트(MW) 규모의 발전소에 초대형 가스터빈과 스팀터빈, 배열회수보일러(HRSG)를 공급한다. 가스터빈은 연소기 노즐 및 일부 부속설비 변경을 통해 탄소배출 저감이 가능한 수소터빈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2050년 탄소중립을 위해 보령신복합발전소는 수소복합발전소로 전환될 예정이다.

온실가스 감축 방안 중 하나로 수소 혼소 발전이 주목되면서 수소터빈의 수요도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정부는 수소 혼소 발전량을 2030년 6.1테라와트시(TWh)에서 2036년까지 26.5TWh 규모로 확대할 예정이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이런 수요에 발맞춰 수소 가스터빈 상용화의 교두보로 수소와 LNG를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수소 혼소 터빈을 개발하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2020년부터 H급(1500℃ 이상의 고온을 견딜 수 있는 초내열 합금 소재로 제작한 고효율 터빈) 수소 터빈을 개발하고 있다. 이 터빈은 수소 혼소 50%를 목표로 개발 중이며 앞으로 수소 비율을 높여나갈 계획이다. 수소를 50% 혼합해 연소하면 기존 LNG발전용 가스터빈 대비 최대 23%의 탄소배출을 저감할 수 있다. 2027년엔 세계 최초로 400MW급 초대형 수소 전소 터빈을 개발한다는 목표다.

두산에너빌리티 관계자는 "설계와 생산의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우리만의 기술로 제작했다는 것에 굉장히 큰 자부심을 느낀다"면서 "이제 1부 능선을 넘었을 뿐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출력과 효율을 대폭 향상한 모델을 개발해 한국형 표준 복합 실증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유빈 기자 langsam4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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