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1% 생존벽 넘어 장수 게임 전설로”…리그 오브 레전드가 14년째 ‘한국맘의 적’인 이유
“롤, 게임보다 플레이어 만족에 최고 가치 둬”
“모바일 게임 놓치면서 한국 게임 위상 추락…우수 인력 활용이 관건”
“시험이 코앞인 학생이 틈만 나면 게임할 생각만 하고, 대체 공부는 언제 할래?” “하루 종일 게임 붙들고 방에 처박혀 있지 말고 밥은 좀 나와서 먹어!” “나이 들어서도 게임만 하고 있으면 대체 철은 언제 들래?”
엄마 속 태우는데 게임만큼 지대하게 영향을 미친 것도 없을 듯싶다. 나이와 세대를 넘어 게임 좀 그만하라는 부모의 잔소리 횟수와 데시벨은 줄어들지 않는다. 대체 게임이 뭐고, 또 어떤 게임 이길래 듣기 싫은 잔소리에도 불구하고 PC 앞 ‘전사’들은 어제도 오늘도 키보드와 마우스 위에서 두 손을 번개처럼 움직이고 있는가.
엄마는 알고 있을까, 방에서 쉽게 나갈 수 없고, 시험 기간에도 PC 앞에 앉고 싶은 이유가 ‘리그 오브 레전드’ 때문이었다는 것을. 게임으로 속이 끓는 대한민국 엄마 둘 중 하나는 바로 리그 오브 레전드(일명 ‘롤’)란 전설적인 게임에 의문의 일 패를 당한 피해자일지도 모르겠다.
출시된 지 15년을 바라보고 있는 오래된 게임에 무슨 마력이 있길래 게임 좀 하고 즐긴다는 이들은 아직도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 손을 떼지 못하는 것일까?
리그 오브 레전드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이를 만든 게임 회사는 어떤 곳인지, 가려졌던 인사이드 스토리를 최초로 담은 신간 ‘플레이어 중심주의’를 쓴 오진호 비트크래프트 벤처스 파트너는 “플레이어(게이머, 고객) 중심의 가치가 지금까지 없었던 세계 최고의 게임이란 성과로 이어졌다”고 평가했다.
리그 오브 레전드를 출시한 미국 라이엇 게임즈 본사 사업총괄 대표와 아시아∙한국 대표, 워크래프트의 블리자드 한국 대표를 지낸 그가 ‘플레이어 중심’이란 한마디로 리그 오브 레전드가 낯선 대한민국 엄마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
◇ 1% 생존율에서 시작된 장수(長壽)
-플레이어 중심주의란 무엇인가?
“쉽게 말해 고객중심이다. 게임 회사의 고객, 즉 플레이어 만족에 최상의 가치를 두는 거다. 보통 좋은 제품을 만들면 고객이 찾게 되는 구조를 갖는데 플레이어 중심주의는 고객(게이머)을 먼저 설정하고 그에 맞는 제품(게임)을 만드는 것이다. 좋은 게임이 되려면 둘 다 갖춰야 할 가치지만 리그 오브 레전드는 후자의 가치에 방점이 찍혔다.”
-아직도 PC방 주인공은 ‘언제 적’이란 수식어가 붙어도 전혀 이상치 않을 리그 오브 레전드다.
“2009년에 출시됐으니 곧 15년을 바라보는 게임이지만 ‘현역’을 넘어 아직도 최고 인기 게임이다. 한국 시장만 보더라도 게임 점유율이 41% 정도다. 2위 게임의 시장 점유율이 한 자릿수라는 것을 고려하면 리그 오브 레전드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실감할 수 있을 거다.
1년에 수천 개 정도의 게임이 출시되는 것으로 추정하는데, 이 중 99%는 망한 게임들이다. 망한 게임 중 대부분은 개발 도중 중단돼 시장에 나와 보지도 못하고 사라진다. 나머지는 출시하자마자 사라지는, 생존율 1%의 험한 세계다. 우리가 이름이라도 기억하는 게임은 극소수다. 이런 게임 개발의 현실에서 보면 리그 오브 레전드의 장수는 의미가 충분하다고 본다.”
◇ 극한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는 법
-최고의 게임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리그 오브 레전드가 출시된 지 15년 가까이 됐지만 여전히 최고 인기를 누리는 게임으로 꼽히는 것은 철저하게 게이머 중심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출시되는 게임을 보면 개발자들이 과거에 만들었거나 본인이 잘 알거나, 그들이 잘하는 것을 중심으로 만들어진다. 쉽게 말해 대부분의 게임은 공급자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셈이다.
하지만 리그 오브 레전드는 플레이어를 먼저 생각하고 만든 게임이다. 게이머를 먼저 고려하고 그들을 분석해서 만든, 소비자 중심의 게임 개발이 큰 차이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개발사가 먼저 게임을 정하고 고객을 나중에 정하는 것과 정반대로 움직인 것에서 나온 결과다.”
-글로벌 최고의 게임 회사는 어떻게 일하나?
“라이엇 게임즈의 경우 사업 초기에 게임 마니아를 위주로 채용했다. 물론 채용하려는 각 분야의 전문성을 갖춰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게이머 중심의 회사가 되려면 게임을 잘하고 이해하는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게임에 대한 이해가 곧 고객에 대한 이해라 여기는 조직이었다.
지금 채용 문화는 초기 때보다 좀 더 복잡해진 것 같다. 회사가 커지면서 다양성이 중요해지다 보니 고객 중심 마인드가 있는지를 복합적으로 본다.
무엇보다 조직 문화가 수평적인 게 인상적이다. 위에서 시켜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래에서 위로 건의하고 아랫사람 의견을 받들어 일을 한다. 한국 기업들이 상하 관계가 뚜렷한 조직 문화를 없애 보겠다고 직급을 파괴해도 위아래가 명확한 것과는 달리, 라이엇 게임즈나 블리자드 같은 세계 최고의 게임 회사엔 이른바 ‘꼰대’ 문화라는 것을 찾아볼 수 없다.
예컨대 회사가 주최하는 큰 행사가 있는 경우 한국 같으면 경영자나 고위 임원들 의전이 빠지지 않지만, 라이엇 게임즈나 블리자드에선 그런 것이 없다. 창업자라도 좋은 자리를 누가 맡아 주지 않는다. 빈 자리가 있으면 본인이 알아서 찾아 앉는 문화다. 실제로 경험한 거다.
자기 분야에선 최고경영자(CEO) 못지않은 결재권이나 결정권을 갖는다는 것도 다르다. 실제로 라이엇 게임즈가 리그 오브 레전드 10주년 글로벌 행사를 하는 과정에서도 회사 임원들과 대표가 직원들을 한 명씩 설득해야 했다. 각자 주어진 업무에 바쁜 직원들을 회사 행사에 동참시키기 위해 경영진이 직원을 설득한다는 것을 한국에선 상상이라도 할 수 있겠나.”
◇ 유사하지만 다른 길
-라이엇 게임즈와 블리자드는 어떻게 닮았고, 무엇이 다른가?
“워크래프트를 만든 블리자드와 리그 오브 레전드를 개발한 라이엇 게임즈가 비교될 때가 많다. 두 회사 모두 세계 최고의 게임 회사라는 타이틀을 붙일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공통점이겠다. 장르마다 대표하는 게임을 만들겠다는 개발추구성이라든지, 게임이 만족스럽지 않으면 과감히 출시를 포기하는 것도 닮았다. 보통 대작인 경우 개발에 3~5년은 족히 걸리다 보니 100% 만족스럽지 않아도 출시하는 게 일반적이니 이들의 ‘용단’은 장인정신에 비할 만하다고 본다.
하지만 지향점에선 블리자드는 제품, 즉 게임을 최우선으로 하지만 라이엇 게임즈는 플레이어 경험을 최우선에 둔다.
명품에 비유해 설명하자면, 명품 업체의 경우 저마다 훌륭한 제품을 만들어 내지만 각자의 매장 운영 방식이나 직원 교육, 고객 응대, 각 매장에서의 경험이나 동선, 사후서비스(AS) 등에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라이엇과 블리자드도 그렇게 닮았고, 또 그런 식으로 다르다.”
◇ 바뀌는 게임 산업 판도
-영원한 1등은 없다. 세계 최고의 게임 회사가 직면한 도전과 위기는 뭔가?
“어느 기업이나 마찬가지로 세계 1위 게임 회사라 하더라도 직면한 도전 과제와 위기는 많다. 게임만 놓고 봐도 리그 오브 레전드를 뛰어넘을 게임이 나올 거란 도전이 있고, 신작 게임과의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위기도 있다. 이미 롤과 비슷한 게임들이 모바일로도 나오고 있지 않나. 게임을 떠나 일반 엔터테인먼트와의 경쟁도 빼놓을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게이머 중심, 플레이어 중심이란 기본을 충실히 지킬 수 있느냐다. 지난 20년 가까이는 이를 충실히 지켜왔다. 그런 초심을 지켜나가는 것이 도전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키워드가 될 것으로 본다.”
-인공지능(AI)은 게임 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나?
“게임만큼 AI의 영향을 받는 곳이 없다 할 정도로 AI는 게임과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 새로운 기술이 나올 때마다 앞서 적용된 분야가 게임이다. 클라우드 기술이 선보였을 때도 클라우드 게임이 바로 등장했다. 블록체인도 초기에 게임 회사가 접목한 기술이다. AI 역시 그렇다. 새로운 테크를 볼 수 있는 창이 게임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아티스트들이 만들었던 게임 캐릭터와 배경을 이젠 AI가 만들고 있다. 이미 1~2년 전부터 쓰기 시작한 기술이다. 게임 내부에서도 변화가 있다. 인공지능을 통해 살아있는 캐릭터를 만들기도 한다.
예컨대 게임 중 부적절한 대화나 비매너를 차단하거나 거르는 일의 경우 사람이 일일이 신고받아 처리하지만 이젠 인공지능이 실시간으로 걸러내게 된다. 아직 개발 중인 단계지만 머지않아 게임 개발 자체를 AI가 맡게 될 날이 오게 될 거다. 사람이 할 일을 AI가 하는 거다.”
-한국 게임 산업의 경쟁력은 어느 수준인가?
“10년 전만 하더라도 한국은 게임 강국이었다. 한국에 대한 리스펙트도 컸다. 축구로 따지면 영국 프리미어 리그에 비할 정도였으니, 게임의 메카라 해도 절대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위상은 과거와 비교해 볼 때 초라하다. 아쉬운 대목이다.
모바일 게임이 쏟아지면서 흐름이 중국으로 넘어갔다. 한국은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의 기회를 놓쳤다. 아직 PC 게임에서만 위상이 있다.
하지만 기회가 있다. 중국의 경우 글로벌 마인드가 부족한 편이고 북미보다 규제가 많다는 단점이 있다. 한국은 여전히 인력 강국이다. 개발 능력이 우수한 인력을 활용하면 모바일에서 뺏긴 패권을 다시 잡을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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