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피스서 17년째 봉사…"여기가 천국이라던 엄마 생각에 시작"

오진송 2023. 10. 13.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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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경 서울성모병원 자원봉사자, 복지부 장관 표창
"삶이 손등이라면 죽음은 손바닥…생을 정리하는 시간 갖길"
어버이날 행사에서 카네이션 머리띠를 쓴 이미경(왼쪽에서 두번째) 씨.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오진송 기자 = "고단하게 살아오신 어머니가 암에 걸려 호스피스 병원에서 지내셨는데 '여기가 천국'이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어요. 어머니가 평화롭게 가실 수 있게 해주신 게 너무 감사해서 은혜 갚는 마음으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호스피스 병동에서 17년째 봉사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이미경(60) 씨는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13일 서울 마포구 서울가든호텔에서 열린 제11회 호스피스의 날 기념식에서 호스피스와 완화의료 제도 정착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이 씨는 2007년부터 호스피스 병동과 환자의 집에서 5천 시간 가까이 환자와 보호자를 돌봤다.

호스피스는 말기 암 환자가 살아 있는 동안 존엄성과 높은 삶의 질을 유지하고 마지막 순간을 편안하게 맞을 수 있도록 돕는 치료법이다.

봉사자들은 환자의 목욕을 돕고 발 마사지도 해준다. 함께 재미있는 이야기도 나누고 환자가 종교인이면 맞춤형 영적 돌봄도 제공한다.

환자가 세상을 떠난 후 남은 가족이 슬픔을 잘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 것도 이들의 역할이다.

호스피스 병동 봉사자들. 봉사자 중 맨 앞이 이미경 씨.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 씨의 어머니는 2000년에 자궁암 판정을 받았는데 암세포가 신체 다른 곳에도 전이돼 더는 손을 쓸 수 없는 상태로 호스피스 병원에 입원했다.

이 씨는 "어느 날 엄마를 보러 병원에 갔는데, 집에서 애들이 기다린다고 빨리 가라고 하시는 거예요. 보니까 그날이 봉사자가 오는 날이었더라고요. 그 모습이 기억에 남아서 나도 환자들이 기다리는 봉사자가 돼야겠다고 다짐하며 일했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호스피스 병원이라고 하면 왠지 분위기가 우중충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해피'하다고 했다.

그는 "환자가 좋아하는 유행가나 트로트를 불러주고 춤을 춰 달라고 하면 열심히 춤도 춰요. 때론 랩도 하는데 제가 제일 잘하는 랩은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예요"라며 웃었다.

그러면서 "종종 방문객들이 환자를 어떻게 위로할까 고민하다가 입을 닫는 바람에 분위기가 엄중해지는 경우가 있는데, 환자도 웃을 권리가 있어요"라고 했다.

이어 "환자들 소원도 들어주는데, 바다에 가고 싶다고 하면 병원에서 가장 가까운 바다에 같이 가고, 영화를 보고 싶다고 하면 영화관까지는 못 가더라도 팝콘을 튀겨서 병원에서 영화를 틀어놓고 같이 봐요. 딸 결혼식장에 가지 못하는 어머니를 위해 병원에서 작은 결혼식을 연 적도 있다"며 "'그래도 이건 하고 가네'라는 생각이 들면 가는 사람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게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웰다잉 (PG) [강민지 제작] 일러스트

환자와 보호자의 요구에 난감할 때도 있었다.

그는 "제가 돌본 환자분이 돌아가셔서 유가족분들과 함께 화장터를 찾았는데, 부인께서 남편이 생전 가수 최백호 씨의 '낭만에 대하여'를 정말 좋아했다며 불러 줄 수 있겠냐고 하셨다"며 "그 노래가 꽤 구성지잖아요. 화장터에서 부르기에는 좀 애매하다고 생각했는데, 환자분이 하늘에서 듣지 않을까 싶어 불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족이 원하면 봉안당이나 장지까지 봉사자들이 따라가요. 상실의 아픔까지 보듬는 사별 관리까지 하는 거죠"라고 말했다.

그는 공익광고를 이용해 호스피스에 대해 널리 알리는 등 더 많은 지원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 씨는 "요즘 웰다잉(well-dying)에 대해 많이 얘기하지만, 아직 일부 의사나 사적 모임에서 주로 논의되는 것 같다"며 "대만에서는 유명 연예인들이 공익광고에서 호스피스를 홍보하더라. 우리보다 호스피스를 더 늦게 시작했는데 지금은 대만 사람들이 삶을 정리하는 과정을 더 친숙하게 여기는 것 같아 부러웠다"고 말했다.

이 씨는 "삶이 손등이라면, 죽음은 손바닥인 것 같다. 손등을 보고 있으면 손바닥을 볼 수 없지 않나. 마찬가지로 삶과 죽음은 동시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환자들이 호스피스 병원에 조금 더 일찍 와서 마음을 정리하는 시간을 충분히 갖고 사람들과 웃고 울고, 용서하고 화해도 하면서 삶을 되돌아보는 평화로운 시간을 갖길 바란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봉사활동을 계속 할 것이냐는 질문엔 "몸이 허락할 때까지 환자들 곁을 지킬 것"이라고 했다.

dind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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