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중국요리가 전세계로 퍼져나간, 참으로 복잡한 사정들
내셔널리즘으로 본 중국요리 세계사
짜장면, 라멘, 팟타이, 촙수이…
중국 각 지방의 민간 요리가 전세계로
중국요리의 세계사
왜 중국음식은 세계 어디서든 만날 수 있는 걸까
이와마 가즈히로 지음, 최연희·정이찬 옮김, 보론 이정희 l 따비 l 4만8000원
중국음식은, 말그대로 전 세계 어디서든 만날 수 있다. 그저 ‘만날 수 있는’ 차원을 넘어 아예 그 나라의 ‘국민 음식’이 된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서 국민 음식으로 꼽는 ‘짜장면’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쉽다. 일본의 ‘라멘’, 싱가포르의 볶음밥 ‘하이난 치킨라이스’, 태국의 볶음국수 ‘팟타이’, 필리핀의 국수 요리 ‘판싯’, 전세계 미군의 음식으로까지 채택됐던 미국의 ‘촙수이’, 심지어 중국에서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남미 페루의 소고기 볶음 ‘로모 살타도’에 이르기까지, 그 연원을 따져보면 모두 중국음식에 닿는다. ‘왜 중국음식은 세계 어디서든 만날 수 있는 걸까’ 하는 물음은 음식과 사회의 관계를 파헤치는 식문화 연구에서 핵심적인 주제로 꼽히며, 물음이 물음이니만큼 그 답은 개별 국가에 머물지 않는 ‘세계적’ 접근을 통해 찾아갈 수밖에 없다.
이와마 가즈히로 일본 게이오기주쿠대학 교수가 쓴 ‘중국요리의 세계사’는 확고하게 제시한 연구 방향을 견지하며 최신 정보와 연구 성과들을 두루 반영해 이 주제를 두텁고 상세하게 다룬다. 중국에서 이른바 ‘중국요리’가 형성된 과정에서 시작해, 광둥, 푸젠, 산둥 등 중국 각지의 요리가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 등 세계 각지로 어떻게 퍼져나갔는지, 또 어쩌다 그 나라 ‘국민 음식’으로까지 자리 잡았는지 등을 담았다.
‘내셔널리즘’, 곧 근대 국민국가의 형성을 테마로 삼아 요리와 사회 사이의 복잡다단한 관계들을 포착해내는 실력이 탁월하다. 중국요리의 보급은 중화 제국이 영역을 확대하거나 주변 민족을 ‘한화’하는 시기가 아닌, 되레 제국이 쇠퇴하고 위기를 맞은 19~20세기에 가장 활발하게 이뤄졌다. 그래서 “국가권력 같은 것과는 무관하게 현지의 민중으로부터 맛있고 실질적인 식사라는 평가를 받”은 것이 중국요리 보급의 비결이라 보는 평가도 있었다. 그러나 지은이는 “중국보다는 오히려 중국요리를 수용하는 현지국의 국가권력”에 더욱 주목하고, 중국요리 역시 “제국주의·식민지주의의 확장과 함께 세계로 퍼져나간 것”이라고 풀이한다. “중국요리는 국가에 의해 체계화된 국민 요리로서가 아니라 각 지방에서 발달한 민간의 요리로서 (화인 개개인에 의해) 세계 각국으로 퍼져나”갔으나, 각국의 내셔널리즘과 조응해 영향력을 획득했고 때론 국민 음식으로까지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중국요리는 높은 온도의 기름으로 볶거나 튀기고 조미료를 통해 외부적으로 맛을 주입하기 때문에 현지 식재료에 대응하기 쉽다. 게다가 중국계 이민자의 수가 워낙에 많고 그 역사도 깊어서 중국요리는 널리 퍼져나갈 수 있었다. 대체로 광둥인·하이난인·하카는 동남아시아 전역으로, 푸젠인은 말레이시아·싱가포르·인도네시아·필리핀으로, 차오저우인은 태국·라오스·캄보디아로, 윈난인은 태국·미얀마 등으로 이주해 현지 사회와 때로 반목하고 때로 협력하는 등 치열한 상호작용을 벌였고, 음식문화는 그 복합적인 결과물이었다. 예컨대 코코넛 밀크와 야자유 등 말레이반도의 식재료와 문화와 중국식 조리법의 결합은 쌀국수 ‘락사’로 대표되는, 말레이인-화인 혼혈 문화라 할 수 있는 ‘뇨냐 요리’의 전통을 만들었다.
이런 식문화 발달에 중요한 배경이 된 것은 새로운 국민 국가 내부의 동학, 그리고 내셔널리즘이었다. 싱가포르는 1965년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탈퇴하자마자 ‘푸드 카니발’ 행사를 열어 “우리나라의 화(華·중화), 무(巫·말레이), 인(印·인도) 등 각 민족의 유명한 요리를 소개”했다. ‘민족적’ 정체성보다 ‘국민적’ 정체성을 강조하는 ‘다민족·다문화’를 내세운 것이다. 태국을 대표하는 국민 음식인 팟타이는 1930~50년대 중국의 볶음 쌀국수 요리인 ‘퀘티아우’를 두부, 건새우, 풋마늘, 달걀, 생숙주와 함께 볶아서 “중국요리의 흔적을 지우고 태국 요리로 탈바꿈”시키려 한 음식이다. 아예 정부가 주도한 팟타이의 국민 음식화는 태국 내셔널리즘의 대두, 그리고 당시 화인에 대한 강력한 동화 정책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었다. 중국의 국수와 프랑스의 저민 고기에 영향을 받은 베트남의 쌀국수 ‘퍼’는 팟타이와 달리 민간 차원에서 탄생했으나 그 역시 베트남 고유의 ‘국민적’ 정체성을 찾는 기반이 됐다.
한국은 산둥 요리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박정희 정권 때인 70년대 화인에 대해 재산권이나 교육권을 박탈하는 등 가혹한 정책을 쓰면서 “중국요리의 한국화가 진행”됐다고 한다. 이전까지 화인이 독점했던 중국요리점을 한국인이 경영하게 되면서, “짬뽕이 빨개지고 매워지는가 하면, 짜장면은 더욱 검고 달아졌으며, 볶음밥에 검은 짜장 소스를 얹거나 빨간 짬뽕 국물을 곁들이게 되었다.” 1950년대 미국이 잉여농산물을 원조국에 무상으로 제공하는 정책을 편 것이 “일본에서 라멘이, 한국에서 짜장면이, 타이완에서 우육면이 국민 음식이라 불릴 정도로 보급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풀이도 새롭다.
중국음식은 아시아뿐 아니라 다른 대륙에서도 국민 음식이 됐는데, 여기에도 복잡한 사정들이 줄줄이 있다. “일반적으로 말해, 이 시기(19~20세기)에 세계 자본주의 시스템이 유럽에서 신대륙으로, 그리고 아시아를 포함한 주변부로 확대되어 세계 각지에서 노동력 시장이 출현해 값싼 노동력을 끌어당겼”고, 화인뿐 아니라 다른 나라 인구들의 이러저러한 이동이 새로운 음식문화로 이어졌다. 중국 이민을 금지했던 미국의 ‘배화법’(1882년 제정)을 철폐(1943년)시키는 과정은 이민자들의 음식 ‘촙수이’가 미국을 대표하는 요리로 자리잡게 만들었다. 청조 말기의 거물 정치가 이홍장의 미국 방문(1896년), 1930~40년대 중일전쟁·태평양전쟁 등은 미국에서 ‘동양인’의 다양성에 대한 주의를 환기하는 계기가 됐다. 촙수이는 미군 병사용 요리가 되어 미군을 따라 다른 나라로도 퍼져나갔다. 냉전 시기 1972년 닉슨 대통령의 중국 방문은 이민법 개정 이후 ‘베이징덕’ 등 중국요리가 미국에 유행하는 또 하나의 커다란 사건으로 꼽힌다.
이처럼 음식문화와 내셔널리즘의 관계를 제대로 보는 것은 우리를 “국민 요리는 타민족의 문화에 대한 동화와 배제의 논리가 아니라 관용과 조화의 정신에 의해 성장할 때 비로소 그 가능성을 크게 펼칠 수 있다”는 깨달음으로 이끈다. 개별 국가만이 전유하는 음식문화란 아마도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속한 집단, 지역, 나라 등의 생활공간을 넘어서는 상상력을 기르려면 세계사에 도전하지 않을 수 없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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