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한반도에 유난히 마애불이 많은 까닭은?

최재봉 2023. 10. 13.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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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절)은 종교 시설이지만 불교 신자가 아닌 이들에게도 무척 친숙한 공간이다.

1부에서는 마애불, 석탑, 석등, 승탑, 노주석, 당간지주 등 돌로 만든 불교 유물들의 세계를 소개하고, 2부에서는 수미단, 계단, 해우소, 지붕 위 장식 등 절집을 이루는 다양한 요소들을 꼼꼼히 들여다본다.

가령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서도 현저히 많은 1천여 기에 이르는 한반도의 마애불은 불교 도입 이전 전통 신앙의 기도처였던 곳에 새겨진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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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신앙 기도처에 주로 새겨
석등, 당간에도 민간신앙 흔적
경주 남산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보물). 남산은 과거 신분 차별 없이 누구나 기도할 수 있는 곳이었다. 불광출판사 제공

사찰에 가면 문득 보이는 것들
사찰 속 흔하고 오래된 것들의 놀라운 역사
노승대 지음 l 불광출판사 l 3만원

사찰(절)은 종교 시설이지만 불교 신자가 아닌 이들에게도 무척 친숙한 공간이다. 전망 좋은 산자락이나 등산로 초입에 있어 마주칠 기회가 많기 때문이다. 절에 가면 대웅전을 기웃거리고 불상을 일별하거나 탑과 범종 정도를 눈에 담는 이가 대부분일 텐데, 절에는 그런 것들만 있는 게 아니다. 문화 답사 모임을 이끌고 있는 노승대 작가의 책 ‘사찰에 가면 문득 보이는 것들’은 흔해서 지나치기 쉬운 사찰 유물들 속에 담긴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1부에서는 마애불, 석탑, 석등, 승탑, 노주석, 당간지주 등 돌로 만든 불교 유물들의 세계를 소개하고, 2부에서는 수미단, 계단, 해우소, 지붕 위 장식 등 절집을 이루는 다양한 요소들을 꼼꼼히 들여다본다. 지은이는 특히 마애불과 석등, 당간지주 같은 불교 유물들이 한민족의 전통 신앙과 깊은 관계를 지닌다고 본다. 가령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서도 현저히 많은 1천여 기에 이르는 한반도의 마애불은 불교 도입 이전 전통 신앙의 기도처였던 곳에 새겨진 경우가 많다. 마애불과 탑 등 불교 유물이 널려 있는 경주 남산은 “아득한 과거부터 인근 사람들의 기도터였던 곳”이고, 안양 삼막사 마애삼존불 앞에는 남근바위와 여근바위 한 쌍이 있다. 중국이나 동남아 불교권 나라들에 비해서도 유난히 많은 당간 역시 불교 유입 이전 솟대문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

백제는 세계적인 목탑 조성 기술을 발달시켰고, 나중에는 화강암을 깎아 목탑 모양대로 석탑을 만들기 시작했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이 그 증거이고, 경주 감은사지 삼층석탑은 백제의 석탑 양식과 신라가 발전시켰던 전탑 양식이 합쳐진 모습이다. 그런가 하면 공주 마곡사 오층석탑 꼭대기의 티베트식 금동보탑은 원나라의 영향을 보여준다. 국립중앙박물관 1층에 웅장하게 서 있는 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은 지나치게 조각이 많고 화려한 중국풍인데, 원나라 장인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했기 때문이다. 탑골 공원 안에 있는 원각사지 십층석탑은 경천사지 탑을 본떠 조선 장인들이 만들었다.

중국 대륙 전체에 걸쳐 현존하는 석등이 5기에 불과하고 네팔에도 2기뿐인 데 비해 한반도에는 270여 점의 석등이 현존한다. 당간 역시 인도에서 발생해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과 한반도에 전해 내려온 것으로 알려졌지만, 한반도처럼 당간이 많은 곳은 달리 없다. 높이가 6미터에 이르는 논산 관촉사의 고려 시대 석등과 여주 고달사지 승탑(부도), 강릉 굴산사지 당간지주 등은 “활달하고 기개 넘치는 고려 초의 기운을 반영”한다.

홍천 수타사 대적광전 앞 돌기둥에 대해서는 정확한 설명을 찾기 어려운데, 지은이는 그것이 향교나 서원에서 야간에 마당을 비추는 데 쓰인 정료대와 같은 조명용 시설일 것으로 짐작한다. 창녕 관룡사의 돌담 형식 일주문에 문패처럼 소박하게 새긴 ‘부처 불’(佛) 자, 공주 마곡사 2층짜리 고방 건물에 기대 세운 통나무 계단, 수타사 대적광전 지붕 위에 줄 서 있는 하얀 연꽃 봉오리 모양 백자와 청기와 두 장, 김제 금산사 대장전 지붕 위에 올린 스투파 형식 탑, 그리고 화재 방지용 상징물로 사찰 곳곳에 놓인 오리와 토끼, 물병, 소금단지, 사자상과 도깨비상 등은 지은이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눈길이 가고 그 뜻을 헤아려 보게 될 구조물들이다.

강릉 굴산사지 당간지주(보물). 높이 5.4m에 이르는 크기로 절터보다 훨씬 높은 위치에 당당히 서 있어 시원하고 호쾌한 기운이 주변을 압도한다. 불광출판사 제공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국보). 고려 시대에 조성된 이 탑은 지붕돌이 얇고 넓은 백제의 석탑 양식을 이어받은 특징을 보인다. 불광출판사 제공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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