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숲] 송이는 왜 별이 되고 있나

관리자 2023. 10. 13.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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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쯤, 초보를 벗어나 요리에 한창 재미를 붙였을 때의 일이다.

그 시절 매년 요맘때면 꼭 구해 먹었던 것의 하나가 송이였다.

여전히 살림이 팍팍한 나는, 요즘에는 송이를 거의 사지 않는다.

송이는 화이트 트러플처럼 우리나라 버섯종의 정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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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쯤, 초보를 벗어나 요리에 한창 재미를 붙였을 때의 일이다. 그때 나는 미식가인 양 귀한 식재료를 요리하며 폼을 잡았다. 지금보다 훨씬 구하기 어려웠던 푸아그라나 트러플을 어떻게든 구해서 친구들에게 과시하듯 먹었다. 그 시절 매년 요맘때면 꼭 구해 먹었던 것의 하나가 송이였다. 송이는 트러플이나 푸아그라에 견줄 수 없을 정도로 가성비가 뛰어났다. 구워 먹어도 맛나지만 그냥 가늘게 찢어 기름소금에 찍어 먹어도 별미였다. 송이향 덕에 아무것도 필요 없었다.

이렇게 송이에 빠지다보니 좀더 싸게 송이를 구하려고 집에서 꽤 먼 가락시장이나 청량리시장을 헤매기도 했다.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않아 갓이 펴져 급이 약간 떨어지는 송이를 한두팩씩 샀다. 송이는 친구들을 부르지 않고 문을 닫아걸어놓고 가족끼리 먹었다. 그때 송이 한두송이로 구성된 한팩이 3만∼4만원 했었다. 그런데 며칠 전 친구가 송이 한팩을 샀다며 사진을 보내줬다. 달랑 한송이 들어 있는 한팩에 무려 11만원이었다. 언론 보도를 보면 지난해에 견주면 송이 경매가는 30% 이상 올랐다. 올여름 이상고온으로 송이 수확량이 크게 준 탓이다.

여전히 살림이 팍팍한 나는, 요즘에는 송이를 거의 사지 않는다. 요리 경험이 쌓이면서 느타리처럼 평범한 버섯에서 특별함을 이끌어내는 것이 훨씬 더 재미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있는데도 안 사는 것과 없어서 못 사는 것은 사뭇 다르다. 그것도 송이라면.

송이는 화이트 트러플처럼 우리나라 버섯종의 정점에 있다. 또 푸아그라처럼 동물을 괴롭히며 얻는 기괴한 미식이 아니라 ‘자연의 선물’이다. 그래서 송이는 산삼과 비슷하게 대지의 정수를 상징한다고 생각한다.

송이의 흉작은 더 정확하게 말하면 포자식물인 송이를 품는 소나무의 생장 환경의 변화 탓이다. 도심 아파트나 거리에서 우리는 이제 누렇게 시들어가는 소나무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한반도가 뜨거워지면서 소나무는 높은 산에서야 겨우 푸름을 유지할 수 있다.

이는 송이만의 문제가 아니다. 추석 준비로 시장에 가보니, 제수 사과 하나가 1만원씩 했다. 배추도 값이 올랐다. 배추는 25℃가 넘으면 생장에 영향을 받는데 고랭지배추의 산실인 강원도 산골의 여름이 뜨거워지며 생산량이 급감했다고 한다. 태백산맥 높고 험한 산줄기도 기후위기를 피해 가지 못한 것이다.

이미 현대인이 먹는 음식물의 75%가 단 12종의 식물과 5종의 동물에서 나온다. 우리가 편의점과 공장에서 나오는 밥과 빵에 익숙해질수록 이 비율은 높아진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우리가 송이버섯이라는 말만 들어도 침이 솟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미식이 ‘계급적인 소프트 권력 행위’이고 ‘고도로 훈련된 학습’이라고도 비판할 수 있지만 요즘같이 획일화된 패스트푸드와 냉동식품이 범람하는 시대에 송이는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처럼 보일 수 있다.

그렇지만 아무리 은행에 많은 현금을 쌓아놓아도 국내산 자연 송이를 구하기 어려운 세상이 오고 있다. 더 심각한 건 제사상에 올라가는 사과도, 매 끼니 먹어야 하는 김치도 구하기 어려운 세상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김치마저 하늘의 별처럼 우러르는 세상에선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먹고 살고 있을까?

권은중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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