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얼마나 익었을까? 처마 밑 삼나무로 만든 공 보세요!

박준하 2023. 10. 1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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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양조장에 가면 처마 밑에 동그란 구슬 같은 것이 하나 매달려 있다.

오미와신사는 술의 신을 모시는 곳이었는데, 신사 뒷산의 삼나무를 '신의 나무'라고 부르며 이를 엮는 풍습에서 스기다마가 나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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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의 시장, 전통주 붐은 온다] 日 양조장에만 있는 ‘스기다마’
겨울부터 1년동안 매달아놓아
잎 갈변에 따라 숙성 정도 판단
일본 양조장의 처마 밑에 매달려 있는 삼나무 공 ‘스기다마’. 술을 빚는 11월에 녹색공(왼쪽)을 매달아 1년 동안 갈색(오른쪽)이 될 때까지 둔다. 스기다마 색으로 술이 얼마나 익었는지 알 수 있다.

일본 양조장에 가면 처마 밑에 동그란 구슬 같은 것이 하나 매달려 있다. 이는 ‘스기다마(Sugidama)’라고 하는 삼나무로 만든 공이다. 일본어로 ‘스기’는 ‘삼나무’, ‘다마’는 구슬이나 공을 일컫는다. ‘삼색봉’이 있으면 멀리서도 이발소라는 걸 아는 것처럼 스기다마는 ‘양조장의 상징’이다. 직경은 약 50㎝로, 철사로 만든 틀에 삼나무 잎과 가지를 꽂고 공처럼 다듬어 만든다.

많고 많은 나무 중에서 삼나무인 이유는 뭘까. 여기엔 일본에서 오래된 역사를 가진 나라현의 ‘오미와신사’에서 유래됐다는 설이 있다. 오미와신사는 술의 신을 모시는 곳이었는데, 신사 뒷산의 삼나무를 ‘신의 나무’라고 부르며 이를 엮는 풍습에서 스기다마가 나왔다는 것. 또 한가지는 일본에서 술 저장통을 삼나무로 만들어 자연스럽게 삼나무 잎을 엮게 됐다는 이야기도 있다. 삼나무 잎은 술이 부패하는 것을 막아준다고 해서 부적으로도 많이 쓰였다.

스기다마는 술을 빚기 시작하는 겨울부터 1년을 꼬박 처마에 달아놓는다. 요즘이야 24시간, 계절에 상관없이 술을 빚는 양조장이 많지만 예전에는 가을에 수확한 쌀로 겨울에만 빚었기 때문이다. 스기다마를 걸어두면 처음엔 푸릇푸릇했던 잎이 시간이 갈수록 말라가며 갈변하는데, 이것이 술 익는 시간을 나타낸다. 이제 막 새로 빚은 술을 마시고 싶다면 잎이 푸를 때, 숙성한 사케를 마시고 싶다면 스기다마 색이 갈색을 띨 때 가면 된다. 새로운 스기다마가 걸리면 그 지역 주민들이 “올해도 술을 만드는군!”이라고 생각하며 한해가 무사히 지나간 것을 기뻐한다. 스기다마를 처음 거는 날에 지역 주민들에게 술을 공짜로 나눠주는 양조장도 많다.

이런 스기다마의 또 다른 별명은 ‘양조장의 이정표’다. 수확한 쌀이 깊은 맛을 내는 한 잔의 술이 되기까지의 시간을 고스란히 담고 있기 때문이다. 또 스기다마는 술의 신에 대한 감사, 술 제조 과정 중의 안전, 사업의 번영, 대대손손 양조장이 번창하길 기원하는 의미도 있다.

후지이 아츠시 나다고고주조조합 사무국장은 “양조장뿐만 아니라 술에 자신 있는 주점·주류업체들이 스기다마를 걸어놓고 술의 신을 기리는 풍습이 있다”며 “시시각각 술이 나오는 요즘엔 스기다마가 의미 없어 보일 수 있지만, 사케에 대해 친근한 느낌을 갖게 하는 중요한 소품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고베·히메지(일본)=박준하 기자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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