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케, 제철 요리와 한잔…고객 “술맛나네” 농가 “살맛나네”
272년 이어온 양조장 ‘슈신칸’
노벨상 만찬주 후쿠주로 유명
식당 운영…술·안주 추천 ‘눈길’
미식 경험에 반해 손님 줄이어
지역산 재료 사용 ‘농가와 상생’
환경보호로 가치소비도 발맞춰
일본에는 “술은 시를 낚는 바늘이다”라는 속담이 있다. 좋은 것을 즐기면 더 좋은 것이 나타난다는 의미로, 일본이 얼마나 술을 사랑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일본 역시 사케시장을 넓히는 데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한다. 일본술의 다음 100년은 어디에 있을까. 음식 궁합, 수출, 신제품 개발, 전통문화 계승 등 우리 술 산업에 접목할 만한 사케의 미래를 들여다봤다.
‘후쿠주’는 일본에서 손꼽히는 사케 가운데 하나다. 효고현 고베시에 있는 272년 된 양조장 ‘슈신칸’에서 만들어진다. 이 사케는 일본 최초의, 그리고 유일한 노벨상 만찬주다. 2008년 스웨덴에서 열린 만찬회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8번이나 선정됐다. 그동안 일본인 노벨상 수상자가 나올 때마다 만찬주로 오른 것이다.
신야 고토쿠 홍보부장은 “‘후쿠주’가 만찬주로 선정될 때마다 일본인은 물론 세계인에게도 큰 호응을 얻었다”며 “특히 2012년 ‘후쿠주’의 고장인 고베 출신 야마나카 신야 교수가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을 때는 의미가 더 컸다”고 말했다.
‘후쿠주’가 유명해진 건 단지 이 때문만이 아니다. 사케를 즐기는 법 자체를 깊이 연구하기 때문이다. 그중 하나는 슈신칸에서 직접 운영하는 식당에서 제공하는 술과 안주의 페어링(음식과 술의 궁합)이다. 식당 ‘사카야바시’에선 제철 식재료로 만든 요리를 상시 판매한다. 점원은 여기에 어울리는 술을 적극적으로 추천해준다. 우리나라는 양조장 안에서 상시로 운영하는 식당이 없다. 운영비도 많이 들고 양조장에 손님이 끊임없이 와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슈신칸에선 매월 다른 제철 식재료를 주제로 ‘사케 미식회’도 운영한다. 4월에는 연어, 5월 가다랑어, 6월 가지 등 각양각색 제철 식재료가 식탁에 오른다. 가을에는 고베 특산품인 무화과와 제철 회, 가을 채소로 만든 요리를 곁들였다. 가격도 크게 비싸지 않다. 양조장에서 만든 술과 함께 먹으면 즐거움이 두배가 된다. ‘사카야바시’의 미식 경험에 반한 사람들이 양조장으로 곧장 가서 술을 사 가는 일도 많단다. 지역산 재료를 사용해 지역민과 농가들의 반응도 좋다.
식당에선 양조장의 모든 술을 잔으로 마실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후쿠주’에서 내놓는 자랑거리 중 하나는 ‘케그 드래프트 사케’다. 마치 생맥주를 마시듯 사케 저장통에서 그대로 사케를 잔에 받아 마시는 거다. 계절에 따라 술이 익어가므로 달라지는 술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슈신칸 사케로 만든 칵테일도 있다. 이처럼 봄·여름·가을·겨울마다 맛볼 수 있는 술과 안주가 다르니 거듭 양조장을 찾게 된다.
이탈리아 출신인 신지아 메솔렐라 매니저는 “일단 시음해보면 누구라도 사 가고 싶은 사케가 될 수 있도록 시음 방법을 다양화하고 있다”며 “제철 농수산물을 사용해 방문객에겐 고급 요리를 내놓고 지역농가와도 상생할 수 있어 일거양득”이라고 설명했다.
슈신칸의 다음 키워드는 ‘환경’이다. 지역농가가 살고 앞으로 소비자의 가치소비 흐름에 맞추려면 양조장도 환경보호에 힘써야 한다는 생각이다. 슈신칸은 절수시설을 개발해 병 세척에 사용하는 물을 크게 절약했다. 재활용이 가능한 투명한 병을 사용해 매년 병 45만개를 다시 사용한다. 이런 노력으로 슈신칸은 2010년 대비 사케 생산량이 현재 약 3배 이상 늘었지만, 전기에너지 소비량과 이산화탄소 배출은 감소 추세에 접어들었고, 전체 에너지 소비량은 3분의 1 이하로 줄었다.
최근엔 슈신칸에서 ‘넷제로(Net Zero)’를 실천한 ‘에코 사케’도 출시했다. 넷제로란 온실가스 같은 유해물질 배출량을 줄이고 불가피한 배출량은 흡수해 순배출량을 제로로 만드는 환경운동이다. 에코 사케는 라벨도 없애 쓰레기를 최소화했다.
신야 홍보부장은 “슈신칸이 좋은 술을 내는 건 그만큼 좋은 환경에서 자란 지역농산물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앞으로도 지역주민과의 상생은 물론, 환경보호 실천을 통해 고베를 찾는 모든 이들에게 사랑받는 술이 되도록 힘쓰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고베(일본)=박준하 기자(전통주 소믈리에) june@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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