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외국인인 줄 알고 4개국어 썼는데"…불꽃축제 휩쓸고 간 자리

김도균 기자, 이승주 기자 2023. 10. 1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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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오전 8시30분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강공원에 위치한 음식물쓰레기통의 모습. 쓰레기통에는 '음식물 통'이 한국어, 영어 등 4개 국어로 적힌 안내종이가 붙어있다. 소운섭 서울한강공원 사업본부 여의도지구 청소반장이 손수 만들어 붙였다./사진=이승주 기자

"사람들이 하도 분리수거를 안해서 외국인이 그런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12일 오전 6시30분쯤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에는 '음식물 통'이라는 한국어, 영어, 중국어, 일본어 안내문이 함께 써있는 음식물 쓰레기통이 통이 곳곳에 배치돼 있었다. 4개 국어로 쓰여진 글귀는 소운섭 서울한강공원 사업본부 여의도지구 청소반장(58)이 직접 작성했다고 한다. 작성이 어려운 일본어와 중국어는 소 반장이 손글씨로 썼다. 그는 "직접 번역기를 돌렸다"고 했다.

소 반장이 이렇게까지 한 이유는 음식물 쓰레기통에 넘쳐나는 일반·재활용 쓰레기 때문이다. 소 반장은 이날 오전 8시쯤 음식물 쓰레기 수거에 나서면서 기자에게 "놀랄 거다. 일반 쓰레기가 더 많다"라고 말했다.

실제 한 음식물 쓰레기통 안은 종이봉투, 전단지 등으로 가득했다. 정작 있어야 할 음식물 쓰레기는 없었다. 소 반장은 "누군가는 분리수거 할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아무거나 버리는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7일 밤 서울세계불꽃축제가 끝이 난 직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강공원의 모습. 쓰레기가 쓰레기통에 넘치도록 쌓여있다. 이날 하루에만 쓰레기 70톤이 나왔다./사진=소운섭 반장 제공
'불꽃축제' 100만명이 남긴 쓰레기는 몇 톤?
여의도 한강공원에서는 5일 전인 지난 7일 세계불꽃축제가 열렸다. 경찰 추산 약 100만명의 인파는 쓰레기를 남기고 떠났다. 소 반장에 따르면 평소 주말 이곳에서 수거하는 쓰레기가 10톤인데 축제 당일에는 그 7배인 약 70톤이 모였다.

늘어난 쓰레기를 처리하는 일은 고스란히 청소노동자들의 몫이다. 축제 직후 외부용역 100명을 추가로 썼지만 소 반장은 밤새 한강공원을 치워야 했다. 소 반장은 축제 당일 밤 11시부터 이튿날 오전 6시까지 쓰레기를 수거했다. 그마저도 큼직한 쓰레기만 치운 것이었을 뿐이었다.

소 반장은 "날씨가 좋아서 놀기 좋은 봄, 가을이 제일 힘들다"며 "여름은 비라도 오는 날엔 사람들이 덜 오니까 조금 낫다"고 했다. 그는 이날 다른 행사를 위한 무대가 설치되는 모습을 지켜보며 "또 행사가 있나본데 행사하면 다시 쓰레기장 되겠다"고 푸념했다.

넘쳐나는 쓰레기도 문제지만 곳곳에 흩어져 있는 쓰레기는 더 골칫거리다. 모여있는 쓰레기를 수거하는 것도 고된데 쓰레기를 찾아 다녀야 하기 때문에 시간도, 힘도 배로 든다.

소 반장은 "사람들이 안 버리다가도 한 명이 다른 곳에 쓰레기를 하나라도 버리면 남들도 다 따라 버린다"며 "그곳이 쓰레기 더미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쓰레기통이 아닌 곳에도 쓰레기 더미가 가득했다. 흡연 부스에 담배 꽁초를 수거하기 위해 설치된 통에는 담배갑, 일회용컵, 음료수병 등으로 가득했다. 먹던 음식과 그릇을 그대로 올려놓고 간 사람도 있었다.

12일 오전 7시30분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강공원에 있는 흡연부스의 모습. 재떨이 역할을 하기 위해 설치된 곳에 종이 박스와 플라스틱 일회용 컵 등 일반 쓰레기가 쌓여있다./사진=이승주 기자
고양이 가족 4마리의 '악취 나는' 안식처
이렇게 모인 쓰레기는 1차로 '적환장'에서 모인다. 적환장은 폐기물 발생지와 최종처분장의 거리가 멀 경우 중간에 둔 집하기지를 말한다. 여의도 한강공원의 적환장은 원효대교 남단 부근에 있다.

적환장에 들어서자마자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쓰레기를 던져 모을 때마다 오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소 반장과 동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작업을 이어갔다.

적환장 한켠에서는 태어난 지 3개월 된 새끼고양이 3마리가 먹을 것을 찾으며 쓰레기 더미를 파헤지고 있었다. 3년가량 된 어미 고양이는 최근에 쥐약을 잘못 먹어 크게 앓았지만 회복했다. 소 반장은 "쥐가 하도 많아서 키우는 건데 사료를 챙겨줘도 자꾸 쓰레기를 먹는다"고 말했다. 이어 "처음에는 비위가 약해서 구역질도 하고 했지만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다"며 웃어보였다.

한강을 찾는 손님이 반갑지 않을 법도 한데 소 반장은 기자에게 "이번 주말이랑 다음 주말에 야시장 열리는데 한번 와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화려한 불빛도 아름답고 젊은 사람들이 재밌게 노는 모습도 보기 좋다"며 "청춘이니까 그런 것 아니겠냐"고 했다.

김도균 기자 dkkim@mt.co.kr 이승주 기자 gree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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