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 천지' 가자지구, 난민 33만 명… "공습 1분도 멈추지 않는다"

권영은 2023. 10. 13.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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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군 투입 앞두고 이스라엘, 전면 봉쇄 고수
2000곳 이상 폭격... "구조대원들도 공격 표적" 
유일한 발전소도 멈춰→전기·물·연료·식량 부족
'인도주의 위기' 심화... "이스라엘도 전쟁 범죄"
12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한 팔레스타인 남성이 아이를 품에 안은 채 달리고 있다. 가자=AFP 연합뉴스

"이번에는 내 차례일까."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본거지 가자지구에 이스라엘군이 발사한 로켓포가 떨어질 때마다 모삽 아부 토하는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온다고 했다. 폭발 섬광을 보면 '살았구나' 하고 안도하지만, 이는 다른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는 뜻이다. 거리에는 팔다리가 없거나 얼굴을 알아보기 힘든 시신이 널려 있다. 그는 지난 1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포스트에 보낸 기고문에서 "앞으로도 공격은 더 심해질 텐데 우리는 그때마다 '다음은 내 차례'라고 여기며 두려움에 떨 것"이라고 토로했다.

이스라엘 국경과 불과 3.2㎞ 떨어진 가자지구 북부 베이트라히아에 사는 아부 토하의 삶은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이 벌어진 7일부터 산산조각 났다. 하마스가 이스라엘 민간인을 무차별 학살했듯, 이스라엘군도 '하마스 궤멸'을 외치며 똑같이 응수하고 있다. 가자지구 2,000곳 이상에 무차별 폭격이 퍼부어졌다. 팔레스타인 적신월사 대변인은 "과거엔 30분이라도 공습이 멈추곤 했다. 이번엔 단 1분도 멈추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쟁 발발 엿새째인 12일, 가자지구의 민간인 230만 명은 심각한 인도주의 위기에 내몰려 있다. 전기와 물, 식량, 연료는 거의 바닥 났다. 이스라엘 지상군 투입까지 초읽기에 들어갔다. '대량 살상'이 불 보듯 뻔하다. 사실상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처지다.

11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빵을 사려는 사람들이 빵집 앞에 줄서 있다. 가자=AFP 연합뉴스

전기 끊긴 병원은 '집단 무덤'… 인도적 위기 내몰려

아랍권 매체 알자지라, 미국 CNN방송 등에 따르면, 11일 가자지구의 밤은 그야말로 '암흑 천지'이자, '아비규환'의 세상이었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고사 작전으로 발전용 연료가 동나면서 유일한 발전소가 멈춰 선 탓이다.

특히 병원이 심각한 상태다. 알자지라는 "인큐베이터 속 신생아 100명과 투석 환자 1,100명의 생명이 위협받고 있다"고 전했다. 가자지구 최대 규모인 알시파병원의 무하마드 아부 살리마 원장은 "전기가 완전히 끊기면 우리 병원은 '집단 무덤'이 될 것"이라며 "손을 놓은 채 환자들이 한 명씩 죽어나가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게 된다"고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말했다. 비상발전기를 돌릴 연료도 나흘치밖에 없다.

부상자 구조 작업도 직격탄을 맞고 있다. NYT가 입수한 현장 영상을 보면, 칠흑 같은 밤, 구조에 나선 팔레스타인 적신월사 대원들은 헤드라이트와 손전등, 휴대폰 불빛에만 의존해 이스라엘군 공습으로 붕괴된 건물 잔해 아래 매몰된 주민들을 끌어낸다. 구조대원들이 공격 타깃이 되기도 한다. 아미르 아흐메드(32) 구조대원은 "수차례 공격을 받은 지역에 접근하려고 시도했지만, 더 늘어난 공습 때문에 물러나야 했다"며 "구급대 자체가 표적이 됐다"고 했다. 전날 구급차에 타고 있던 동료 4명이 이스라엘군 공격으로 숨지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을 외부에 전할 언로도 조만간 막힐 전망이다. 가자지구에 머무는 언론인 페리알 압도는 "인터넷 연결 유지를 위해 휴대폰 배터리를 최대한 절약하고 있다"며 "보도를 이어가지 못하면 바깥세상은 가자지구의 참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게 될 것"이라고 알자지라에 말했다. 취재 도중 숨진 기자도 6명에 달한다.

이스라엘 방공망 아이언돔이 11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발사된 로켓을 요격하고 있다. 가자=EPA 연합뉴스

'국제법 위반' 비판에도 끄떡 않는 이스라엘

'가자지구 완전 고립'을 초래한 이스라엘의 조치를 두고 "명백히 국제법 위반"이라는 국제사회 비판에도 이스라엘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이스라엘 카츠 이스라엘 에너지 장관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하마스에 끌려간 인질이 풀려날 때까지 가자지구에는 물, 전기, 연료가 공급되지 않을 것"이라고 거듭 확인했다. 오히려 한술 더 뜨기도 한다. CNN은 "이스라엘이 민간인 보호를 위한 교전 규칙에 대한 가드레일(안전장치)을 제거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지난 10일 "하마스와 싸우는 이스라엘 방위군에 대한 모든 제한을 해제했다"고 밝혔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에 따르면, 12일 현재 가자지구 난민은 33만 명으로 파악되고 있다. 후세인 알 셰이크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사무총장은 지난 10일 "가자지구의 우리 국민들에게 식량과 의약품을 긴급히 들여보내 달라고 요청했으나, 이스라엘이 이를 거부했다"고 주장했다. 케네스 로스 전 휴먼라이츠워치 사무총장은 "하마스의 민간인 대상 잔학 행위가 가자지구 민간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복수'와 '집단적 처벌'을 정당화하진 못한다"며 이스라엘 또한 전쟁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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