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세상을 담는 그릇… 더 큰 세상과 소통하는 매개체 [Weekend 문화]

유선준 2023. 10. 13.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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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을 알 수 없는 중성적인 인체를 기본으로 대규모의 공공작품으로 이름을 알린 안토니 곰리(73·Antony Gormley)는 자신의 신체를 바탕으로 철 또는 강철로 주조된 묵직한 양감을 추구하기 시작한 이래 다양한 재료와 형식을 통해 조각, 설치, 공공 예술 작품을 발표하면서 오늘날 하나의 조각 현상이 됐다.

이렇게 곰리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몸의 관계를 탐구한다.

이렇게 곰리는 몸은 우리가 세상을 경험하는 그릇으로 보고 우리 자신의 신체를 성찰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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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조각가와 K-조각
(3) 공공예술 조각가 안토니 곰리
자기성찰 통해 조각품에 영속성 부여... 반추상적인 선과 형태 더해 한계 확장
"몸은 삶이 머무르는 잠재적 장소일 뿐"
안토니 곰리 '북방의 천사'

성별을 알 수 없는 중성적인 인체를 기본으로 대규모의 공공작품으로 이름을 알린 안토니 곰리(73·Antony Gormley)는 자신의 신체를 바탕으로 철 또는 강철로 주조된 묵직한 양감을 추구하기 시작한 이래 다양한 재료와 형식을 통해 조각, 설치, 공공 예술 작품을 발표하면서 오늘날 하나의 조각 현상이 됐다.

이렇게 곰리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몸의 관계를 탐구한다. 그는 초기 몸과 신체를 주로 다뤘지만 이내 인체임을 암시하는 반추상적인 선과 구축적인 형태로 이어가면서, 그 과정에서 매체의 한계를 확장해 나갔다.

1970년대 인도에서 불교와 철학을 공부하면서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자 하는 '위빠사나' 명상법에 빠져들어 조각가가 되기 이전에 승려가 되려고 했을 정도로 깊이 있는 자기성찰을 바탕으로 몸을 주제와 도구로 사용하는 작업으로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그는 자기 몸을 모델로 변형된 인체를 통해 자기 자신을 넘어, 모든 사람을 상징하는 존재로 이끌어간다. 그는 이런 자신의 작업을 "도구는 특별하고 야망은 보편적입니다"라고 설명한다.

이후 그는 신체를 기본으로 여러 인물을 공간 속에 교차 배치하거나, 한 작품 속에서 여러 점의 조각이 전시 공간을 벗어나 전혀 뜻밖의 장소, 즉 자연이나 도시의 건물 위에 올라가 위태롭게 서 있는 작품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공공조각을 통해, 자연과 공간을 넘어 새로운 환경을 만드는 데까지 영역을 확장해 인간을 자신이 살고 있는 환경과 공간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가는지, 또 자신이 살고 있는 풍경에 어떻게 적응하는지를 묻는다.

안토니 곰리

곰리는 나약하고 힘없는 인체의 취약성을 철과 콘트리트 같은 견고하고 강한 재료를 사용해 영속성을 부여한다. 이의 형태는 단순한 인간의 몸이지만 그는 경험, 감정, 의식, 기억, 상상의 '장소'로 인식되도록 의도한다. 이렇게 곰리는 몸은 우리가 세상을 경험하는 그릇으로 보고 우리 자신의 신체를 성찰하도록 한다.

이후 그의 예술은 사회적이며 참여적으로 발전해 관객의 상호작용과 참여를 통해 개인의 경험뿐만 아니라 인류에 관한 것으로 확장된다. 따라서 본질적으로 곰리의 작업은 개인으로서 그리고 더 큰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인간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심오한 탐구의 결과물이다. 그의 삶과 죽음을 초월한 듯 무표정한 인물은 중립적인 자세를 취하고 단순하며, 반복적이다.

감정적 단서를 찾을 길 없는 조각의 표정과 자세는 서사적 해석보다 환경 속에 단순히 존재하는 중성적 물질로 존재하면서 그 외양과 존재는 기이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멀리서 보면 인체지만 도시 또는 환경 속 인물은 사물에 가까워 도시 공간 속에서는 그로테스크한 불편한 느낌을 주는데 이는 그의 조각을 낭만주의의 숭고미와 이어주는 매개로 작용한다.

이후 '디지털 입체파'라고 할 수 있는 다양한 자세와 포즈를 큐브로 환원시켜 조합한 작품으로 이어지지만, 그의 작업을 관통하는 것은 인간이 자연과 우주와 관련하여 어디에 서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사색과 성찰의 성과물인 동시에 그의 작품이 존재하는 공간을 새로운 행동, 생각, 감정이 발생할 수 있는 생성의 장소로 만들어가려는 작가의 또 다른 시도이기도 하다.

"머무르다 떠날 몸"에 대한 무게에서 벗어날 길은 없는 것일까. 곰리는 몸을 "우리가 사는 장소"로 보고 조각을 어느 특정한 사람의 표현이 아니라, "삶이 머무를 수 있는 잠재적 장소"라고 본다. 결국 그의 몸은 공간이 되고 공간으로서의 몸은 결국 주위의 환경과 자연과 이어진다.

정준모 큐레이터·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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