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생연분 발레 커플’도 연습실선 티격태격… 더 잘하고 싶으니까!
‘무용 오스카’ 브누아 드 라 당스 유니버설 수석무용수 강미선
“집보다 연습실에서 더 자주, 심하게 티격태격 싸워요. ‘이렇게 하자’ ‘아냐, 저렇게 하는 게 좋다’…. 서로 자기 생각을 잘 굽히지 않으니깐.”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아내 강미선(40)의 말을 듣던 남편이자 동료 수석무용수 콘스탄틴 노보셀로프(38)가 웃으며 말한다. “그래도 옛날보단 훨씬 덜 싸워요. 많이 부드러워진 것 같지?” 두 사람이 마주 보더니 슬쩍 웃는다. 연애 6년 뒤 결혼 9년 차이니 벌써 파트너가 된 지 15년이나 됐는데, 여전히 서로를 바라볼 때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는 것 같다. 천생연분 발레 커플이다.
강미선이 지난 6월 세계 무용계 최고의 상 ‘브누아 드 라 당스’를 받은 뒤 첫 전막 발레 무대에 섰다. 6~8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돈키호테’ 공연. 강미선은 말괄량이 선술집 딸 ‘키트리’, 남편 콘스탄틴은 혈기 넘치는 이발사 ‘바질’을 맡아 무대 위 연인으로 또 한번 ‘찰떡 호흡’을 선보였다. 공연 뒤 관객들은 “미선·코스챠(콘스탄틴의 러시아식 약칭) 커플은 매번 레전드 경신”이라며 호평했다. 공연 전인 지난주 서울 광진구 유니버설발레단 연습실에서 두 사람을 먼저 만났다.
남편 콘스탄틴은 세계 최고 수준 발레 교육기관인 바가노바 발레 학교 출신. 하지만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에서 열린 이번 브누아 드 라당스 시상식에는 동행하지 못했다. 콘스탄틴은 “독박 육아 때문”이라며 웃었다. “러시아는 워낙 텃세가 심한 나라여서 수상할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어요. 세계 최고 무용수들과 볼쇼이 무대에 함께 서고 그 분위기를 익히는 것만으로도 큰 경험이 될 거라 생각했죠.” 수상 소식은 한국 시간 새벽 2시쯤 전해졌다. “새벽에 문자가 왔어요. 아이 보다 지쳐 잠들어서 처음엔 이해를 못 했죠. 한참 뒤에야 인터넷을 뒤져 확인했죠. 오, 역시 대단해(cool)!”
2021년 10월 태어난 두 사람의 아들 ‘레오’는 벌써 발레 무용수처럼 발끝으로 걷기 시작했다. 이 아들이 복덩이. 강미선의 브누아 드 라당스 수상작은 한국적 정서의 창작 발레 ‘미리내길’인데, 2021년 레오를 세상에 데려오느라 무대에 서지 못했고, 출산 뒤 복귀한 작년에야 초연 무대에 설 수 있었다. 그 덕에 ‘직전 해 처음 공연한 작품’이 심사 대상인 브누아 드 라 당스에 ‘미리내길’을 후보작으로 제출할 수 있었고 결국 수상에 성공한 것이다. 아들이 배 속부터 한몫 단단히 한 셈이다.
강미선에게 콘스탄틴은 “내게 없는 밝은 에너지가 있는 사람”. “제 춤은 발산하는 에너지가 부족해요. 코스챠는 화려하고 생동감 넘치고 아우라가 있죠.” 강미선이 힘들 때 곁에서 다시 일으켜 세워주는 이도 남편이다. “칭찬을 싫어하거든요. 칭찬받으면 내 단점이 가려지니까 더 발전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그런데 코스챠의 칭찬은 늘 진심이었어요. 큰 힘이 됐죠.” 그가 꼽는 남편의 최고 역할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로미오.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분위기와 몸짓까지 모두 로미오 아닌가요? 내 눈에만 그런가, 하하.”
강미선의 장점을 묻자 콘스탄틴은 “포기하는 법이 없다. 목표 지점에 다다를 때까지 한눈팔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한다”고 했다. “집에서 좀 쉬고 싶을 때도 늘 발레 얘기만 해요. 눈뜨면 발레 생각뿐인 아내라니, 어떨 땐 좀 힘들어, 하하.” 그는 “모든 작품이 최고인” 아내의 최근 가장 좋았던 작품으로 “드라마 발레 ‘오네긴’의 타티아나”를 꼽았다. 극적인 표현력이 중요한 역할이어서 강미선의 선 굵고 힘 있는 발레 스타일과 잘 어울렸다는 평을 받은 작품이다.
‘돈키호테’는 ‘호두까기 인형’과 함께 두 사람이 오랫동안 수도 없이 호흡 맞춰온 작품. 하지만 두 사람은 “여전히 더 다듬고 새롭게 할 부분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강미선은 “코스챠는 제가 ‘키트리’로 무대 위를 뛰어다닐 때 암탉 같대요. 좀 예쁘게 뛰라고, 하하. 이젠 질투하거나 화를 낼 때도 억지 표정이나 과장된 연기는 내려놓고, 좀 더 물흐르듯 , 결혼 9년 차의 내공이 드러나는 자연스러운 키트리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허벅지 부상에도… “관객과의 약속 지켜야죠”
“연습하다 왼쪽 허벅지 근육이 심하게 늘어났어요. 걸을 때도 심한 통증이 느껴질 정도여서 무대 위 연기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다행히 무사히 마쳤습니다.”
‘돈키호테’ 공연이 끝난 뒤 마음 먹은 대로 잘 됐는지 물었는데, 강미선은 “진통제 먹고 파스 붙이고 테이핑 단단히 하고 무대에 올랐다”며 웃었다. 이 발레 1막 2장의 바르셀로나 광장 장면에서 ‘키트리’는 허공에서 다리를 180도 이상 찢는 ‘플리세츠카야 점프’<사진>를 뛴다. 두 다리의 위치를 시계침에 비유해 붙은 별명이 ‘8시 10분 점프’. 6일 공연에서 본 무대 위 강미선의 플리세츠카야 점프는 ‘8시 5분’에 가까워 보일 만큼 더 압도적이고 힘이 있었다. ‘5분 분침’에 해당하는 왼쪽 다리의 허벅지 근육을 다친 상태로 강미선은 그렇게 힘차게 뛰어올랐던 것이다. “관객과의 약속은 지켜야지요. 이 정도 부상 쯤은 무용수들은 늘 달고 사는 거니까요.”
강미선은 14~15일 노들섬 야외무대 발레 ‘백조의 호수’ 공연에서도 연이틀 주역 백조 ‘오데트’로 춤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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