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타자엔 좌투수를? 통계적으로 정답 아니다
“현장 의견과 데이터 분석 접목”
한국 야구계에 이만한 ‘브레인’이 또 있었을까. 서울대 통계학과 장원철(54) 교수가 지난달 프로야구 롯데 R&D(연구개발) 자문위원에 위촉됐다. 1년간 롯데 구단 각종 데이터 수집·활용에 대해 조언하는 역할을 맡았다. 장 교수는 서울대 계산통계학과(현 통계학과)를 나와 미국에서 박사를 한 뒤, 조지아대·듀크대에서 교수 생활을 하다가 2017년 서울대에 부임했다. 빅데이터 통계 분야에서 저명한 학자다. 그런데 갑자기 프로야구단 자문이라니.
12일 서울대에서 만난 장 교수는 “통계학이 야구에 자리를 잡은 덕분에 야구가 다채로워졌고, 선수들도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장 교수는 알아주는 야구 ‘덕후(마니아)’다. 부산 출신인 그는 “학창 시절 야구 잡지 ‘주간야구’를 너무 재밌게 봤다. 고등학교(동아고) 근처에 구덕구장(롯데 옛 구장)이 있어서 함성 소리를 들으면서 하교했다”며 “고향 팀(롯데)에서 저를 찾아주다니 ‘성덕(성공한 덕후)’이라는 말이 딱이다”라고 말했다. 2011년 그는 정재승 KAIST 교수 주도로 시작한 ‘백인천 프로젝트’에 참가한 적이 있다. 학계와 야구계가 모여 프로야구 원년 백인천 이후 4할 타자가 사라진 이유를 빅데이터로 분석해 보자는 취지였다. 이 프로젝트가 2013년 ‘한국야구학회’로 이어졌고, 창립 멤버인 장 교수는 2대 회장을 지냈다. 이때 인연을 맺은 박현우 현 롯데 부단장 제안으로 자문위원에 초빙됐다. 그는 “야구가 숫자의 경기라 (통계학자로서) 좋아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현대 야구는 통계가 지배하고 있다고 본다. 미국에선 선수 선발, 영입, 평가, 기용 등 모든 측면에서 ‘세이버 매트릭스’라 불리는 통계학적 접근법이 주요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미국 수준까진 아니지만 한국 야구도 투구 추적 시스템 ‘트랙맨’ 등을 도입하면서 ‘데이터 야구’가 뿌리를 내리는 중이다.
장 교수는 “전에는 1번엔 무조건 발 빠른 타자, 4번엔 홈런 타자를 넣었지만 지금은 팀별로 다양한 타순 조합을 시도한다. 좌타자엔 좌투수, 우타자엔 우투수를 내던 투수 기용도 이젠 정답이라고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미 메이저리그 강타자 저스틴 터너(보스턴 레드삭스)나 J.D. 마르티네스(LA 다저스) 사례를 언급하며 “어떤 각도로 공을 때려야 타구가 멀리 뻗는지 데이터 분석으로 알아낸 뒤 발사 각도를 높이는 훈련을 집중적으로 해서 ‘커리어 점프’를 이뤄낸 선수들”이라고 했다.
롯데에선 선수별로 개인화된 평가 지표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가령, 선발 투수가 공 100개를 던졌다고 바꾸는 게 아니라 어떤 투수는 공 회전수가 감소했을 때, 다른 투수는 팔 각도가 일정 숫자 이하로 떨어졌을 때 등 선수마다 다른 기준을 통계 분석을 통해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선수별 데이터를 활용해 ‘기대 실점’을 산출하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도 “현장과 소통이 데이터 분석만큼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아무리 훌륭한 분석 기법을 개발하고 데이터를 제시해도 이를 현장 언어로 전달하고 설득시키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 장 교수는 “현장 지도자들에게 어려운 통계학 용어를 쓰지 않고 ‘이럴 땐 이렇게 하라’고 직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며 “그 조언을 따를지는 또 현장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유명한 두 야구 영화 ‘머니볼(Moneyball)’과 ‘내 인생의 마지막 변화구(Trouble with Curve)’를 소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머니볼은 ‘데이터 야구’를 대표하는 영화이고, ‘내 인생의 마지막 변화구’는 야구가 숫자만 갖고 하는 스포츠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두 영화가 말하는 교훈 사이에 적절한 균형점을 찾는 것, 그것이 성공하는 야구 팀을 만드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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