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사슴의 눈을 본 적 있나요
고라니의 눈을 본 적이 있다. 내가 사는 강원도 원주 집 뒷산을 오르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와르르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올려다 보니 산비탈을 타고 큰 고라니와 작은 고라니가 내려오고 있었다. 소리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컸다. 지축이 흔들리는 듯했다. 두 녀석도 난데없이 나타난 사람을 보고 깜짝 놀란 것 같았다. 멈칫 서더니 황망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그러고는 재빨리 몸을 돌려 다시 산비탈로 뛰어 올라갔다. 그때 까맣고 반짝이는 동그란 눈동자를 마주쳤다. 잠깐이지만 고라니의 영혼을 들여다본 느낌. 그들도 나처럼 깜짝 놀랐던 것이다.
오래전 본 고라니를 떠올린 건, 전남 영광에서 배로 두 시간 걸리는 안마도에 산다는 사슴 600여 마리 이야기를 알게 됐기 때문이다. 안마도는 원래 사슴이 살던 섬이 아니었는데, 누군가 녹용을 채취하려고 사슴을 풀어 키웠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 돌보지 않고 방치된 사이 30년이나 세월이 흘러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고, 최근엔 인근 섬으로까지 헤엄쳐 옮겨 다니며 섬 주민들 농사를 망치는 애물단지가 되고 말았다.
주민들은 사슴을 유해 조수로 지정해 박멸하자는 아이디어를 내놓은 모양이었다. 국민권익위가 진행한 설문조사에선 무려 70퍼센트가 ‘주민에게 불편을 주는 사슴을 유해동물로 봐도 된다’고 답했다고 한다. 아마도 다른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다면, 조만간 전국의 사냥꾼들이 인근 섬으로 몰려 들어 사슴들을 사냥할 것이다.
내가 본 인터넷 기사의 사진 속 사슴들은 천연한 얼굴로 바다를 건너고 있었다. 오래전이지만 사슴의 눈을 직접 마주쳐봤기에 안다. 인간에 대한 유·무해 여부에 따라 운명이 바뀌기엔 생명의 가치가 훨씬 무겁다는 것. 인터넷에서 클릭 한번 하고 마는 설문이 아니라, 사슴 눈을 잠깐이라도 들여다본 뒤 응답하라고 했다면 결코 ‘유해하다’는 결론이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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