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났는데 오른 세계 증시… “美 금리 동향에 더 민감”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 하마스가 지난 7일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하면서 지정학적 위험이 커졌지만, 그간 세계 증시는 되레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글로벌 증시는 미국 금리 동향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토요일이었던 지난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로켓포 5000발을 쏜 이후 뉴욕증시 개장 첫날인 9일(현지 시각) S&P500지수는 0.63% 상승했다. 10~11일에도 각각 0.52%, 0.43% 오르는 등 기습 공격 이후 3거래일 동안 1.59% 올랐다. 같은 기간 영국 FTSE100 지수가 1.67% 오른 것을 비롯해 독일, 프랑스 등 유럽 주요국 증시도 상승했다. 아시아에서도 일본 닛케이평균이 3.04% 올랐고, 홍콩 항셍지수(2.33%), 한국 코스피(1.93%)도 상승세를 나타냈다. 글로벌 증시가 중동발(發) 전쟁 악재보다 미국 국채 금리 하락이란 호재에 더 민감하게 반응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미국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 줄어
미국 국채 금리는 지난달 19~20일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이후 급격히 오름세를 탔다. 미 재무부에 따르면 지난달 20일 연 4.35%였던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이달 3일에는 연 4.81%까지 치솟았다. 9월 FOMC에서 연준 위원들은 금리를 동결했지만, 인플레이션 하락 기조를 유지하기 위해 올해 연말까지 금리를 0.25%포인트 더 인상할 수 있고, 내년 말에도 연 5% 이상의 고금리가 유지될 것임을 시사하자 금리가 급격하게 오른 것이다.
하지만 지난 3일을 정점으로 국채 금리는 하락세로 돌아섰다. 연준 고위 인사들이 금리 인상 필요성이 줄었음을 시사하는 발언을 잇따라 내놓았기 때문이다. 지난 9일 연준 내 ‘매파(통화 긴축 선호)’로 분류되는 로리 로건 댈러스 연방은행(연은) 총재가 “미국 장기 국채 금리가 계속 오른다면 기준 금리를 올릴 필요성이 줄어든다”고 했다. 이튿날에도 메리 데일리 샌프란시스코 연은 총재가 “국채 금리 상승이 금리 인상을 대체할 수 있다”고 했다.
11일 공개된 연준의 9월 FOMC 회의록에서도 변화의 조짐이 감지된다. 9월 FOMC 회의록에 따르면 다수의 참석자는 향후 회의에서 한번 더 금리를 인상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했지만, 일부 참석자는 추가 인상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앞서 7월 FOMC에서 대부분 참석자가 여전히 인플레이션 상승 위험이 상당하고, 이에 따라 추가 긴축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판단한 것보다는 확실히 ‘매파’적 기조가 옅어진 것이다. 이에 이날 미국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연 4.58%까지 내려왔다.
◇“아직 중동발 위험 충분히 반영 못해”
지금까진 미국의 국채 금리 하락이 중동발 악재를 덮어줘 글로벌 증시의 상승세를 이끌고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분쟁이 중동의 전면전으로 확전할 경우 상황이 급히 변할 수도 있다.
실제로 지난해 2월 24일 시작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초기에도 글로벌 증시는 ‘반짝’ 상승세를 보였다. 하지만 전쟁이 장기화하고, 국제 유가가 급등하면서 이내 내림세로 돌아섰다. 글로벌 투자 리서치 기업 알파인 매크로의 수석 지정학 전략가 댄 알라마리우는 최근 투자자에게 보낸 서한에서 “분쟁의 향방은 불확실하지만, 향후 1~3개월 동안 글로벌 환경이 크게 악화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면서 “이스라엘이 이란의 핵 시설을 공격하는 가장 극단적인 시나리오에서는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 이상으로 치솟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글로벌 금융시장에 아직 중동의 지정학적 위험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의견도 나온다. 뉴욕 멜론 은행(BNY 멜론)의 밥 새비지 전략 및 인사이트 책임자는 미국 경제 방송 CNBC에서 “글로벌 시장은 아직 유가 상승과 국방비 지출 증가로 인한 인플레이션 위험을 충분히 가격에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이스라엘의 예산과 국내총생산(GDP)을 감안하면 8주 이상 장기전을 지속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전 세계적으로 군사비 지출이 늘어나면서 저축이 줄어들고, 금리가 더 높아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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