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낳으면 특진… 아이 키우려 입사한다는 회사
[아이 낳게 하는 일터] 한미글로벌
‘셋째 아이를 낳으면 업무 고과나 연차에 관계없이 한 직급 승진.’
건설사업관리(PM) 기업 한미글로벌이 지난 6월 발표한 출산 복지 제도 중 일부다. 넷째부터는 출산 후 1년 동안 육아 도우미를 지원한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육아휴직 때에는 3개월 동안 월급을 그대로 지급하고, 기존 5000만원이었던 결혼 주택자금대출 한도는 1억원으로 올렸다.
한미글로벌은 발주처를 대신해 건설 사업의 기획부터 사후 관리까지 전(全) 과정을 관리해주는 회사다. 직원 수 1300여 명으로, 국내 PM 분야 1위다. 지난해 매출 3744억원, 영업이익 307억원을 기록했다. 그런 한미글로벌은 다양한 가족 친화 제도로 직장인들 사이에선 ‘출산 장려 기업’으로 더 잘 알려져있다. 최근 이 회사에 입사하는 경력직 사원 중에는 “아이를 키우기 위해 입사 지원서를 냈다”고 고백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한미글로벌 직원의 합계출산율은 1.21명. 기혼 직원만 놓고 보면 1.57명으로 올라간다. 지난해 한국 합계출산율(0.78명)의 2배다. 지난달에는 김영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이 이 회사를 찾아 출산 복지 제도에 대한 설명을 듣기도 했다.
지난 6일 서울 강남구 한미글로벌 본사에서 만난 직원들은 ‘애 키우기 좋은 회사 환경’ 중에서도 출퇴근 시간을 자유롭게 정하는 탄력 근무 시스템을 첫째로 꼽았다. 직원들은 오전 7시부터 10시까지 한 시간 단위로 출근 시간을 선택할 수 있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자녀의 하원을 챙겨야 한다면 오전 7시에 출근해 오후 4시에 퇴근할 수 있는 것이다. 이 회사는 올 6월 ‘자녀돌봄휴가’를 신설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자녀를 둔 직원에게 40시간의 유급휴가를 준다. 원하는 때 1시간 단위로 나눠 사용할 수 있다. 장미영(42)씨는 “학기 초에는 학부모 상담이나 각종 행사가 몰려 있어 학교 갈 일이 많은데, 그때마다 결재받고 연차 쓸 필요가 없어 편하다”고 했다. 올해 ‘육아기 재택근무 제도’도 도입했다. 8세 미만 자녀가 있는 직원은 최대 2년 동안 재택근무를 할 수 있다. 2자녀 이상인 경우엔 최대 3년이다. 육아기 재택근무 제도가 생긴 뒤 둘째 자녀 계획을 세운 직원도 있다고 한다.
이게 끝이 아니다. 한미글로벌에선 자녀 수와 상관 없이 출산한 직원에게 30일 특별 유급 휴가를 준다. 법정 휴가와는 별도다. 둘째 이상을 낳은 직원에겐 육아휴직 기간 최대 2년까지 근속 연수로 인정하고, 휴직 중에도 진급 심사를 한다. 다양한 출산 복지 제도가 회사 조직에 녹아들면서 팀원의 출산을 응원해주는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한다. 자녀가 한 명인 직원에겐 “언제 둘째를 가지냐”는 말도 자연스레 나온다는 것이다. 두 자녀를 둔 김민(32)씨는 “회사에서 출산과 육아를 지지하다 보니, 남성 직원들도 육아 휴직을 부담 없이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이정아(30)씨는 “부모님 도움 없이 남편과 아이를 키워야 하는 상황인데, 회사 제도가 없었으면 마음 놓고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출산 복지 혜택은 결혼한 부부만 누릴 수 있는 게 아니다. 혼인 신고를 하지 않은 커플이나 싱글맘·싱글대디에게도 똑같은 조건으로 지원한다. 입양 자녀에게도 마찬가지다. 비혼 출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저출생 문제를 심화시킨다고 보고, 다양한 형태의 가족 구성을 인정한다고 한다.
한미글로벌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결혼을 원하는 직원이 짝을 찾을 수 있게 적극 나서고 있다. 지난달에는 사내 조직으로 ‘결혼 발전소’를 출범시켰다. 미혼 직원들이 자연스러운 만남을 통해 인연을 만들 수 있도록 돕는 조직이다. 2030 직원들을 중심으로 모임비를 지원해 동호회 참여를 유도하고, 서울 월드컵경기장이나 국립생태원 등 한미글로벌이 건설관리를 맡은 랜드마크 건축물에서 데이트를 하고 인증하면 호텔 숙박권도 주기로 했다. 이전에는 회사 차원에서 결혼정보회사 비용을 지원했지만, 인위적인 만남에 거부감을 느끼는 젊은 세대가 많아지면서 이같이 제도를 개선했다고 한다. 연애부터 결혼, 출산과 육아까지 이어지는 과정을 회사가 모두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한미글로벌의 출산 복지 제도는 ‘기업도 저출산 문제에 발벗고 나서야 한다’는 김종훈 회장의 경영 철학에 기반해 만든 것이다. 김 회장은 1996년 한미글로벌을 세우면서 대학 학자금을 지원하기 시작해 2005년부터는 자녀 수 제한 없이 주고 있다. 2010년에는 육아휴직을 의무로 바꿨다. 김 회장은 “국가 비상사태에 견줄 정도로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요즘, 출산을 하는 사람은 나라를 구하는 영웅이라고 할 수 있다”며 “아이 키우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이 그 무엇보다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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