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부녀에게 반한 릴케, 연애詩 100편 써 구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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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가 안드레아스 루 살로메(1861~1937·사진)를 만나지 않았다면? 연상 연인인 루는 릴케 삶과 창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조력자.
독일 작가이자 정신분석학자인 루는 성관계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결혼했으며, 기혼녀로 니체 프로이트 릴케 같은 유럽 지성과 사귀었다.
릴케는 루와 교류하며 검소하고 채식하는 생활 양식을 익히게 된다.
릴케는 26세에 결혼한 후 루에게 결별을 통보하지만, 그 후에도 두 사람 간 정서 교류는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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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가 안드레아스 루 살로메(1861~1937·사진)를 만나지 않았다면? 연상 연인인 루는 릴케 삶과 창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조력자. ‘말테의 수기’에 나오는 ‘받는 사랑은 위험하다’는 사랑학은 ‘누구도 소유하지 못했던 여인’인 루와 나눈 교류에서 얻은 깨우침이다.
독일 작가이자 정신분석학자인 루는 성관계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결혼했으며, 기혼녀로 니체 프로이트 릴케 같은 유럽 지성과 사귀었다. 루가 쓴 저서 ‘라이너 마리아 릴케’(1928년) ‘프로이트에 대한 나의 감사’(1931년)에 그 여정이 담겼다.
릴케는 22세 때인 1897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처음으로 머물던 중 16세 연상이자 프리드리히 칼 안드레아스를 남편으로 둔 루를 만났다. 그는 ‘너를 축하함’이란 제목으로 루에게 바치는 연애시 100여 편을 지었지만 루가 만류하는 바람에 발표하지는 않았다.
그 후 두 사람은 독일 볼프라츠하우젠에서 함께 지낸다. 이때 릴케는 ‘르네 마리아 릴케’란 본명을 ‘라이너 마이너 릴케’로 바꾼다. 루가 프랑스어 르네를 독일어 라이너로 대체하는 게 좋겠다는 조언을 받아들인 결과. 루는 흘려 쓰는 릴케 필체도 단정해지도록 만들었다. 릴케는 루와 교류하며 검소하고 채식하는 생활 양식을 익히게 된다.
릴케는 26세에 결혼한 후 루에게 결별을 통보하지만, 그 후에도 두 사람 간 정서 교류는 이어진다. 1924년 심리 치료사였던 루는 릴케에게 편지를 보냈다. “릴케. 당신이 쓴 시가 제 환자들을 치료하는 데 유용하답니다.”
릴케는 이혼한 뒤인 40대 후반부터 부쩍 건강이 나빠진다. 1926년 12월 초 51세 릴케는 엘루이 부인 일행이 방문하자 장미를 주려고 꺾다가 가시에 왼쪽 손가락을 깊이 찔린다.
이런 소동과 더불어 릴케는 자신 묘비명을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그 많은 눈까풀 아래 누구의 잠도 아니려는/욕망이여’라고 써 둔 탓에 세간엔 릴케가 장미 가시에 찔려 죽었다는 헛소문이 떠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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