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안심시키던 집주인, 뉴스 속 고액 체납자였다

박현주 책 칼럼니스트 2023. 10. 13.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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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집주인은 뉴스에서나 보던 고액 체납자였다. 그가 진작부터 체납해 온 억대의 세금은 내 권리보다 앞섰다. 여기까지 파악하고 나를 지탱하던 두 가지 신뢰가 무너졌다. 우선 비단 같은 말을 늘어놓으며 나를 안심시켰던 집주인은 소송에서 패소해도 나 몰라라 하고, 억대의 세금마저 배 째라며 뭉개고 있는 부도덕한 사람이었다. 내 재산이 그런 사람의 수중에 있었다. 또 정의롭게 돌아가리라고 생각했던 세상의 또 다른 얼굴을 보았다. 적법하게 들어온 임차인의 자산에서 임대인이 체납한 세금을 받아 가려 하는 것이다."

전세 사기 피해자이자 웹툰/카툰에세이 작가인 홍인혜 작가는 '나와 같은 일을 겪지 않은 사람에겐 정보가 되길 바라고, 나와 같은 일을 겪고 있는 사람에겐 위로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직접 겪은 전세 사기 사건의 전말을 생생한 만화로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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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의 전세역전 - 홍인혜 글·그림/정민경 감수/세미콜론/1만8000원

- 전세 살던 집 압류돼 경매 개시
- 주인의 세금체납으로 공매까지
- 저자의 사기 극복 과정 만화로
- 생소한 법률용어 쉽게 풀어내
- 8월 기준 웹툰 462만 뷰 ‘화제’

“나의 집주인은 뉴스에서나 보던 고액 체납자였다. 그가 진작부터 체납해 온 억대의 세금은 내 권리보다 앞섰다. 여기까지 파악하고 나를 지탱하던 두 가지 신뢰가 무너졌다. 우선 비단 같은 말을 늘어놓으며 나를 안심시켰던 집주인은 소송에서 패소해도 나 몰라라 하고, 억대의 세금마저 배 째라며 뭉개고 있는 부도덕한 사람이었다. 내 재산이 그런 사람의 수중에 있었다. 또 정의롭게 돌아가리라고 생각했던 세상의 또 다른 얼굴을 보았다. 적법하게 들어온 임차인의 자산에서 임대인이 체납한 세금을 받아 가려 하는 것이다.”

‘루나의 전세역전’에 실린 홍인혜 작가의 그림과 글은 폭넓은 호응을 얻고 있다. 세미콜론 제공


홍인혜 작가의 ‘루나의 전세역전’ 본문 중 한 대목이다. 대한민국에서 세입자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어떤 상황인지 금방 알 것이다. 이 책은 전세로 살던 집이 갑자기 압류되어 경매가 개시되고 집주인의 세금 체납으로 인한 공매에 이르기까지 환난의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3년간의 생생한 ‘전세 사기 극복 기록’이다.

전세 사기 피해자이자 웹툰/카툰에세이 작가인 홍인혜 작가는 ‘나와 같은 일을 겪지 않은 사람에겐 정보가 되길 바라고, 나와 같은 일을 겪고 있는 사람에겐 위로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직접 겪은 전세 사기 사건의 전말을 생생한 만화로 그렸다. 더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대형 플랫폼이 아닌 자신의 인스타그램과 블로그에서 자체 연재하며 무료로 공개했다.

보는 사람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고, 분통 터지게 하고, 같은 고통을 겪는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 일으켰던 이 화제의 웹툰은 2023년 8월 현재 누적 462만 뷰에 달한다. 이를 계기로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 158화 ‘이것은 실화다’ 편에도 출연했다. 연재가 종료된 지 2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전세 사기 관련 뉴스는 하루가 멀다고 보도된다. 심각한 사회문제다. 피해자들은 피해 사실을 알고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평생 모은 돈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다. 벼랑 끝으로 내몰린 피해자 중에는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들도 있다. 임대차보호법의 새로운 조항이 신설되고 피해자 구제 대책이 촉구되고 있지만, 아직은 역부족이다. 관련 기사를 검색하다 보면 이런 게 민생 파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책은 정민경 임대차 관련법 전문 변호사의 꼼꼼한 검수를 거쳤다. 정 변호사는 웹툰에 담긴 꼼꼼하고 방대한 정보를 보며 “놀랍다!”고 표현했다. 단행본으로 내면서 웹툰 연재 당시 일부 혼동이 있을 수 있는 용어 오류를 바로잡고 정확성을 높였다. 생소한 법률용어도 쉽게 풀어 해설했다. 작가가 겪은 고통의 기록을 따라 읽다 보면 확정일자 효력 발생 시점, 전세 보증금 반환보증, 경매 관련 정보 공개, 임대인의 세금 체납액을 열람하는 방법, 경매 매물의 감정평가액, 경매와 공매의 차이점, 공매 입찰 방법과 낙찰 후 잔금 납부, 등기필증 발급 등, 막막하고 복잡한 개념도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다.


정 변호사는 추천의 글에서 이렇게 썼다. “현실은 법과 제도만으로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고, 이로 인해 저자가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안타깝다. 그럼에도 한편으로는 저자의 귀한 경험이 바탕이 되어 탄생한 이 책이 이제 막 사회에 첫걸음을 내딛는 청년들에게, 그리고 보증금 회수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많은 임차인들에게 좋은 지침서가 될 수 있으리라는 점에서 전화위복이 아닐까 한다.” 홍인혜 저자의 말은 전세 사기 피해자 모두의 바람일 것이다. “나는 삶의 주권을, 내 집이 주는 안정을, 일상의 평화를 찾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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