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작가 신양란의 좌충우돌 해외여행 5] 여러분, 싸우지들 마시고 그냥 버스 번호 하나만 알려주세요
[여행작가 신양란] 이스탄불은 패키지여행 팀에 끼어서 두 차례 갔고, 남편과 둘이서 자유여행으로 두 차례 간 도시이다. 그중 마지막 자유여행 때 겪었던 어처구니없는 일이 떠올라 혼자서 피식거리며 웃었다.
이스탄불 패키지여행은 대개 하기야 소피아 주변, 즉 △하기야 소피아 △블루 모스크 △히포드롬 광장 △톱카프 궁전 등을 본 다음 △그랜드 바자르 △돌마바흐체 궁전 △보스포러스 해협 유람선 투어 정도면 대강 마무리되는 편이다.
우리 부부는 첫 이스탄불 자유여행 때 기존 패키지여행에서 못 본 곳들, 즉△ 예레바탄 사라이(지하 물 저장소) △이스탄불 고고학박물관 △갈라타 타워 △발렌스 수도교 등을 챙겨 보았다.
두 번째 자유여행 때는 그동안 못 본 곳을 가보고 싶어서 이리저리 검색해보았는데 △카리예 뮤지엄(코라 성당)이라는 곳이 내 마음을 확 끌어당겼다. 건물 내부를 장식한 비잔틴 양식의 벽화와 천장화가 백미라는 설명에 그곳을 꼭 가보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하루는 갈라타 다리 근처 고등어 케밥 집에서 간단하게 아침 겸 점심을 해결한 다음, 그 옆에 있는 에미노누 버스 정류장에서 카리예 뮤지엄 가는 버스를 타려고 했다. 호텔 직원이 거기에서 버스를 타면 된다고 알려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여러 노선 버스의 출발지에 해당하는 그곳에는 차가 많아서 어떤 버스를 타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가장 친절해 보이는 사람을 골라 다가간 다음, 가이드북의 카리예 뮤지엄 부분을 가리켰다. 그곳에 가는 버스를 타려 한다고 더듬더듬 설명했다.
그런데 진짜로 튀르키예 사람들은 천성이 친절하고, 더욱이 한국인에게는 넘치도록 우호적이다. 우리 부부가 척 보기에도 한국인처럼 생겼는지, 주변에 있던 사람들까지 우르르 모여들어서 우리를 도와주고자 나섰다.
문제는 그들 대부분 목소리가 크고, 다혈질에 가까운데다, 의견 일치가 안 된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OO 버스가 그곳을 지나간다” “아니다, 그 버스는 돌아간다. OO 버스를 타야 한다”는 식의 단순한 입씨름인 것 같았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자존심 대결이 감정싸움으로 번지는 듯했다. 우리는 졸지에 현지인끼리 싸움을 붙여 놓은 꼴이 되었고, 그 싸움의 한복판에 선 모양새가 되었다.
그렇게 난감하기 이를 데 없는 상황이 한참 동안 계속되었다.
“여러분, 제발 싸우지들 마시고, 그냥 버스 번호 하나만 알려주세요”라고 말하고 싶은데, 그들은 어느새 우리한테는 관심도 없고, 자기 주장이 옳다는 것을 인정받기 위해 치열하게 다투었다.
그러다 하나둘 화를 내며 돌아섰다. 표정을 보아하니, ‘흥, 제 놈이 뭘 안다고 잘난 척이야’ 라고 욕을 하는 것 같았다.
하여간 한동안의 소란이 가라앉고 마지막 승리자인 남자가 버스 하나를 가리켰다. 그걸 타라는 뜻 같았다. 우리로서는 안 탈 수도 없는 일이었다.
버스가 출발하고 난 뒤, 승객 중의 한 사람에게 다시 가이드북을 펼쳐 보이며, “나는 카리예 뮤지엄에 가려고 한다”고 말하니, 그는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면서 손짓발짓을 섞어 하는 말인즉, 이 버스는 멀리 돌아가니 일단 내려서 OO 번으로 갈아타는 게 좋을 거라는 뜻 같았다.
얼떨결에 버스에서 내린 다음, 우리는 그 자리에서 그가 말한 버스가 오기를 기다리는데 시간이 꽤 지나도록 오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볼밖에.
그랬더니 그 정류장이 아니라 길을 건너 오른쪽으로 꺾어진 다음 한참 올라간 곳에 있는 정류장에서 타라니, 슬슬 짜증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아, 뭐야, 이 나라 사람들 한국인에게 우호적인 거 맞나고요?’
하여간 그런 우여곡절을 겪으며 끝내 카리예 뮤지엄을 찾아갔고, 원하던 비잔틴 양식의 모자이크 그림과 프레스코 그림으로 눈 호강을 실컷 했다. 쓸데없는 고생은 아니었던 셈이다.
아, 버스 정류장을 찾아가는 길에 현지인이 드나드는 소박한 케밥집을 발견하고 찜해두었다가, 투어를 마친 후 찾아가 저렴하면서도 맛있는 되네르 케밥을 먹을 수 있었던 것은 덤으로 얻은 즐거움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왁자지껄, 우왕좌왕 끝의 키리예 뮤지엄 투어는 내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남겨 주었다. 이번 칼럼을 쓸 수 있는 소재를 제공해 준 셈이니, 어찌 아니 고마우랴.
|신양란. 여행작가, 시조시인. 하고 싶은 일, 즐겁고 행복한 일만 하면서 살고 있다. 저서로 <여행자의 성당공부> <꽃샘바람 부는 지옥><가고 싶다, 바르셀로나><이야기 따라 로마 여행>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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