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돈선의 예술인 탐방지도 -비밀의 방] 66. 모든 것을 잃고 나서 모든 것을 얻은 시인 황원교

최돈선 2023. 10. 13.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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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으로 쓴 한 글자의 간절함, 단단한 시가 되다
교통사고 전신 마비, 아내 유승선 입에 막대기 물려
입안 허는 고통 속 짧은 시 창작… “해야할 일 깨달아”
1996년 충청일보 신춘문예 당선 2001년 첫 시집 출간
TV·언론 보도·강연 초청 ‘한국 스티븐 호킹’ 별칭
탐구심·창작열 가득, 고향 춘천 청선창작지원금 대상
▲ 자판 막대기를 물고 있는 황원교 시인

그는 하루종일 누워서 지낸다. 34년을 그렇게 와불처럼 지내고 있다. 말을 하고 머리를 움직이는 일 이외는 단 1㎝도 움직일 수 없는 사람. 그는 자신 스스로를 와유거사(臥遊居士)라 부른다. 누워서 거니는 은둔자란 뜻이다. 1989년 결혼을 일주일 앞두고 그는 교통사고로 전신이 마비되었다. 그것으로 그는 파혼을 통보받고 모든 것을 잃었다. 대신 절망과 어둠과 고통을 얻었다. 그의 나이 스물아홉 때였다.

3년 동안 서울 성모병원에 입원하여 여러 합병증에 시달렸다. 목만 겨우 가눌 뿐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척추를 다친 황원교는 발작성 근육경련과 더불어 심한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겪었다.

퇴원 후 황원교는 춘천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자신의 형편없이 망가진 모습을 친지와 이웃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여동생이 있는 청주로 옮겼다. 아파트 전세를 얻어 생활했다. 청주에서 몸과 마음을 추스른 뒤, 춘천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아들을 돌보던 어머니가 갑자기 쓰러져 돌아가셨다. 연로하신 아버지 홀로 아들을 돌보아야 했다.

▲ 황원교 시인의 작업 모습

실의와 좌절의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봄바람처럼 한 사람이 왔다. 청년회 부회장인 유승선. 그니는 누워만 있는 황원교에게 무언가 할 일을 찾아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유승선은 컴퓨터 막대기를 들어 황원교의 입에 물렸다. 그것으로 자판을 누르게 했다. 자꾸만 빗나가는 막대기를 황원교는 온 힘을 다해 꽉 물었다. 집중해야 했다. 한 자 한 자, 글자가 만들어져 갔다.

입이 부르트고 입 가장자리가 찢어졌다. 입 안이 헐어 그 고통으로 눈물이 비어져 나왔다. 그럼에도 황원교는 멈추지 않았다.

마침내 한 편의 짧은 시가 완성되었다. 그건 황원교 뿐만이 아니고 유승선의 기쁨이기도 했다. ROTC 장교 출신인 황원교는 낮은 고지 하나를 점령한 듯 싶었다. 황원교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컴퓨터에 조예가 깊은 유승선의 도움으로 컴퓨터 사용법을 하나도 빠짐없이 익혀나갔다.

▲ 황원교 시인의 결혼사진

이듬해.

황원교는 마침내 1996년 충청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었다. 새해 신문 지상에 황원교의 시가 실렸다. 시인이란 이름은 얼마나 거룩한 말인가. 어느 날, 유승선이 황원교가 읽을 수 있도록 책장을 넘겨주며 말했다. 제 꿈은 외국에 나가 사회복지학을 전공하는 거예요. 그리고 아프리카 가난한 마을로 가서 그들을 평생 돕고 싶어요.

올 것이 왔구나. 그 후 황원교 시인은 얼마나 많은 밤을 버림받은 듯이 깊은 고독 속에서 헤매었던가. 마침내 황원교 시인은 자신의 마음을 유승선 님에게 고백했다. 그 간절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말은 그 어떤 말보다 순결했다. 그러자 유승선 님은 미소를 지으며 가만히 그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로부터 황원교 시인은 바빠지기 시작했다. TV나 언론 잡지에 장애 시인 황원교가 자주 보도되었다. 게다가 삼성생명을 비롯하여 여러 기관 단체에 초청되어 강연을 자주 했다.

▲ 황원교 시인의 강연 모습

전국을 순회하는 날엔 아버지와 천사 유승선이 늘 곁에서 황원교 시인을 도왔다. 거구인 황원교 시인을 휠체어에 옮기는 일, 밥을 떠먹이는 일, 대소변을 처리하고 목욕시키는 일, 책장 넘기는 일 등 자질구레한 일 하나하나가 한 사람의 힘만으론 어림도 없었다. 다니는 곳마다, 황원교 시인은 한국의 스티븐 호킹이라 불릴 정도로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여러 군데서 강연료가 들어왔다. 그 돈으로 그토록 숙원이던 센서를 도입했다. 이제 막대기가 필요 없게 되었다. 머리만 움직이면 쉽게 커서가 움직이고 글자를 자유롭게 찍을 수 있었다. 게다가 자비를 들여 자동넘김 독서대도 장만했다. 물론 청주시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동안 아버지와 유승선 님, 곁에 있던 가족들이 한 장 한 장 넘겨주던 수고는 사라졌다. 속도가 빨라져 10여 년 동안 3000여 권의 책을 읽어냈다. 그는 독서를 통해 인문학지식과 깊은 문학적 자양을 축적해 갔다.

▲ 청선창작지원 대상을 수상했던 모습

마침내 결혼 미사를 올린 2001년은 축복의 해였다. 첫 시집 ‘빈집지키기’가 출간되었고, 계간 ‘문학마을’ 신인상이 황원교 시인에게 주어졌다. 그 후, 시집 ‘혼자 있는 시간’, ‘오래된 신발’이 연속하여 출간되었고, 산문집 ‘굼벵이의 노래’, ‘다시 없을 저녁’이 세상에 나왔다. 황원교 시인의 창작열은 그 영역이 나날이 확장되었다.

전신마비 장애를 딛고 이렇게 왕성한 활동을 할 수 있다니, 그건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3년에 걸쳐 쓴 황원교 시인의 장편소설 ‘나무의 몸’은 큰 화제였다. 자신을 나무로 비유한 그 소설은 메아리처럼 사람들의 가슴을 쳤다. 사람들은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분명 시인의 곁엔 한 천사가 함께 자리하고 있음을.

황원교 시인의 시와 산문, 소설들은 사람들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다. 그건 사랑의 힘이었다. 놀랍게도 황원교 시인의 작품을 주시하고 있던 춘천의 청선문화예술원이 창작지원금 대상을 수여했다. 고향은 그를 잊지 않았다. 황원교 시인이 수상식에 참석했을 때 전상국, 이외수 소설가가 달려와 축하해 주었다.

황원교 시인의 능동적이고 활발한 활동은 세간의 화젯거리가 된 적도 있었다. KBS 도전 대한민국 퀴즈에 출전하여 최종 1등을 한 것이다. 누워서만 지내는 장애인이 1등을 차지한 일은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기에 충분했다. 항공권 상품으로 아버지를 비롯하여 조카들까지 태국여행을 했을 때는 자신의 존재가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다고 했다.

▲ 시집 ‘0.23초’

올해 황원교 시인은 시집 ‘0.23초’를 펴냈다. 나는 시집 뒤의 ‘표4’를 썼다. 나는 문득 황원교 시인이 보고 싶었다. 아내와 함께 9월 어느 날 청주로 출발했다. 나와 아내가 황원교 시인의 집을 방문했을 때 아버지는 계시지 않았다. 작고하신 지 몇 해가 지나 있었다. 그의 아내 유승선 님이 반갑게 우리를 맞이했다. 유승선 님은 유방암과 난소암 수술을 네 번이나 했다고 했다.

그러나 유승선 님의 표정엔 그늘이 없었다. 똑똑한 말씨, 아름다운 미소는 우리 부부를 편안케 했다. 얼마 전 홀로 지내는 서울 오빠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오빠가 입원한 병원에 가서 한 달간 돌봄을 하고 왔다고 했다. 그간 황원교 시인의 수발은 도우미 아주머니와 남동생이 대신 맡았다.

자신도 암으로 투병 중임에도 쓰러진 오빠를 위해 수발을 드는 이가 유승선 님이었다. 작고한 아버지가 지은 집은 쾌적하고 평안했다. 황원교 시인은 우리 부부를 보자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시인은 자신이 글 쓰는 모습을 직접 시연해 보여 주었다. 조금만의 눈빛에도 센서는 활발히 움직였다. 일반인이 타이핑하는 속도와 거의 버금갔다. 자동넘김 독서대에 책을 끼워 놓으면 시간에 맞춰 책장이 천천히 넘어가곤 했다.

황원교 시인의 탐구심과 문학에 대한 열정은 끝이 없을 듯했다. 마침 최준 시인이 황원교 시인을 방문했다. 황원교 시인의 강원고 후배인 최준 시인은 자주 방문하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간다고 했다.

불굴의 시인과 천재 시인 최준의 이 만남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날도 유승선 님은, 두 시인의 대화에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새파란 하늘에 가을 들꽃처럼 미소가 피어났다. 시인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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