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홍 칼럼]정책은 직진하고, 리더십 스타일은 확 바꿔라
민생 아픔 공감 모습 보여주는 것도 부족
성공한 대통령은 귀가 크고
실패한 대통령은 입이 크다는 것 명심해야
미국 민주당의 고위급 인사가 ‘트럼프 리스크’를 걱정하며 사석에서 한 말이다. 내년 11월 대선에서 ‘트럼프 당선’이라는 악몽의 가능성을 줄일 가장 좋은 방법은 바이든 대통령이 연임에 도전하지 않는 것인데 정작 바이든 본인만 그걸 모른다는 것이다.
물론 농담 섞인 푸념이었지만, 한국의 여야도 비슷한 현상을 겪고 있다.
국민의힘 사람들에게 내년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의 필승 비법, 즉 국힘이 가장 두려워하는 상황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이재명 대표가 “나는 재판에만 몰두하겠다”며 뒤로 빠지고 비명 친명 구분없이 한 몸이 된 새 얼굴들로 지도부를 구성해 공천 혁신을 하는 상황이다. 그러면서 민주당 의원 전원이 “180석을 주셨는데 민생을 살리는데 힘을 쏟지 못했다”며 국민 앞에 무릎 꿇고 실용주의 진보정당을 표방하는 상황이다. 물론 현실이 될 가능성은 없다. 정반대로 질주할 것이다.
민주당 사람들에게 국힘의 필승 비법을 물으면 어떨까….
강서구청장 보선 패배는 사실 여당에선 진작 예상했던 바였다. 투표일 전부터 내부에선 표차가 20% 가까이 날수도 있다는 예측이 나왔다. 보선 후 쇄신책이 나올 것이라는 얘기도 진작부터 돌았다.
이제 예고된 대로 책임론과 국정쇄신론이 일 것이다.
확 바꿔야 할 것과 더 확실하게 밀고 나가야 할 것을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정책 방향은 변경의 대상이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도가 낮은 것은 정책 방향의 문제가 아니다.
한미동맹 강화, 문재인 정권이 이탈시킨 나라 궤도와 역사 바로잡기, 건전재정 유지, 민노총과 온갖 좌파 카르텔의 폐단 시정 등 정책기조 대부분은 옳은 방향이며, 골수 좌파 지지층을 제외한 다수 국민이 공감하고 있다.
‘이재명에만 매달려 신물 난다’ 하는데, 많은 이들이 그런 느낌을 갖게 되는 상황인 것과 그게 진실인 것은 별개다. 핵심 혐의인 대장동 수사는 이미 올 1월 사실상 마무리됐고 민주당이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키지 않았다면 이 대표는 2월 구속돼 언론 헤드라인에서 사라진 채 재판을 받고 있고, 백현동 대북송금 등의 추가 혐의들은 조용히 추가 기소됐을 것이다.
범죄 혐의들이 워낙 다종 다양한데다 민주당이 방탄을 해주는 바람에 오랜 기간 이슈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였고 결과적으로는 국민들에게 피로감을 유발한 것이다. 단칼에 외과수술 하듯 승부했어야한다는 비판도 나오는데, 그럼 나중에 추가로 불거진 백현동, 대북송금 등 중대 혐의들을 덮어버렸어야 한다는 말인가.
이 대표 구속영장 기각은 심판의 자질 문제일 뿐 본질과는 무관하다. 인류 역사는 거대한 사건의 흐름 속에서 우연히 길목을 지키게 된 한 사람의 비상식적 결정이 엄청난 낭비와 소모를 유발하는 사례를 수없이 봐왔다. 열심히 뛰어 골을 넣었는데 이상한 심판이 공격자 반칙을 선언해 경기 흐름이 끊어지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그래도 사안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중대범죄 혐의자가 과반 의석 정당의 대표라는 권력을 휘두르며 민주주의를 왜곡시키는 소모적 프로세스를 국민이 보다 더 오래 겪어야 함을 의미할 뿐이지, 혐의의 중대함과 사법적 정의실현이라는 본질은 전혀 달라진 게 없다.
물론 윤 정부가 추진해온 국정 방향이 옳다는 것과 그것이 제대로 실행돼 국민이 체감할 수 있게 결과로 전달됐는지는 별개다. 서툴고 무능해 일을 그르치는 내각과 참모진이 있다면 인적 쇄신이 필요하지만 모양 갖추기식 사람 바꾸기만으로는 진정한 쇄신이 될 수 없다.
30% 중반대에 머무는 지지율과 보선 결과에 대해 윤 대통령은 내심 억울한 마음이 들 것이다. ‘밤잠 못 자고 코피 쏟으며 명절에도 매일 현장을 다니며 혼신의 힘을 다했는데…’.
하지만 정치는 보여지는 것이다. 자기 혼자 아무리 고생하고 커튼 뒤에서 울어도 누가 알아주지 않는다.
당초 김기현 대표는 김태우를 배제하고 다른 두 사람을 후보군으로 밀었으나 대통령실이 김태우를 배제하면 사면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 되지 않느냐며 고집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주변에서 자신과 다른 생각, 쓴소리를 마음껏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왔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지금 정말 절실히 쇄신해야 할 항목은 대통령 본인의 리더십 스타일이다.
첫째, 귀를 열고 불편한 소리를 청해 들어야 한다. 둘째, 민생현장에서 공감의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 셋째, 사람에 관한한 철저히 덧셈의 정치를 해야 한다.
화목한 가정을 위해선 배우자의 말을 많이 들어주고 공감해주라는 말을 많이들 한다. 경영학 책에도 수없이 나온다. 경청·공감, “입 닫고 귀 열어”가 리더십의 요체다.
민생의 어려움도 마찬가지다. 지금 경제는 솔로몬이 와도 풀기 어렵다. 문 정권이 곳간을 다 털어먹은 데다, 국제 정치 경제 상황도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국민도 그걸 안다. 그럼에도 비판이 주로 윤 대통령으로 향하는 것은 공감과 비전의 리더십이 안 느껴지기 때문이다.
말로 민생대책을 강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애로사항을 직접 들어주고 같이 아파해줘야 한다. 시장에 가서 어깨 몇 번 두드려주고 오는 게 아니라, 손님 끊긴 밥집에 상인들과 둘러앉아 몇 시간이고 얘기 들어주고 일일이 메모해야 한다. “다녀갔다” “떡복이 먹고 갔다”가 아니라 “듣고 갔다” “수첩에 적어 갔다”가 돼야 한다. 젊은 창업인들, 구직박람회의 청년들…대통령이 만나 청취하고 함께 고민해 줘야할 대상은 수도 없이 널려있다.
선거는 당에 일임해야 한다. 여당은 윤 정부를 돕기 위해 표를 달라가 아니라 “우리 당이 이러 이러한 걸 하려하니 의석을 주십시오”라고 해야한다. 그러려면 국민 속으로 들어가 국민이 뭐를 바라는지 수렴해서 정책으로 묶어내야 한다.
총선 승리 전략? 아주 간단하다. 당선될 사람을 공천하면 된다. 그게 그렇게 어려운가. 대통령이 공천에서 손 떼고 당선 가능성 위주로 공천하라고 당에 엄명하면 된다.
리더십 쇄신의 핵심은 듣기 싫은 소리를 기꺼이 청해 듣는 데서 출발한다. 예스맨을 멀리하고 목이 달아나도 할 소리 하는 사람을 자주 만나야 한다. 5년간 귀가 편하면 평생 손가락질당하고, 5년을 불편하게 지내면 평생을 칭송받으며 살 것이다.
이기홍 대기자 sechepa@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총선 위기” 혼돈의 與… 尹, 김행 임명 포기
- [이기홍 칼럼]정책은 직진하고, 리더십 스타일은 확 바꿔라
- [단독]‘2025학년도 의대 정원 확대’… 尹, 이르면 내주 직접 발표
- [단독]개발중인 ‘한국형 아이언돔’, 北장사정포에 대응 취약
- [단독]갈곳 없는 학대피해아동… 쉼터서 3개월 머문 뒤 보육원으로
- 네타냐후 “하마스, 민간인 산채로 불태워”… 지상전 명분으로
- “은행 관두고 기술직”… 고학력 5060, 평생 현역 꿈꾸며 자격증 열공
- [횡설수설/장택동]‘기계적인 자료수집만 한다’는 법무부 인사검증단
- 바이든 “이란에 ‘조심하라’ 했다”… 확전 우려에 개입말라 경고
- 美 9월 CPI 3.7%↑… 시장 전망치 소폭 상회, 둔화세는 뚜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