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 메디컬 리포트]장기 대기는 길고 기증자는 줄고, 그 해법은 DCD
‘순환 정지 후 장기기증’이란 의미의 DCD는 뇌사 상태가 아닌 심장 정지 환자의 사망 이후 본인 또는 보호자의 사전 동의에 따라 장기를 적출할 수 있게 하는 개념이다. 순환 정지란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사망인 심장사를 의미한다. 따라서 DCD는 사망 후 장기기증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은 현재 장기기증법상 뇌사 장기기증(DBD)은 인정하고 있다. 뇌사란 심장은 뛰지만 뇌의 기능은 완전히 소실된 상태다. 뇌출혈이나 실족 사고, 물에 빠짐 등의 이유로 뇌사에 빠진 경우 본인이 생전에 동의했거나 가족이 동의하면 장기기증이 가능하다. 다만 현재 시스템에선 장기이식 대기자보다 뇌사자의 장기기증 사례가 극히 드물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KONOS)에 따르면 2023년 9월 기준 장기이식 대기자 수는 4만2276명으로 최근 10년 동안 매년 증가했다. 하지만 뇌사 기증자 수는 같은 해 9월 기준 378명으로 여전히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지난해 최저로 떨어졌다가 그나마 코로나19 상황의 호전, 뇌사 추정자 신고제 도입 등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2021년 기준 하루에 약 6.8명이 장기이식 대기 중 사망하고 있다. 수치로 따지면 연간 이식 대기 중 사망자는 2500여 명에 달한다. 외국에서는 DCD를 통해 장기를 확보해 이러한 문제에 대처하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DCD를 하면서 사망 후 기증된 장기들의 생존을 높이기 위해 기계관류장치(machine perfusion) 등을 활용하고 있다. 사망 후 장기기증에 동의하면 바로 수술장에서 기계로 적출된 장기에 인위적으로 혈액을 순환시켜 장기 손상을 최소화하고 장기 상태의 질을 높인다.
이를 통해 선진국에서는 기존 대비 2배의 장기를 확보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러한 DCD가 도입되면 장기를 2배 이상 확보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라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한 기증 희망자들을 대상으로 확대하면 연간 최대 1000명의 기증자까지 기대해볼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문제는 한국의 장기기증법이 DBD는 인정하고 있지만, 선진국들이 채택하고 있는 DCD에 대해서는 제한 또는 허용하는 문구 자체가 없어서 법적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국내 전문가들은 DCD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다. 장기기증은 해마다 줄고 있는데 장기이식 대기자는 해마다 급증하는 현 실태에 DCD가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어서다.
대한이식학회에서는 장기이식법에서 DCD를 제한하거나 허용하는 문구 자체가 없기 때문에 DCD를 허용해도 문제없다고 보고 있다. 학회 관계자는 “DCD 도입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DCD를 임상 현장에 적용하기 위해서 관련 기관들이 전향적으로 논의하고 이에 수반되는 재원 등을 위해 시범사업을 조속히 수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또 “기증자 예우뿐만 아니라 기계관류장치 및 관류액 등 비용에 대한 보전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DCD가 잘 정착하려면 해결해야 될 윤리적인 문제들도 있다. DCD를 통해 좋은 장기를 받기 위해서는 환자가 수술장에서 임종을 해야 된다. 이 경우 사망자의 정의도 재해석돼야 한다. 즉 가족은 수술실에 들어가기 직전 임종을 마무리해야 하는데 임종을 끝까지 지켜봐야 하는 우리나라 관습에선 쉽지 않아 보인다. 또 간이나 신장 기증이 우선시되는데 심장을 잘 살려내는 시스템을 먼저 효율화할 필요도 있다. 뇌사자 수에 비해 매년 심장 기증자 수는 절반에도 못 미치기 때문이다.
한 심장이식 전문가는 “뇌사자의 심장을 잘 살릴 수 있도록 심장 평가 시스템을 잘 만들면 현재보다 2배가량 심장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DCD의 도입을 위한 법안 제정이 더불어민주당 서영석 의원을 통해 마련되고 있다고 한다. DCD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는 만큼 다양한 목소리를 청취해서 준비해주길 바란다.
이진한 기자 lik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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