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중진의乙을위한변명] 본질을 헛갈리면

2023. 10. 12.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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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의 존망이 걸린 전쟁이 한창이었습니다.

전략적으로 아주 중요한 곳에 작은 다리가 하나 놓여 있었지요.

하지만 아군 입장에서는 적군의 그림자라도 비치면 당장 대규모 병력을 투입해서 지켜야 할 곳이었지요.

두 명의 정찰병을 다리에 배치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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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의 존망이 걸린 전쟁이 한창이었습니다. 전략적으로 아주 중요한 곳에 작은 다리가 하나 놓여 있었지요. 다행스럽게도 적군은 아직 거기까지 병력을 진군시키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아군 입장에서는 적군의 그림자라도 비치면 당장 대규모 병력을 투입해서 지켜야 할 곳이었지요.

지휘부는 고민 끝에 우선 정찰병을 투입하기로 했습니다. 두 명의 정찰병을 다리에 배치했지요.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상황 보고를 위해 한 명이 자리를 비우면 안전과 경계에 빈틈이 생긴다는 것이었지요. 지휘부에서는 통신병을 한 명 추가로 파견했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생겼습니다. 매끼 정찰초소까지 식사를 보급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이었죠. 이번에는 취사병을 한 명 파견했습니다. 취사병이 오고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취사병이 조리를 하는 건 가능한데, 재료와 장비를 보급받아 오기는 어려웠기 때문이죠. 그래서 보급병도 한 명 파견하게 되었습니다. 인원이 늘어나다 보니 행정병도 한 명, 의무병도 한 명 오게 되었고, 급기야 분대장이 파견되었습니다. 나중에는 소대장까지 파견되는 상황이 되었지요.

그런데 소대장이 보니 너무나 비효율적이었습니다. 고민 끝에 소대장은 인원을 줄이기로 했습니다. 살펴보니 다른 병사들은 모두 주특기가 있는데, 처음에 파견된 두 명만 없었습니다. 결국 정찰병 두 명에게 복귀명령을 내렸지요.

우스갯소리지만 우리 사회에 종종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특히 기업이나 조직의 규모가 커지다 보면 현장 조직은 줄이고, 관리 조직만 늘리는 현상을 제법 자주 접하지요. ‘해답은 현장에 있다’고 하면서 구호 소리만 난무하는 것입니다. 현장 근로자는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을(乙)입니다. 직업의 귀천이나 지위의 고하를 떠나 항상 생명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이런 분들을 보호하기 위해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었습니다. 그런데 법 시행 이후 현장의 안전에 드는 비용이나 인원을 빼내어 관리 조직에 투입하는 사례가 있다는 얘기가 종종 들립니다.

이쯤 되면 뭐가 본질인지 헛갈려도 단단히 헛갈리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처음부터 설계나 대책이 잘못되었던 것일 수도 있지요. 그렇다면, 신속한 재설계나 수정이 필요한 건 아닐까요.

양중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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