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갈릴레이를 만든 건 ‘후원’…한국은 노벨상이 개천에서 나온다 여기는가[전문가의 세계 - 이종필의 과학자의 발상법]

기자 2023. 10. 12.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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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노벨상 타령과 R&D 예산 삭감

“전하의 내면에는 절로 고귀한 이 모든 품성이 깃들어 있습니다. 감히 말씀드리건대, 모든 선의 원천인 창조주를 본받아 더없이 자애로운 주피터의 별(목성)에서 이 모든 품성이 유래했음을 모르는 자 누가 있겠습니까? 전하가 탄생하셨을 때, 지평선의 어두운 안개를 뚫고 중천으로 솟아올라 왕실의 동편을 비춘 별이 바로 목성이었습니다.” 다소 낯 뜨거운 이 헌사를 쓴 사람은 근대과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갈릴레오 갈릴레이이다(<갈릴레오가 들려주는 별 이야기 - 시데레우스 눈치우스>에서 옮김). 여기서 ‘전하’는 토스카나 지역의 실력자인 메디치 가문의 코시모 2세였다. 이 헌사가 실린 <시데레우스 눈치우스>는 1610년 3월에 출판된 책으로, 갈릴레이가 망원경으로 달과 은하수 등을 관찰한 결과를 싣고 있다. 특히 목성의 위성 중 4개를 처음으로 관측해 여기에 ‘메디치의 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갈릴레이가 이렇게 메디치 가문에 공을 들인 이유는 메디치 가문의 후원을 받기 위해서였다. 그 노력은 헛되지 않아 갈릴레이는 토스카나 대공의 궁정 수학자 겸 자연철학자로 임명되었다. 메디치 가문은 이미 한 세기 전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가들을 지원한 전례가 있었다. 당시 갈릴레이는 파도바대학에서 수학교수로 재직 중이었으나 <시데레우스 눈치우스> 이후에는 누구를 가르치기 위한 수업을 하지 않고 오직 연구와 저술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메디치 가문의 후원은 갈릴레이에게 큰 힘이 되었다. 로마 시내의 명소인 스페인 계단 위쪽에는 스파냐 지하철역이 있고 거기서 북북서 방향으로 길을 따라 200여m 가면 메디치 저택(Villa Medici)이 있다. 메디치 가문의 소유였던 이 저택은 갈릴레이가 로마를 방문할 때 머물기도 했으며, 1633년 그 유명한 종교재판의 결과로 가택 연금되었던 곳도 바로 메디치 저택이었다.

갈릴레이의 경우뿐만 아니라 근대과학이 태동하고 성장하는 데는 개인의 후원이 큰 역할을 했다. 과학이나 과학자라는 말 자체가 없던 시절이니 당연하기도 했다. 현대과학에서도 개인의 후원이 없지 않으나 과학 활동을 기본적으로 ‘후원’하는 주체는 국가로 바뀌었다. 예나 지금이나 과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그 행위 자체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을뿐더러 연구 자체를 계속 진행하기도 어렵다. 17세기의 갈릴레이가 망원경으로 달을 보고 목성의 위성을 찾는다고 해서 직접 돈이 되지는 않는다. 21세기의 과학자들은 지구에서 머나먼 우주공간에 망원경을 띄워 갈릴레이의 과업을 이어가고 있다.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에는 지금까지 대략 10조원의 자금이 투입되었다. 개개의 과학자가 감당할 수 있는 액수가 아니다. 불행히도 20세기 이후에는 이른바 빅 사이언스(big science)가 등장해 과학 활동에 필요한 자금과 인력이 천문학적으로 커지는 경향이 있다. 국가의 역할, 또는 국가들 사이의 국제적 협력이 그만큼 더 필요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한국전쟁 이후 잿더미 속에서 70년 사이에 급속하게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 중에는 국가 주도의 과학기술 지원정책이 있었다. 이런 경향은 그 세월 동안 군사독재정권이든 보수정권이든 진보정권이든 대체로 일관적이었다는 점이 무척 흥미롭다.

관련 통계가 남아 있는 1964년 이후 지금까지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이 줄어든 때는 1991년(전년 대비 -10.5%)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었다. 놀랍게도 IMF 국가부도 사태 때에도 연구·개발 예산은 줄어들지 않았다. 1964~2022년 정부의 연구·개발 예산 증가율은 연평균 18%로, 같은 기간 동안 정부 예산 증가율 15.7%보다 높다(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2022).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0년 저명한 과학학술지 네이처는 전 세계 연구기관을 평가하는 ‘네이처 인덱스’에서 27년 만에 한국 특집판을 발간했다. 코로나19 초기에 한국이 진단키트 등으로 신속하게 대응해 인상적인 성과를 낸 것이 한 동기로 작용한 것 같다. 여기서 네이처는 한국이 블룸버그 2020년 혁신지표에서 독일 다음으로 2위를 차지한 사실을 언급하며,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나라들 중 하나가 된 이유로 고도로 집중화된 연구·개발비를 꼽았다. ‘네이처 인덱스’가 소개한 2018년 자료에 따르면 그해 한국의 연구·개발 예산 비율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4.5%로 이스라엘(4.9%) 다음으로 높은 세계 2위였다. 이 수치는 2021년에도 비슷하게 이어져 당해 연구·개발비 총액은 102조1000억여원 수준으로 세계 5위, GDP 대비 비중은 4.96%로 세계 2위에 해당했다. 이 수치는 전년 대비 0.15%포인트가 증가한 결과였다(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브리프51).

이런 까닭에 내년도 정부의 연구·개발 예산이 25조9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무려 16.6%(5조2000억원)나 줄어든 것은 충격적인 사실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이 액수는 정부 총지출(656조9000억원)의 3.94%로, 이 비율이 3%대인 것은 2005년 이후 처음이다. 반면 정부 총지출은 전년 대비 2.8% 증가했다. 최근 10년 중 정부 총지출 대비 연구·개발비가 최저였던 것은 2019년의 4.4%였으며, 최근 3년 동안은 계속 4.9%대를 유지해왔다. 내년 예산에서 다른 어떤 항목보다 연구·개발비만 유독 두드러지게, 그리고 ‘전례 없이’ 삭감되었다. 3년 전 한국을 칭찬했던 네이처는 며칠 전 윤석열 정부의 연구·개발 예산 삭감을 우려하는 기사를 실었다.

당장 내 주변 곳곳에서도 곡소리가 들려온다. 대학이든 연구소든 일단 크고 작은 국내외 학술대회부터 대폭 줄이고 있다. 대학 연구실이 원활하게 운영되려면 대학원생을 안정적으로 뽑아야 하는데, 이들의 인건비를 충당할 길이 막히게 생겼다. 국가과학기술연구원 산하 25개 정부출연연구원에서는 주요 사업비가 평균 25.2% 삭감되었다. 주요 사업비는 연구 활동과 직결되는 돈이다. 벌써부터 그 여파로 25개 출연연에서 약 1200명을 감원해야 한다는 추정도 나오고 있다. 국내 30여개의 기초연구 관련 학회 및 협의회 연합체인 기초연구연합회는 성명을 내고 강력하게 반발했다. 특히 1억원 미만의 소액 연구과제 신규 지원이 중단되는 데 크게 우려했다. 우수연구자에 대한 지원을 늘리기 위해서라는데, 이는 풀뿌리 연구의 다양성을 위축시키고 연구 생태계 자체를 파괴하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연구·개발 예산을 대폭 삭감한 결과도 충격적이지만, 그 과정 자체는 더욱 납득하기 어렵다. 올 3월만 하더라도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제1차 국가 연구·개발 중장기 투자전략’을 발표하면서 2030년 과학기술 5대 강국 진입이라는 야심찬 계획을 내놓았다. 이에 따르면 연구·개발 예산을 정부 총지출의 5% 수준으로 유지하며 연구·개발에만 5년 동안 170조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이는 연평균 34조원으로 내년 예산액 25조9000억원과는 차이가 아주 크다. 그로부터 석 달여가 지난 6월 말 국가재정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나눠먹기식, 갈라먹기식 연구·개발은 제로베이스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과학계 카르텔’이라는 말도 곳곳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정말로 과학계의 카르텔이 연구·개발비를 서로서로 나눠먹고 갈라먹어서 문제가 크다면, 그 실태부터 자세하게 파악해 (필요하다면 대규모 압수수색을 해서라도) 공개하고, 그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과학계와 함께 모색하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그 결과 예산 삭감이 불가피했다면 현장을 설득하고 양해를 구하는 모습도 당연히 있어야 했다. 적어도 내가 이해하는 민주주의는 그렇게 작동한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 갑자기 사라진 단어 중에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말이 있다. 나는 역사를 잘 모른다만, 왕조시대의 제왕들조차 (극히 일부의 폭군을 제외하고는) 이런 식으로 국정을 운영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사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연구·개발 비중이 GDP 대비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는 하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개선할 점이 많았다. 앞서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의 ‘브리프51’에 따르면 2021년 기준으로 연구·개발비 중에서 재원별로 따졌을 때 정부와 공공이 차지하는 비중은 23.6%로 프랑스의 35.2%(2019년), 영국의 31.9%(2019년), 독일의 30.1%(2020년)보다 낮다. 연구수행 주체별로 따져봤을 때는 대학의 비중이 9.1%로 영국의 23.5%, 프랑스의 20.2%, 독일의 18.7%는 물론, 11%대인 미국과 일본보다도 낮다. 또한 연구·개발 단계별로 따졌을 때 기초 연구·개발비가 14.8%로 프랑스의 22.7%, 영국의 18.3%보다 낮다. 반면 개발·연구비는 64.2%로 압도적으로 높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지금까지 우리의 연구·개발은 민간기업 중심으로 상품화와 직결되는 최종 연구 단계에 집중돼 있었다.

물론 이런 형태의 연구·개발 포트폴리오는 우리가 아주 짧은 시간 안에 개발도상국을 거쳐 중진국의 함정을 건너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데 큰 효과를 발휘했을 것이다. 즉,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일 때에 적절한 구성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이제는 시대가 변했다. 누구나 인정하듯이 선도자(first mover)의 모습으로 혁신하지 않으면 한 걸음 더 나아가기도 쉽지 않은 위치에 이르렀다. 선도자에게 필요한 포트폴리오는 상품화와 직결되지 않더라도 범용적으로 플랫폼 역할을 하는 기초 연구·개발 비중을 높이는 것이다.

간단한 예를 들자면, 요즘 화제인 이미지 생성 인공지능 알고리즘의 출발점은 물리학의 확산모형이다. 최근에는 전기를 띤 입자의 분포와 거기서 비롯되는 전기장을 이용한 알고리즘으로 성능이 10배 이상 향상되었다는 보고도 있다. 최첨단 인공지능의 시대를 끌고 가는 원동력 중 하나가 고색창연한 물리학이라는 점은 우리가 깊이 고민해봐야 한다. 정부의 연구·개발 예산이 늘어나고 있던 시절에도 대학에서는 물리학을 포함한 기초과학이 무너지고 있었다. 한국물리학회에 따르면 국내 대학의 물리학과 수는 50여개로, 200여개 4년제 대학 중 25% 정도에 불과하다.

올해도 10월이 되니 어김없이 ‘노벨상 타령’이 등장했다. 무너지는 기초과학을 살리기는커녕 전체 과학기술계를 수렁으로 밀어넣는 내년도 예산안을 생각한다면, 해마다 반복되는 그놈의 ‘노벨상 타령’은 얼마나 한가하고도 탐욕스러운 투정인가.

이종필 교수



197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1990년 서울대 물리학과에 입학했으며 2001년 입자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연세대·고등과학원 등에서 연구원으로, 고려대에서 연구교수로 재직했다. 2016년부터 건국대 상허교양대학에서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신의 입자를 찾아서> <대통령을 위한 과학 에세이> <물리학 클래식>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 <빛의 속도로 이해하는 상대성이론> 등이 있고, <최종이론의 꿈> <블랙홀 전쟁> <물리의 정석> <스티븐 호킹의 블랙홀> 등을 우리글로 옮겼다.

이종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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