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개인 탓으로 돌리는 사회, 청년 정신질환 부추겨”

윤기은 기자 2023. 10. 12.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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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장애인 인권증진 당사자 대회
질환 당사자·가족 모여 정책 논의
발병 원인이 된 사회적 문제 조명
“입원·약물 의존 치료는 재발 높아
일자리·문화예술 연계할 필요”
12일 남쪽바다 합창단이 서울 중구 서울시 시민청 제4회 정신장애인 인권증진 당사자 대회에서 축하 공연을 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제공

“마음에 여유를 가지려면 목표를 높게 잡을 필요 없을 것 같아요. 스파게티 맛있게 드시고 행복하세요.”

“청년이 제대로 된 정신질환 예방법이나 대응법을 배우지 못하는데 발표자께서 관련 정책을 제안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국가인권위원회와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 등 6개 기관·단체 주관으로 12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시민청에서 열린 제4회 정신장애인 인권증진 당사자 대회. 정책 제안 발표가 끝나자 청중은 그 자리에서 활발하게 의견을 내놓기 시작했다. 이날 대회에서는 정신질환 당사자와 가족 등이 모여 각자의 경험담을 털어놓고 어떤 제도적 변화가 필요한지 등을 논의했다. 이들은 우울증 등 정신장애의 원인이 ‘각자도생’을 강요하는 사회적 기류와 깊이 연관돼 있으며, 질환자의 치료는 사회복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도현 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 동료지원가는 자신이 정신건강의학과 병원에 입원하는 과정에서 자기결정권이 박탈된 채 생활했다고 토로했다. 이 지원가는 “6년 전, 폐쇄병동에 입원하기 전 병원 관계자에게 입원 이유를 묻자 ‘가시면 안다’며 끈을 묶으려는 제스처를 해 ‘그냥 따라가야겠다’ 생각했다”며 “병원에 도착해서는 진단명을 듣지 못했고, 무슨 약인지도 모르고 줄 서서 먹고 입안 검사까지 받았다. 병원 안에는 지식을 쌓을 책이 없었고, 운동기구가 없었다”고 회상했다.

이 지원가는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첫 직장으로 카페 일자리를 구했지만 8시간 내내 일하기는 어려웠다”며 “같은 처지의 당사자를 상담하는 장애인 단체 파도손에서 일하게 되면서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게 됐고, 증상관리가 가능해졌다. 일자리 연계 치료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발표에 나선 이한결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 본부장은 병원 입원과 약물치료에만 의존하고 있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의료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이 본부장은 “서현역 흉기난동 사건같이 범행 동기가 뚜렷하지 않은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 우리 사회는 경찰 총기 무장이나 정신질환자 조기 약물치료 등을 해결책으로 주로 내세웠다”면서 “하지만 약물치료자가 비약물치료자보다 회복률이 높을지라도, 동시에 재발률도 더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신과 안에서는 일자리, 문화예술 활동 등 다양한 서비스도 함께 이뤄져야 하며, 의사와 사회복지사가 팀으로 움직이며 정신약물을 단계적으로 줄이도록 지원하는 해외 사례도 있다”고 했다.

정신장애·은둔 청년 당사자 모임 ‘펭귄의 날갯짓’의 이광호 사무국장은 이날 발표에서 ‘누칼협’(누가 칼 들고 협박했냐), ‘알빠노’(내가 알 바 아니다), ‘꼬이직’(아니꼬우면 이직하든가) 등 밈(meme·인터넷에서 모방 형태로 전파되는 문화 요소 및 유행) 표현에 빗대 여러 문제를 ‘개인 탓’으로 돌리는 사회 분위기가 청년들에게 정신질환을 부추기고 있다고 했다.

이 사무국장은 “이러한 밈이 사회적 문제 제기 가능성을 원천 봉쇄하고, 타인의 고통에 대한 무관심과 사회적 연대 무력화 등을 부추긴다”며 “청년들은 생존주의를 기반으로 한 경쟁사회에서 살아가며 우울, 불안, 화병과 같은 정신건강 문제를 지속적으로 갖게 된다”고 말했다.

이 사무국장은 한국 사회가 능력주의, 획일적인 교육 시스템, 취업시장 양극화 등이 심화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집회를 연 공무원노조 활동 청년들이 담긴 사진에 대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철밥통아, 그럼 민간기업 들어가든지” “월급 다 알고 지들이 공무원 지원한 거 아니야?”라는 댓글이 달리고, ‘좋아요’ 수가 수천개에 이른 사례를 들었다.

그는 “개인과 집단이 예측할 수 있고 호의적인 행동을 할 것이라는 심리적 상태인 ‘사회 신뢰’를 쌓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윤기은 기자 energy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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