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개인 탓으로 돌리는 사회, 청년 정신질환 부추겨”
질환 당사자·가족 모여 정책 논의
발병 원인이 된 사회적 문제 조명
“입원·약물 의존 치료는 재발 높아
일자리·문화예술 연계할 필요”
“마음에 여유를 가지려면 목표를 높게 잡을 필요 없을 것 같아요. 스파게티 맛있게 드시고 행복하세요.”
“청년이 제대로 된 정신질환 예방법이나 대응법을 배우지 못하는데 발표자께서 관련 정책을 제안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국가인권위원회와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 등 6개 기관·단체 주관으로 12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시민청에서 열린 제4회 정신장애인 인권증진 당사자 대회. 정책 제안 발표가 끝나자 청중은 그 자리에서 활발하게 의견을 내놓기 시작했다. 이날 대회에서는 정신질환 당사자와 가족 등이 모여 각자의 경험담을 털어놓고 어떤 제도적 변화가 필요한지 등을 논의했다. 이들은 우울증 등 정신장애의 원인이 ‘각자도생’을 강요하는 사회적 기류와 깊이 연관돼 있으며, 질환자의 치료는 사회복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도현 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 동료지원가는 자신이 정신건강의학과 병원에 입원하는 과정에서 자기결정권이 박탈된 채 생활했다고 토로했다. 이 지원가는 “6년 전, 폐쇄병동에 입원하기 전 병원 관계자에게 입원 이유를 묻자 ‘가시면 안다’며 끈을 묶으려는 제스처를 해 ‘그냥 따라가야겠다’ 생각했다”며 “병원에 도착해서는 진단명을 듣지 못했고, 무슨 약인지도 모르고 줄 서서 먹고 입안 검사까지 받았다. 병원 안에는 지식을 쌓을 책이 없었고, 운동기구가 없었다”고 회상했다.
이 지원가는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첫 직장으로 카페 일자리를 구했지만 8시간 내내 일하기는 어려웠다”며 “같은 처지의 당사자를 상담하는 장애인 단체 파도손에서 일하게 되면서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게 됐고, 증상관리가 가능해졌다. 일자리 연계 치료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발표에 나선 이한결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 본부장은 병원 입원과 약물치료에만 의존하고 있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의료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이 본부장은 “서현역 흉기난동 사건같이 범행 동기가 뚜렷하지 않은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 우리 사회는 경찰 총기 무장이나 정신질환자 조기 약물치료 등을 해결책으로 주로 내세웠다”면서 “하지만 약물치료자가 비약물치료자보다 회복률이 높을지라도, 동시에 재발률도 더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신과 안에서는 일자리, 문화예술 활동 등 다양한 서비스도 함께 이뤄져야 하며, 의사와 사회복지사가 팀으로 움직이며 정신약물을 단계적으로 줄이도록 지원하는 해외 사례도 있다”고 했다.
정신장애·은둔 청년 당사자 모임 ‘펭귄의 날갯짓’의 이광호 사무국장은 이날 발표에서 ‘누칼협’(누가 칼 들고 협박했냐), ‘알빠노’(내가 알 바 아니다), ‘꼬이직’(아니꼬우면 이직하든가) 등 밈(meme·인터넷에서 모방 형태로 전파되는 문화 요소 및 유행) 표현에 빗대 여러 문제를 ‘개인 탓’으로 돌리는 사회 분위기가 청년들에게 정신질환을 부추기고 있다고 했다.
이 사무국장은 “이러한 밈이 사회적 문제 제기 가능성을 원천 봉쇄하고, 타인의 고통에 대한 무관심과 사회적 연대 무력화 등을 부추긴다”며 “청년들은 생존주의를 기반으로 한 경쟁사회에서 살아가며 우울, 불안, 화병과 같은 정신건강 문제를 지속적으로 갖게 된다”고 말했다.
이 사무국장은 한국 사회가 능력주의, 획일적인 교육 시스템, 취업시장 양극화 등이 심화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집회를 연 공무원노조 활동 청년들이 담긴 사진에 대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철밥통아, 그럼 민간기업 들어가든지” “월급 다 알고 지들이 공무원 지원한 거 아니야?”라는 댓글이 달리고, ‘좋아요’ 수가 수천개에 이른 사례를 들었다.
그는 “개인과 집단이 예측할 수 있고 호의적인 행동을 할 것이라는 심리적 상태인 ‘사회 신뢰’를 쌓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윤기은 기자 energy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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