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표의 근대를 건너는 법] 소록도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집

기자 2023. 10. 12.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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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록도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집’에 걸려 있는 마가렛의 사진.

“두 분은 새벽 5시쯤 병원 아동실에 도착하여 우유를 만들 물을 끓였습니다. 따뜻한 우유를 만들어 새벽마다 병실 어르신들에게 직접 가져다 드렸습니다. … 부락에서 찾아온 어르신들에게 우유를 드리며 람프렌과 주치약 투약을 했습니다. … 영양이 부족한 듯 보이면 종교 구분 없이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치유될 때까지 한 끼 먹을 분량을 냄비에 따뜻하게 가져와 직접 주거나 먹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의 행동을 취재하는 기자들은 절대로 만나지 않았고 철저히 숨었습니다.”(사단법인 ‘마리안느와 마가렛’ 홈페이지)

1962년부터 2005년까지 소록도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돌봤던 벽안(碧眼)의 두 간호사, 마리안느 스퇴거와 마가렛 피사렉. 40여년간 그들의 하루 일과는 이렇게 한결같았다. 20대의 한창 나이에 오스트리아를 떠나 낯설고 가난한 이역 땅에서 봉사로 일관했던 그들의 삶. 늘 따스하고 아름다웠지만 2005년 편지 한 통만 남기고 고국으로 돌아간 모습은 더욱 감동적이었다.

그 후 우리 사회는 두 간호사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감사를 표했다. 사단법인을 설립했고 전기를 출간했으며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었다. 2017년 마리안느와 마가렛을 노벨 평화상 후보로 추천하기 위한 캠페인을 전개하기도 했다. 2016년 잠깐 한국을 다시 찾았던 마리안느는 기자간담회에서 “우리가 한 일은 지극히 사소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지난달 마가렛의 부음이 날아들었다.

전남 고흥반도 끝자락 녹동항 건너편의 소록도. 일제강점기 때인 1916년 한센병 환자들을 강제로 격리 수용하면서 이곳에서는 이들에 대한 비인간적인 차별과 탄압이 자행되었다. 일제는 수용된 환자들에게 감금, 폭행, 불법 노동(전시동원 차원의 노동), 단종(斷種) 수술 등 반인권적인 차별을 자행했다. 광복 이후에도 여건은 나아지지 않았고 1970년대까지 차별과 배제가 이어졌다. 격리의 땅, 고립의 섬이었던 소록도는 1980년대 들어 조금씩 변화했다. 섬이 일반에 개방되면서 한센병과 소록도에 대한 우리 사회의 그릇된 인식이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소록도 곳곳엔 한센병 환자들의 고통의 흔적이 남아 있다. 옛 소록도갱생원 시절의 검시실, 감금실, 납골당 건물인 만령당 등을 둘러보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 무거움 속에서도 마음을 환하게 밝혀주는 곳이 있다. 소록도 초입에 있는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집’(국가등록문화재)이다.

몇년 전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집을 찾은 적이 있었다. 일제강점기 때 지은 아담한 건물로, 서양식과 일본식 절충형 가옥이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좁은 복도가 있고 좌우로 거실과 침실, 주방 등이 있다. 책상, 의자, 소파, 침대, 냉장고, 가스레인지, 싱크대 등 그들이 사용했던 물건들이 지금도 가지런히 놓여 있다. 복도마루 한쪽에는 호롱불이 놓여 있고 방에는 사랑, 無(무), 下心(하심), 愛德(애덕)과 같은 글씨가 성모상, 묵주와 함께 걸려 있다. 한쪽 벽엔 오래된 카세트테이프 200여개가 반듯하게 꽂혀 있다. 헝가리 광시곡과 아베마리아, 오페라 서곡모음, 스크린 뮤직과 플라시도 도밍고, 라스트 악단, 전래놀이 노래와 가수 홍민 등. 그들이 모았던 조약돌과 조개와 소라 껍데기도 보인다. 집 안 곳곳은 그들의 삶처럼 정갈하고 담백하다.

마가렛이 세상을 떠났고, 사람들은 마리안느와 마가렛을 어떻게 무엇으로 기억하고 있을까. 저마다 방식이 다르겠지만,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집은 그들을 기억함에 있어 매우 중요한 공간이 아닐 수 없다. 그곳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벽에 걸린 ‘하심’이란 두 글자다. 마음을 내려놓은 그들의 겸손함을 느낄 수 있다. 텅 빈 충만이라고 할까. 이곳에 가면 밝게 웃는 마가렛의 얼굴 사진도 만날 수 있다.

이광표 서원대 교수

이광표 서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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