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과연 정권 심판 선거였을까?

기자 2023. 10. 12. 20:2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득표율만 놓고 보면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이다. 서울에서 한 정당이 17%포인트 이상의 차이로 구청장 선거를 이긴다는 것은 좀체 일어나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야당에선 정권심판론이 통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선거를 이긴 쪽이 정치적 기세를 잡기 위해 그런 이야기를 할 수는 있다. 내부적으로 단합을 강화하고 상대를 당황시키기 위해서다. 그런데 실제로도 이런 평가가 옳을까?

민주당에는 아쉽겠지만,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만으로 ‘정권이 심판당했다’는 평가를 내리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두 가지 점에서 그렇다. 강서구라는 선거구의 특성과 이번 선거의 국면적 특성이다. 강서구는 전통적으로 민주당이 선전한 지역이다. 현재 강서구의 3명 국회의원도 모두 민주당이다. 지난 대선 때도 이재명 후보가 49.1%를 득표해 46.9%에 그친 윤석열 후보를 이겼다. 여당이 압승한 지난 지방선거에서도 김태우 후보는 51.3%를 득표해서 48.7%를 얻은 민주당 김승현 후보를 간신히 이겼다.

이런 지역의 특성에 더해 이번 선거에서는 국면적 요인이 더 큰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가장 큰 것은 보궐선거의 원인제공자인 김태우 후보를 재공천한 것이다. 지난 5월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아 구청장직을 상실한 사람을, 8월에 대통령이 특별사면하고, 10월에 있는 보궐선거에 다시 출마시키는 일이 과연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이었을까. 여기에 ‘보궐선거 비용 40억원은 애교로 봐달라’는 말은 불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었다.

이번 보궐선거의 특성도 한몫했다. 단체장급 이상 보궐선거 지역이 강서구 한 곳밖에 없었기 때문에 구청장 선거가 마치 대선처럼 치러졌다. 단 한 곳인데 여의도 국회에서 가까우니 하루에도 수십명의 국회의원이 지역을 누볐다. 후보자들에 대한 검증도 자세할 수밖에 없었다. 평소 동시 지방선거에서는 유권자들이 후보에 대해 잘 알기가 어려워 정당을 보고 줄투표를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모든 정당과 언론이 두 후보자에게만 집중했으니 인물 검증에서 비교가 안 될 수 없었다. 경찰 대 검찰이라는 구도도 민주당의 의도대로 짜였고, 선거기간 중에 나온 김태우 후보의 강서구 월세 거주 사실은 판을 크게 기울게 했다. 국민의힘 입장에선 선거에서 발생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악조건이 더해졌고, 민주당 입장에선 진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17.15%포인트 차이는 그 이상의 정치적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럴 수 있다. 투표율이 민심을 반영할 만큼 높았을 때다. 이번 보궐선거의 투표율은 48.7%였다. 다른 보궐선거에 비하면 높아 보이지만, ‘대선처럼’ 치러진 이번 선거의 특성을 생각하면 절반 이상의 유권자가 투표를 포기했다는 점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

한 지역의 선거에 단순화해 적용할 수는 없겠지만, 투표율과 득표율의 해석에 적용해볼 만한 유권자 분석 자료가 있다. 지난해 민주당의 대선평가에 해당했던 ‘새로고침위원회’의 조사 결과다. 이 조사에서 보수의 잠재적 지지층은 전체 유권자에서 50% 정도였고, 크게 3개 집단으로 구분된다. 윤석열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인 ‘자유보수주의’ 그룹이 20%를, 박세일 교수가 따뜻한 보수라고 불렀던 ‘온건보수’ 그룹이 20%를, 이준석 지지층으로 분류 가능한 ‘포퓰리스트’ 그룹이 10% 정도였다. 이번 김태우 후보자의 득표수(9만5492표)를 전체 유권자 수(50만명)에 대비해 보면 20% 정도 된다. 윤석열 정부의 핵심 지지층을 제외하고는 투표장에 나온 보수 유권자가 많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민주당은 큰 차이로 이겼으니 잠재 지지층 공략에 제대로 성공한 것일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지난해 조사에서 민주당의 잠재 지지층은 약 40%였다. 열혈지지층인 ‘개혁 우선’ 그룹이 5% 정도를 차지하고 있었고, 더 넓은 지지층인 ‘평등평화’ 그룹이 약 35%로 나타났다. ‘평등평화’ 그룹에서 무조건 투표장에 나오겠다는 응답자들은 절반 정도였다. 나머지 절반은 다른 당을 찍지는 않겠지만, 민주당이 하는 걸 보면서 투표장에 나올지를 결정할 사람들이었다. 이번에 진교훈 후보가 득표한 결과(13만7066표)를 보면, 전체 유권자의 27% 정도 된다. 민주당에 유리한 강서구의 특성을 감안하면 민주당 역시 핵심 지지층을 제외한 잠재 지지층이나 중도 유권자를 투표장까지 끌어내는 데 실패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 상황에서 실제로 정권심판론이 통했다고 믿게 되면, 민주당이 총선에서 이길 가능성은 점점 낮아질 것이다. 지난 11일 4개 여론조사기관의 공동 전국지표조사 결과 정당 지지도는 국민의힘 31%, 민주당 29%였다.

이관후 정치학자

이관후 정치학자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