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릿하게, 은은하게… ‘인간’을 그리다

김신성 2023. 10. 12.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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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회화 작가의 삶을 시작한 이후 줄곧 사람의 내면에 관심을 두고 내재된 감정을 표현해왔습니다. 작업 초반에는 주로 여성들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꿈을 포기하거나 절망하고, 다시 시작하기를 반복하던 그들의 안쓰러운 뒷모습을 담아내려 애썼습니다. 그것은 곧 저 자신의 모습이었으니까요."

작가 허승희는 캔버스에 물감을 두껍게 바른 뒤 다른 색 물감을 올리고, 말려 긁어내거나 씻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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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승희 개인전
28일까지 서울서 진행
22점 작품 관객 맞이
그림 속 인물 화면 일부
배경과 어울려 있어
익명성·모호성이 특징
어두움 뒤 희망의 색
‘나’에게 건네는 위로

“저는 회화 작가의 삶을 시작한 이후 줄곧 사람의 내면에 관심을 두고 내재된 감정을 표현해왔습니다. 작업 초반에는 주로 여성들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꿈을 포기하거나 절망하고, 다시 시작하기를 반복하던 그들의 안쓰러운 뒷모습을 담아내려 애썼습니다. 그것은 곧 저 자신의 모습이었으니까요.”

작가 허승희는 캔버스에 물감을 두껍게 바른 뒤 다른 색 물감을 올리고, 말려 긁어내거나 씻어낸다. 다시 덧바르는 반복을 거쳐,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형태와 색을 도출해낸다.
‘작고 소중한 새’(145㎝×112㎝, 2023)
그의 그림 속 인물들은 대개 화면의 중심을 당당히 차지하고 관객을 응시하는 여느 인물화와는 사뭇 다르다. 주인공이 아니라 화면의 일부인 양, 흐릿한 실루엣으로 주변에 수줍게 자리한다. 뒤돌아 서 있거나 옆모습만 조심스레 보여줄 뿐이다. 그것도 희뿌연 안갯속에서.
캔버스 물감층 밑에 가라앉아 있던 인물이 아주 은은하게 화면으로 떠오르기 때문에, 어떤 그림에서는 얼핏 인물이 있다는 것조차도 금방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다. 허승희의 인물은 마치 동양화에서처럼 배경의 여백과 경계를 나누지 않고, 함께 어울려 있다. 이때 인물이 지닌 특징은 철저한 익명성과 모호성이다. 남성도 여성도 아니고, 젊은이도 늙은이도 아닌, 단지 인간일 뿐이다.
‘남겨진 슬픔’(61㎝×73㎝, 2023)
공간 속에 정체불명의 한 줄기 선으로 표현된 자코메티의 인물상처럼 허승희의 인물도 화면 속에 침잠해 배경으로 숨어들려 하지만, 오히려 이러한 익명성이 인간의 실존을 더욱 극명하게 보여준다는 역설을 낳는다. 인간의 뒷모습은 거짓말을 하지도, 표정을 꾸미지도 않기 때문이다. 단순함에서 은은히 전해져 오는 소곤거림이 들린다. 작가 자신의 초상이다.
1972년생 허승희는 글을 제법 썼지만 글로써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그림으로 드러내 보이다, ‘표현의 즐거움’을 느끼고 회화 작가가 되었다. 그는 주로 풍경이나 사람의 뒷모습, 옆모습을 그리는데, 인물이라는 메인보다 바탕에 최선을 다해야 더욱 만족스러운 작품이 완성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허승희의 작품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수많은 감정이 올라온다. 쓸쓸하고 소외된 느낌이, 또는 허무하고 좌절했던 순간들이. 그러나 작가는 그림 속 ‘나’에게 위로를 건넨다. 배경의 어두운 색 뒤에는 희망의 색들이 깔려있다. 담담히 지나가는 시간의 흐름을 배치해 놓았다.
‘mountain’(마운틴)(53㎝×45.5㎝, 2022)
그의 근작을 보면, 보다 냉정한 자세로 캔버스 앞에 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색 계열의 주조색을 메마르게, 채도를 떨어뜨려서 사용하고 있다. 화면의 구도는 정적이고, 질감은 부드러워졌으며, 형태 또한 단순하다. 바로크의 격정으로부터 고전주의 정제로 선회하고 있는 느낌이다. 성숙의 반증 또는 보다 그다워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최근 시야를 넓히면서 쓸쓸한 남성, 외로운 소년, 기다림을 지나는 소녀 … 다양한 인간이 지닌 다양한 감정의 결을 표현하고 있어요. 인간이 바라보는 자연에 시선을 두어 언젠가 아름답다고 느꼈던 ‘시간을 품은 나무’ ‘바람이 지나는 길’ ‘밤으로 넘어가는 바다의 밤 풍경’ 등 인물이 아닌, 자연의 순간들도 작품으로 나왔고요.”

28일까지 서울 강남구 청담동 청화랑에서 22점의 작품들이 관객들을 맞는다.

김신성 선임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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