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의 창] 선택은 국민이 한다
선거는 모든 걸 걸고 하는 도박게임 같다고들 한다. 영화 <타짜>에서 봤듯 현실도박의 세계에서 진 편은 여차하면 손목이라도 건다. 승패가 갈린다는 점에서 선거도 다를 게 없다. 패한 쪽은 고통스러운 수습 과정을 거쳐야 한다. 선거에 패한 지도부의 총사퇴는 뒷감당의 기본이다. 잘나가던 도박꾼이 한번의 패배로 몰락하듯, 선거 지휘에 실패해 중심에서 밀려난 주요 정치인들은 셀 수 없었다. 그게 게임의 룰이고 정치의 법칙이다.
말 많고 탈 많던 강서구청장 보궐선거가 끝났다. 국민의힘 김태우 후보의 기상천외한 재도전은 대패로 끝났다. 김 후보는 더불어민주당 진교훈 당선인에게 17.15%포인트 차이로 졌다. 일찌감치 표 차이가 크게 벌어지는 등 개표 과정은 싱거웠지만, 이번 선거의 정치적 의미는 어느 전국단위 선거 못지않게 풍부했다. 내년 4월 총선의 승부처인 수도권 선거의 전초전, 윤석열 정부 국정운영에 대한 평가라는 성격이 있었고, 민주당에 대한 민심도 엿볼 수 있었다. 선거 결과에서 보듯 국민들은 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에 대해 강력하게 경고했다. 민주당의 승리보다 여권의 패배가 도드라졌다.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은 선거 전부터 패배를 예견한 듯 “수많은 선거구 중 하나일 뿐”이라며 김을 빼려 했다. 그러나 누구도 예상 못할 참패를 묻어두기는 어려울 것이다. 내년 총선을 생각하며 잠 못 이룰 국민의힘 수도권 의원들의 모습이 선하다. 게다가 이번 선거는 윤 대통령이 깊이 개입했다.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에 대한 대법원 확정판결로 구청장직을 상실한 김 후보를 석 달 만에 사면하고, 공천까지 받도록 압력을 행사했다. 지역선거를 중앙선거로 격상시킨 당사자가 윤 대통령이다. 대통령 입김에 당도 등 떼밀렸다. 패배 시 리더십 위기를 우려해 무공천을 염두에 뒀던 김기현 대표는 지역에 상주했고, 여당 인사들은 장밋빛 개발 공약들을 내놓았다. 그래도 참패했으니, 여권 스스로 북 치고 장구 치고, 제풀에 쓰러진 꼴이다.
강서구 밖에서도 악재가 이어졌다. 윤 대통령은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렸다. 난데없는 이념전쟁을 벌였고,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임명 등을 통한 언론장악까지 시도했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과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임명 강행,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줄행랑 사태’ 등은 윤석열 정부의 인사난맥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대통령의 독선과 일방통행은 예외 없이 유권자의 응징을 초래했던 점을 고려하면 여당 참패는 윤 대통령이 자초했다고 봐야 한다. 초짜가 타짜라도 되는 양 막무가내로 패를 돌렸으니 결과가 어떻겠는가. 이번 선거의 진짜 패자는 윤 대통령이다.
국정동력 상실 등 선거 참패의 뒷감당을 하게 된 여권에는 이제 고통스러운 정산의 과정이 남아 있다. 윤 대통령부터 여당 지도부까지 잘잘못을 엄격히 따지고 반성하는 절차가 뒤따라야 한다. 김행 후보자가 선거 참패 다음날 사퇴했는데, 언 발에 오줌 누기다. 이 정도로 성난 민심이 누그러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김 대표 등 여당 지도부는 투표 당일 선거관리위원회의 조작설을 제기했는데, 책임을 뒤집어쓰지 않겠다는 몸부림으로 비칠 뿐이다.
무엇보다 참패의 중심에 있는 윤 대통령이 바뀌어야 한다. 그간 ‘대통령이 붕 떠 있다’ ‘민심을 모르는 것 같다’는 말이 여권 내부에서 조심스럽게 들려왔던 터다. 윤 대통령이 이번 선거를 계기로 현실을 깨닫길 바란다. 제왕적 눈높이에서 국민적 눈높이로 내려와야 한다. 지금껏 그래왔듯 패배 원인을 가짜뉴스나 전 정부 탓으로 돌리는 등 정신승리를 고집한다면 국민들은 완전히 등돌릴 것이다. 이번에 받은 옐로카드를 가볍게 여기면 내년 총선에서 레드카드를 받게 될 것이고, 윤석열 정부는 사실상의 식물정권으로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할 수도 있다.
민주당도 웃을 일이 아니다. 선거 승리는 민주당에 대한 지지가 아니라 윤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커다란 반감이 작용한 결과다. 이재명 대표가 구속영장 기각과 선거 승리로 분위기를 반전시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대표가 ‘방탄 단식’을 했으며, 불체포특권 포기 약속을 깼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이 대표는 “민주당의 승리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 말을 늘 새기길 바란다. 국민은 아직 민주당에 마음을 열지 않았다.
어쨌거나 이번 선거가 여야에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가르치려, 이기려 들지 말라. 선택은 국민이 한다.
이용욱 정치에디터 wood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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