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세상]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큰판’
퀴즈 하나. ‘대서양 비행, 경도계(經度計), 통조림의 공통점은?’ 대서양 횡단 하면 린드버그를 떠올리지만 엄밀히 말해 그는 67번째로 대서양 비행에 성공한 사람이다. 그가 영웅으로 떠오른 것은 대서양을 최초로 ‘무착륙 단독 횡단’했기 때문이다. 왜 이런 시도를 하게 됐을까. 바로 오티그상 때문이다.
1919년 미국 뉴욕 라파예트 호텔의 주인 레이먼드 오티그는 5년 내에 뉴욕에서 파리까지 ‘무착륙’ 대서양 횡단 비행을 하는 사람에게 2만5000달러를 주겠다고 선언했다. ‘오티그상’이라 불린 이 상의 상금은 현재 가치로 약 3억7000만원이다. 프랑스 공군의 영웅도 추락하고 항공탐험 전문가도 날아오르지 못했다. 우편 비행기 조종사 찰스 린드버그는 무명이었고, 위험을 감수할 동반자도 없었다. 3발기를 타는 경쟁자들과 달리 단발기여서 엔진 고장 즉시 추락하는 상황이었다. 무게를 줄이려고 생존용 낙하산마저 싣지 않았지만 마침내 미국 루스벨트 공항 이륙 후 33시간29분30초의 비행 끝에 프랑스 파리 르 부르제 공항에 착륙, 최초로 북미~유럽 대륙무착륙 비행을 이뤄냈다. 오티그상을 받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언론의 엄청난 반응에 힘입어 오늘날 약 3000억달러에 달하는 항공시장을 여는 단초가 됐다.
상금제도는 오티그가 발명한 것은 아니다. 린드버그 비행시점보다 300년 전인 1765년 항해는 선장의 ‘추측항법’으로 목숨 걸고 운행됐다. 당시 영국 의회는 정확하게 바다 길잡이가 되어줄 경도계를 공모, 2만파운드 상금의 ‘경도상’을 만들었다. 천문학자가 상금을 차지할 것이란 예상과 달리 독학으로 공부한 시계공 존 해리슨이 우승했다. 1795년 나폴레옹은 러시아 대장정 때 군용 음식 보존법을 발명하는 사람에게 1만2000달러의 상금을 내걸었다. 승자는 니콜라 아페르라는 프랑스 사탕 제조업자였는데, 이때의 통조림법은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퀴즈의 정답은 거액 상금을 건 ‘경연대회’다.
경연대회는 모래밭에서 바늘을 찾고 있을 때 바늘이 우리를 찾아오게 해준다. 제도권 밖에 있는 사람들이 핵심 플레이어가 되게도 해준다. 지난 300년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상금과 도전 과제와 마감시간이라는 제약이 있는 경연대회가 혁신의 원동력이라고 주장하는 이가 피터 디아만디스이다. 위의 사례들은 그의 역저 <볼드(Bold)>의 작은 부분들이다. 지금도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크고 대담한 기후문제를 해결하고자 그가 설립한 엑스프라이즈 재단에서 약 1400억원의 상금을 걸고 탄소감축 기술 경연대회를 개최 중이다. 그는 억만장자가 되고 싶으면 억만명의 문제를 해결하라고 했다. 80억 세계인구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온난화로 인한 기후위기이다.
어떤 논객은 ‘기후 문제가 긴박하게 돌아간다고 경고하는 기후 과학자들도 밤에는 평화로운 꿈을 꾸며 자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썼지만 동의하지 않는다. 엔진 하나짜리 비행기로 대서양을 넘었던 린드버그는 ‘모든 조건이 완벽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도전은 없다’고 했다. 디지털 강국이며 창의성 기발한 누리꾼 천국인 한국에서 기후대응 기술 경연대회가 정부든 기업이든 시민단체든 손잡고 큰판을 벌일 만도 한데 한밤중이다. 일어나라, 소심한 환경운동가도 이제 단잠 자고 싶다.
이미경 환경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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