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기록의 기억] (92) 진주성, 남강 유등축제

기자 2023. 10. 12.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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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강은 알고 있다, 살고자 했던 조선 병사들의 피눈물 젖은 마지막 유등과 비빔밥을
진주성 1971년. 셀수스협동조합 제공
진주성 2023년. 셀수스협동조합 제공

일본군이 뒤로 물러선다. 전국시대 오랜 내전 동안, 성(城)을 공격해서 뺏는 실전 경험이 풍부한 일본군이 진주성에서 조선군과 혈투를 벌이다가 공격을 멈춘다. 진주성은 천혜의 절벽요새다. 성 앞으로 남강이 흐르고 성 둘레에는 해자를 파서 물을 채워 넣었다. 대나무 다리를 만들어 야간에 남강을 건너던 일본군 기습을 간파한 김시민 장군이 명령을 내린다.

“유등을 띄워라.”

화약을 장착한 기름 등불인 유등(油燈)이 둥둥 떠다니며 남강을 환히 드러내자 조선군 화살이 불벼락처럼 쏟아진다. 일본군이 퇴각한다. 1592년 진주성 1차 전투, 진주대첩이다. 그러나 승리의 기쁨도 잠시뿐. 그 다음해 일본군이 다시 진주성으로 집결한다.

“진주성 내에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을 말살할 것, 그것이 사람이 아니라 짐승일지라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내린 진주성 2차 공격명령이다. ‘악귀’로 불린 가토 기요마사 등 일본 최고무장들이 이끄는 10만 병사가 진주성을 포위한다. 지원을 오기로 했던 권율, 곽재우 장군은 일본군 병력에 기겁해서 말머리를 돌린다.

제2차 진주성 전투. 일본군은 교대로 밤낮없이 공격하고 방어하는 조선군 병사 6000명은 쉴 틈이 없다. 일본군의 공격이 중단되면 그제야 조선군은 산 자와 죽은 자를 가른다. 죽지 않은 조선군 병사들은 유등에 편지를 넣어 남강에 띄운다. 자신이 살아있음을 성 밖 가족들에게 알리는 거다.

악전고투 9일째 되는 날, 폭우로 성벽 일부가 무너진다. ‘하늘도 돕지 않는 오늘’이 최후전투라는 걸 예감한다. 조선군 병사와 민간인들은 마지막 식사를 함께한다. 남아있는 밥, 나물들을 섞어서 비빈다. 성 안에 있던 소도 잡아 육회로 만들어 비벼진 밥 위에 얹는다. “소가 없으면 내년 농사는 어떻게 하지”라는 걱정의 눈물도 공포와 함께 씹어 삼킨다.

성문이 부서진다. 일본군이 들이닥친다. 조선왕이 나라를 버리고 도망친 땅에서 성을 지키던 조선군 병사들이 뒷걸음친다. 물러설 곳은 남아 있지 않다. 남강에 투신 자결하기도 한다. 진주성 망루에 일본군 깃발이 세워진 그날 밤, 남강에는 유등이 뜨지 못한다. 유등을 띄워 보낼 조선인이 없다. 일본군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했다. 성 안에 있던 조선인 6만명을 한 명도 남김없이 살육했다. 강낭콩보다 더 푸르다는 남강물결이 핏빛으로 변한다.

내리는 비에 강은 젖지 않는다. 이들이 흘린 피를 간직해줘야 하기에…. “잘 싸웠어. 이젠 편히 쉬어.” 남강은 어머니 손길처럼 죽은 자들의 영혼을 다독여준다.

예나 지금이나 진주성에서 남강이 한눈에 들어온다. 화려한 빛의 향연 유등축제와 ‘별미’라는 진주비빔밥은 살고자 했던 조선군 병사의 유등이고 마지막 한 끼다.

김형진 셀수스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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