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누칼협’
사회적으로 고립되면 마음이 병든다. 다른 사람에게 거부당했을 때의 고통과 신체적 고통을 뇌는 같은 부위에서 인식한다. 나홀로 생존이 어려운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타인과 유대관계를 맺도록 진화한 결과다. 외로운 사람은 우울증에 쉽게 빠지고,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가 높아져 각종 질병에도 취약해진다. 사회적 고립은 사망률을 결정짓는 가장 강력한 요인 중 하나라는 연구도 있다.
고립감이 극심해진 것은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가 지배적인 이데올로기가 되면서다. 2021년 저명한 영국 ‘사회심리학저널’에 국제연구진은 “신자유주의는 사회적 단절감, 경쟁, 외로움을 조장해 행복지수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개인 간 무한경쟁을 부추기는 ‘능력주의’와 불평등 속에서 사회 결속력과 신뢰는 낮아지고, 실패를 완충해줄 공동체와 연대는 사라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패는 오로지 개인이 나홀로 감당할 몫으로 당연시된다. 서로 의지하고 치유하는 경험은 ‘사회적 자본’이 고갈되며 어려워졌다. <고립의 시대>를 쓴 경제학자 노리나 허츠는 외로운 개인들이 서로 공격하고 배제하며, 정치는 극단주의에 빠져들고 있다고 지적한다.
청년 정신건강이 코로나19 팬데믹 이전부터 악화일로인 것은 이런 환경 탓이 크다. 지난 3월 ‘보건사회연구’ 논문을 보면 2030세대 42.1%가 지난 1년간 극단적 선택을 생각한 적 있다고 응답했다. 계층이동 사다리가 무너진 사회에서 청년들은 잔뜩 날이 서 있다. 온라인 유행어가 단적인 예다. “누가 칼 들고 협박했냐”의 줄임말인 ‘누칼협’은 문제를 개인 탓으로 돌리며 사회에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을 차단한다. “내가 알 바 아니다”의 ‘알빠노’는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한 태도를 반영한다.
12일 국가인권위원회의 ‘정신장애인 인권증진 당사자대회’에서 “청년의 정신질환은 사회적 질병이다”라는 주장이 나왔다. 정신장애·은둔청년 당사자 모임 ‘펭귄의 날갯짓’의 이광호 사무국장은 “무한경쟁 속에 고통을 호소해도 공감은커녕 ‘누칼협’ 같은 반응이 돌아온다면 청년우울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공동체를 재구성하고 사회 신뢰를 되찾아야 한다.
최민영 논설위원 m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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