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창 칼럼] 언제까지 영수회담 타령할 건가
영수회담은 '3김 시대'의 유산이다. 영수회담은 여권의 1인자인 대통령과 제1야당의 당수가 주고받기식 타협을 통해 정국의 실마리를 푸는 자리였다. 정국이 꽉 막혀있을 때 최후의 수단으로 활용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순천 민중당 대표의 1965년 7월 20일 만남이 영수회담의 시발이었다. 역대 영수회담은 모두 26차례였다. 박근혜 정권과 문재인 정권에선 한차례씩 열렸다. 문 전 대통령과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의 2018년 4월 13일 회담이 마지막이었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엔 열리지 않았다.
영수회담의 목적은 말 그대로 정치적 돌파구 마련이다. 회담의 요체는 담판을 통한 거래(타협)다. 여야 리더의 정치적 결단 없인 불가능하다. 회담 결과에 따라서는 엄청난 후폭풍이 수반된다. 거래(딜)는 이런 리스크를 감수할 수 있는 리더의 힘에서 나온다. 애당초 리더의 카리스마 있는 리더십과 확고한 당 장악력, 타협의 정치문화가 전제될 때 영수회담은 성공할 수 있다.
이들 조건을 충족한 리더가 바로 3김이었다. 3김은 돈과 공천권을 앞세워 당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카리스마형 리더였다. 또 동교동계(김대중 전 대통령), 상도동계(김영삼 전 대통령), JP계(김종필 전 총리)로 불리는 확고한 주류 계보를 거느리고 있었다. 여기에 여야를 떠나 수시로 어울리고 소통하는 정(情)의 문화가 자리했다.
영수회담이 3김 시대까지 집중돼 있는 이유다. 26회 영수회담 중 박정희 정권 때부터 김영삼·김대중 정권까지 모두 19차례 열렸다. 대통령과 막강한 힘을 가진 야당 총재의 만남이었던 만큼 막힌 정국을 뚫는 돌파구가 됐다. 물론 매번 성공한 건 아니었다.
실질적인 영수회담은 3김 시대가 마지막이었다. 그 이후 21년간 7번 열렸다. 3년에 한번 꼴로 열렸지만 별 성과가 없었다. 매번 형식적인 만남으로 끝났다. 당연한 결과였다. 무엇보다 3김과 같은 힘을 가진 걸출한 리더가 없었다. 야당 대표의 리더십과 당 장악력은 3김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떨어진다. 타협의 문화는커녕 아예 정치가 실종됐다. 여야 원내대표의 합의조차 의원총회서 손바닥 뒤집듯 하는 게 작금의 정치 현주소다.
힘 없는 야당 대표로선 '3김식의 담판'은 애당초 불가능하다. 자칫 사쿠라 논란 등 역풍을 맞을 수 있다. 야당 대표가 대통령을 만나 기존의 강경한 야당 입장을 전달하는 데 급급했던 이유다. 그러니 대통령과 야당 대표가 자기 할말만 하다 끝나는 회담이 되기 일쑤였다. 의미있는 합의가 나올리 만무하다. 3김 시대 후의 영수회담이 이랬다. 예외가 없었다.
그런 영수회담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제의했다. 무려 8번째다. 남는 장사라는 정치적 계산이 자리한다. 이 대표는 회담을 민생을 챙기는 지도자상을 부각해 중도층을 공략하고 당내 갈등을 차단하는 자리로 활용할 수 있다. 이 대표가 집착하는 이유다.
윤 대통령의 입장은 다르다. 얻을 게 없다. 극단적인 진영대결 속에서 만남 그 이상의 의미있는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전 영수회담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이 대표는 시법리스크라는 치명적 약점이 있다. 정국의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할 게 뻔한 상황에서 이 대표 위상만 띄워주는 회담에 나설 이유가 없다. 회담에 부정적인 이유다.
영수회담은 3김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수명을 다했다. 지난 20년의 역사가 말해준다. 이젠 영수회담 자체가 구태구연한 발상이 돼버렸다. 더 이상 얻을 것도 없는 형식적인 영수회담에 매달릴 게 아니라 타협의 정치문화를 복원하는 게 급선무다. 여야의 소통은 커녕 같은 당 소속 의원들조차 계파가 다르면 식사조차 안하는 게 지금의 정치 현실이다. 여야 소통채널 자체가 사라졌다. 타협이 될리 만무하다. 그러니 여야가 만나면 얼굴을 붉힐 수밖에 없다. 이래선 미래가 없다.
정치권에 많은 걸 바라지도 않는다. 고질적인 패거리 정치 청산같은 거창한 구호는 기대조차 않는다. 식사 정치부터 시작하자. 밥 먹는 데 무슨 계파와 여야가 필요한 것인가. 자꾸 얼굴을 봐야 소통채널도 생긴다. 그래야 대화와 타협을 통한 정치 복원도 가능하다. 정치 불신이 하늘을 찌르는 현실을 언제까지 외면할 건가. 부국장 겸 정치정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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