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DT인] K팝 무대 음향조율의 대가… "제 심장이 뛰는 소리여야 관객도 감동해요"
BTS·이문세·백지영 등과 투어 19회 '아이돌급 스케줄'
단 몇시간 공연위해 밤낮없이 뛰어다니는 숨은 조력자
"마이클 부블레·빅 밴드 같은 대규모 공연에 도전하고파"
가수와 팬들이 뜨거운 교감을 이루는 곳. 무대 위에서 웅장한 음악 소리를 퍼뜨리는 아티스트의 아우라에 파도치듯 함성이 울린다.
단 몇 시간 펼쳐지는 공연을 위해 밤낮없이 음악을 듣고 소리가 제대로 전달되는지 꼼꼼하게 확인하는 무대 뒤 숨은 조력자가 있다. BTS, 스트레이 키즈, 트와이스부터 이문세, 김건모, 백지영, JYJ까지 그의 손길을 거쳐 팬들과 교감하는 아티스트들의 면면은 세대와 장르를 뛰어넘는다.
16년차 음향감독인 원형준(41·사진) 아트믹스 실장은 "객석에서는 청중이 만족하면서 음악에 빠져들고 무대에서는 아티스트가 편안하게 공연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전날 일본 오사카에서 인기 아이돌 그룹 스트레이 키즈 공연을 마치고 귀국했다. 공연장 옆의 스타디움에서는 NCT의 투어까지 열려 그야말로 K팝의 향연이었다.
원 실장의 스케줄은 그야말로 아이돌급이다. 그는 지금까지 한국을 대표하는 아티스트들과 단발성 공연을 제외하고, 2011년 김건모 전국투어 '자서전'을 시작으로 19회의 월드·전국투어를 소화했다. 지난 7월에는 세계적인 음악 페스티벌 '룰라팔루자 파리'에서 스트레이 키즈의 헤드라이너를 맡았다. 한때 BTS 투어도 담당했다. 그룹 포레스텔라, 크로스오버 그룹 라포엠(LA POEM), JYP 보이그룹 GOT7(갓세븐) 등도 그의 손과 귀에 공연을 맡겼다.
"해외에 나가면 함성소리 자체가 달라요. 음악이 잘 안 들릴 정도로 쩌렁쩌렁합니다. 룰라팔루자 파리에서 6만명의 관객이 열광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감동이었어요. K팝 공연의 질이 여기까지 온 것은 무대 완성도를 높이는 스텝들의 역할도 컸다고 봅니다."
음향회사인 아트믹스는 2002년 3명으로 시작해 현재 40여명의 음향감독과 엔지니어를 보유하고 있다. 음향 시스템 렌털과 수입, 판매, 스튜디오 믹싱 서비스를 제공한다. 흔히 콘서트장에서 음향을 조율하는 음향감독이 하는 일을 모두 통칭해 음향 시스템 렌털로 분류한다. 2013년에 아트믹스에 합류한 원 실장은 초반에는 잠을 못 이룰 정도로 중압감을 느꼈지만, 현재는 베테랑 음향 감독이 됐다.
"처음에는 현장에서 선배들을 정신없이 쫓아다니면서 일을 배웠습니다. 전문 용어도 어려워서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몰랐는데 어느 순간 현장에서 '이거구나'라고 깨달을 순간이 있었죠. 운전을 많이 하면 할수록 느는 것과 비슷해요. 지금은 공연 중에 주변을 살펴보는 여유도 생겼죠."
일하며 가슴 뛰는 순간도 많았다. 피아노, 기타 하나만 반주해도 관객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는 가수 이문세씨의 국내 투어는 음향감독으로 한 단계 성숙해지는 계기가 됐다. 특히 '가로수 그늘 아래'를 부를 때 무대 연출과 선율이 하나가 돼 울컥하기도 했다. 포레스텔라의 조민규씨 솔로 콘서트 때 탱고 연주도 곡에 몰입한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음향을 잘 잡으려면 설계부터 현장 측정까지 세세한 점검이 필요하다. 악기와 목소리 등 각각의 소스를 조화롭게 풀어내 청중이 만족하는 음향과 소리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다. 공연 의뢰가 들어오면 설계도를 통해 무대 도면을 보고 스피커 위치부터 확인한다. 세트나 구조물을 피해 스피커를 좋은 위치에 두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빛이 가려지면 그림자 지듯, 소리도 방해물이 있으면 가려지기 때문이다. 시뮬레이션 후 실제 공연장에서는 측정용 프로그램과 마이크로 곳곳을 다니며 소리가 제대로 나는지 확인하는 '스피커 튜닝' 작업을 거친다. 같은 아티스트, 같은 공연이라도 잔디밭에서 공연할 때와 흙밭일 때 소리가 다르다. 기본적 튜닝을 끝내고 마이크를 켜도 소리가 울려 또 미세하게 음향이 바뀐다.
"음향은 주관적인 영역이다 보니 고민의 연속입니다. 공연 전 아티스트의 음원과 원곡을 차에서나 집에서나 통으로 외우듯 계속 듣습니다. 명절에는 7시간 동안 들은 적도 있어요. '청중이 만족하는 음향이 최고의 음향'이라는 생각에 직접 귀로 듣고 확인하려 합니다."
팬데믹 시절에는 공연이 뚝 끊기면서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아트믹스는 직원 해고 없이 회사를 유지했다. 인고의 시간은 되레 기회로 돌아왔다. 비대면 공연이 늘어나자 '송출 공연'이라는 개념이 부상했다. 엔데믹이 왔지만 공연과 동시에 라이브 송출을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콘서트에도 온·오프라인이 접목된 셈이다. 특히 팬데믹이 끝난 후 K팝을 찾는 해외 공연이 배로 늘었다.
음향도 디지털과 아날로그 융합이 필수인 시대, AI(인공지능)가 향후 음향감독을 대체할 수 있을까. 원 실장은 현재 음향의 디지털화가 상당 정도로 진행돼 음향 품질의 균일성 확보와 질 향상에 도움이 되지만 관객들을 움직이는 음향은 AI가 대체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잘라말했다.
"탄탄한 교육을 받은 후 좋은 장비를 가지고 현장에 투입되면 정제되고 균형 있는 소리를 낼 수 있지만, 관객의 가슴을 파고들고 환호하게 하는 음향은 다릅니다. 제 경우 제 심장을 뛰게 하는 소리를 내려고 합니다. 제 심장이 뛰어야 관객의 심장도 뛰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원 실장의 포부는 마이클 부블레, 빅 밴드 같은 대규모 공연에 도전하는 것이다. 그를 움직이는 엔진은 음악에 대한 애정이다. 청소년기는 자유의 시기였다. 친구들과 밴드를 결성해 매일 연습실에서 시간을 보냈다. 음향장비와의 운명적 만남도 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만지작거린 음향장비가 천직이 될지 그 시절에는 상상하지 못했다. 그러다 뉴스에서 음향 엔지니어라는 직업을 접하고 꿈을 키웠다.
"음악을 좋아하고 즐길 수 있으면 음향감독에 도전할 수 있는 자질이 충분합니다. 다만 성장하는 단계에는 자기 자신만 고집하기보다 공연을 많이 보러 다니고 조언도 잘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너무 열심히 하기보다 멀리 보고 답답함을 이겨내면서 즐겨가며 실력을 쌓다 보면 어느 순간 뒤돌아보면 이만큼 성장해 있더라고요."
김나인기자 silkni@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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