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배 후폭풍 휩싸인 국민의힘···“소나기 피하려고 혁신위 띄우고 넘어갈 것”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참패한 국민의힘이 12일 거센 후폭풍에 휩싸였다. 당 지도부는 조기 총선 모드로 혼란을 수습하려는 모습이지만 당 안팎에선 윤석열 대통령의 독단적 국정 운영 방식과 수직적 당정 관계가 바뀌지 않는 한 백약이 무효라는 진단이 나온다.
이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전날 치러진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김태우 국민의힘 후보(9만5492표·39.37%)는 진교훈 더불어민주당 후보(13만7065표·56.52%)에 득표율 17.15%포인트 차로 크게 졌다. 이 지역이 민주당에 다소 유리한 곳이긴 하지만 2021년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지난해 6·1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승리한 점을 감안하면 민심이 정부·여당에 차갑게 돌아섰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김 후보와 진 후보의 득표율 격차는 2020년 21대 총선 당시 강서 갑·을·병에서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후보들과 민주당 후보들의 득표율 격차(17.87%포인트)와 거의 같았다. 수도권 민심 지형이 지난 총선 때와 유사하다는 점이 확인된 것이다. 당시 미래통합당은 수도권 121석 가운데 16석을 얻는 데 그쳤다. 여당 수도권 출마 준비자들 사이에선 내년 4월 총선에서 또 다시 참패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비윤석열계에선 윤 대통령과 당 지도부가 태도를 바꾸지 않을 거라고 우려했다. 유승민 전 의원은 이날 KBS 라디오에 출연해 “윤석열 정권에 대한 서울시민들의 민심이 확인된 선거였다”며 “한 마디로 윤석열 대통령의 패배”라고 밝혔다. 유 전 의원은 “(윤 대통령이) 용산(대통령실)과 여당 사이의 수직적인 당정 관계를 포기하고, 당이 새로운 지도부를 만들면 총선 승리의 가망이 있다고 본다”면서도 “이제까지 했던 걸 보면 윤 대통령은 여러 사건에서 절대 책임을 안 지고 자기 과오와 오류를 인정하지 않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준석 전 대표는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이기는 길을 경험해 봤음에도 그저 사리사욕에 눈이 먼 자들이 그걸 부정해왔다”며 “더 안타까운 건 이제부터 실패한 체제를 계속 끌고 나가려는 더 크고 더 비루한 사리사욕이 등장할 것이라는 점”이라고 밝혔다. 천하람 국민의힘 전남 순천갑 당협위원장은 이날 CBS 라디오에서 “지금 나오는 얘기들도 보면 겸허하게 반성하고 우리가 더 잘하겠다고 하기보다는 (선거 패배) 의미를 깎아내리려고 하는 코멘트들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며 “원래 같으면 (당 지도부가) 사퇴해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총선 수도권 출마를 준비 중인 인사들은 윤 대통령과 당 지도부를 향한 우려와 함께 수도권 민심이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한 여당 중진 의원은 통화에서 “(이번 선거 의미) 1번은 대통령 심판”이라며 “대통령 스스로 바뀌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기현 대표가 대표직을 유지하려면 본인도 다 내려놔야 한다”며 김 대표가 현 지역구인 울산 대신 수도권에서 출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국민의힘 초선 의원은 당 일각에서 이번 선거 패배 요인을 민주당에 유리한 ‘밭’에서 찾는 데 대해 “그러면 이미 내년 총선은 졌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라며 “서울에서도 강남·서초 빼고는 다 강서와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이 의원은 비수도권 일색인 당 지도부가 패배 책임을 지고 ‘내려놓기’에 나설 가능성을 낮게 보면서 “‘일단 소나기는 피해 보자’는 생각으로 혁신위원회를 띄우는 정도로 넘어가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기 수원 출마를 준비 중인 김용남 전 국민의힘 의원은 전날 밤 KBS 방송에 출연해 “참패는 참패”라며 “강서구가 서울에서는 민주당 우세지역이라고 하나 경기도 인구가 밀집돼 있는 남부나 서부에 비하면 사정이 좀 나은 곳”이라고 말했다.
김기현 대표는 “분골쇄신”을 다짐하면서도 사과하거나 책임론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김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연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번 선거의 패인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총선 승리를 위한 특단의 대책을 강구하겠다”며 “특히 상대적으로 우리 당이 약세인 지역과 수도권 등에서 국민들의 마음을 더 많이 얻을 수 있도록 맞춤형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여당 지도부는 그간 윤상현·안철수 등 수도권 의원들이 제기한 ‘수도권 위기론’을 부인해왔다. 국민의힘은 오는 15일 의원총회를 연다.
당 지도부는 혁신위 출범, 총선 기획준비단 조기 출범, 총선 인재영입위원회 발족 등을 띄워 사태 수습을 모색할 방침이지만 ‘김기현 대표 체제로는 총선 필패’라며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의 전환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날 최고위에서 수도권 출신 지도부 인사들이 ‘지도부가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자’는 취지로 말했지만 비수도권 출신 인사들이 ‘너무 저자세로 가면 안 된다’고 반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 지도부 일각에선 무공천 입장을 뒤집고 김태우 후보 공천을 밀어붙인 이철규 사무총장 등 임명직 당직자들이 사퇴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이날 숱한 의혹이 제기된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자진 사퇴하면서 여권이 선거로 드러난 민심을 수용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다만 윤 대통령의 국정 운영 기조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총선까지 남은 6개월 동안 야당과의 큰 격차를 좁히기가 쉽지 않을 거란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은 대여 압박에 돌입했다. 윤 대통령을 향해 국정기조 전환, 한덕수 국무총리 해임 및 한동훈 법무부 장관 파면 등 내각 쇄신, 야당과의 대화를 촉구했다.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대책회의에서 보궐선거 결과를 “윤석열 정권의 폭주에 대한 국민의 준엄한 심판”이라고 규정한 뒤 “민심은 윤석열 정부에 국정 기조를 전환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은 오만과 독선, 무능과 무책임으로 일관한 국정 운영에 대한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보궐선거 승리를 혁신으로 이어가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최병천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은 이날 SNS에 재보궐선거에서 승리했지만 총선에서 패배한 사례를 언급하며 “재보선 승리나 패배는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다”며 “혁신하는 쪽이 승리하고, 자만하는 쪽이 패배할 것”이라고 썼다.
정대연 기자 hoan@kyunghyang.com, 문광호 기자 moonlit@kyunghyang.com, 이두리 기자 redo@kyunghyang.com, 박순봉 기자 gabg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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